[Opinion] 다다이즘_최초의 집단적인 예술운동 [시각예술]

취리히 다다 vs 베를린 다다
글 입력 2016.05.0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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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이즘
취리히 다다 vs 베를린 다다


다다는 세계 일차대전이라는 상황이 만들어냈다.
다다는 취리히 파리 뉴욕 하노바에서 일어났고 취리히가 가장먼저 일어났던 장소로 알려져있다.
다다는 최초로 집단적인 도전을 보여준 예술운동이고, 비 논리주의적 경향으로 러시아 형식주의 - 초이성과 비슷하다. 그리고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회의 (아카데미 브루주아를 만족시키는 행위, 미래주의 의 전쟁선동, 등) 를 가지고 anti-art 입장에서 작업했다. 다다이즘은 영속성을 추구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행해지고 없어지는 것을 추구했으며 허무주의적인 관점이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을 다다이즘을 시기에 작업한 작가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다는 미술보다는 출판된 잡지나 글이나 행사를 통해 소개되었고 비판의식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매체, 공연 행사를 통해 대중과 접촉을 시도한 경험을 볼 수 있다.
또한 다다의 이름은  nonsense word (무의미)로 기원과 설은 각자 다르지만,  휴고 볼은 사전을 찾다가 우연히 나왔다고 한다.

 첫번째로, 취리히 다다는 international  그룹이다.(시인, 음악)
중립국 스위스에 취리히는 독일어권자의 집결지가 되었고, international 그룹에는 휴고볼, 휠센백, 아르프 , 짜라등이있다.
1916년 휴고발이 카바레 볼테르라는 술집으로 다다운동의 중심지로 삼았다고 하고, 전쟁 반대자들이 모여서 문화예술의 이상적인 것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연에서의 다다는 소음음악 , 아프리카 부족시, 무의미한 시, 음성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1916년 여름에 볼테르에서 다다로 이름을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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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다다는 미래주의 기술을 이용하고 ,표현주의자의 표현을 격노와 반동을 영향받았다고한다. 
 1917년 취리히 그룹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그룹이 분열되고 만는데, 취리히 다다는 전통적인 것을 조롱하는 허무주의 입장(격동적이면서 뒤로물러서서 앞으로 나가지 않는) 과 국제적인 정치, 유니버셜한 언어를 추구하는 2가지 상반된 자세가 있다.
다다이즘에서 아르프와 뒤샹이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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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uares arranged according to the laws of chances/ hans Arp


한스아르프는 독일 표현 ,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인 아방가르드 수단을 사용했다.


1. 입체주의 꼴라주의 영향으로 우연의법칙 으로 화면구성했다-초현실과 연결.
2. 뒤샹의 ready made 에 영향을 받았고
3. 이성적인 추상그리드도 사용했다.
4. 초현실과같은 신체모양 같은 형태를 하기도했는데 다다의 파괴적이고 충동적인 요소와 토르소라는 타이들의 다다스럽지 않은 2가지 요소로 작업했다.
5. 2명이서 만든 듀오 콜라주도 작업했다.






반면에 1918년 휄젠백에 의해 결성된 사회적인 측면의 베를린 다다는 미술활동을 정치에 이용한다. 
다다전시회에서의 오브제는 전시오브제의 개념을 바꾸었고 독일 표현주의를 비판하는 형태로 열었다. 
또한, 정치적, 풍자적 반 예술적인 베를린 다다는 정치선언이 있는 고급미술을 비판했다.
정기간행물을 포토몽타주, 타이포 그래픽을 활용해 발간해 세계를 개혁하고자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베를린 다다의 대표적인 작가는는 하트필드 하우스만 한나 그로츠가 있다.
포토몽타주는 종이나 사진조각 신문을 뜯어서 안을 비논리적으로 회화적인 구성을 한것이다.
포토몽타주는 출판 산업에서 새롭게 등장한 대중문화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만들었고 큐비즘의 미학을 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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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Höch


한나 호크 는 여성작가로 , 그녀의작품은 포토몽타주로 유명하고 그녀의 작품에는 사람이 많이 꼴라주 형태로 배열로 나타나있다. 
이 배열은 특별한 구성이 없이 막 붙인 것으로 비위계적, 비구성적, 무작위의 우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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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lf the superman- swallows gold and spouts junk/john heartfied/1932


이와 달리 하트필드는 반공 포스터와 같은 작업을 했는데 신분잡기에 싣기 위해 그림 작품으로 fusion이 된 것이 특징이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사진이 포함된 경우가 많고 내용이 풍자적이다. 
공산적, 정치적인 의미로 사용했고, 대중이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따로 노는 것들(불연속적인 것에서 동질성을 가진 구조로 포토몽타주 주인을 묘사) 을 스토리 라인이 있게 보여주었다.



무솔리니 얼굴을 표현한 파시즘은 무솔리니와 해골을 녹여 섞어 만들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the superman은 금을 삼키는 히틀러 ,심장에는 나치표시 ,간은 쇠, 식도를 골드로 혼합해 넣었다. 나치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사람들이 독일 표현주의자들이 하였고 이미지배열, 구성와 내용적인 면서에 한나호크와 매우 다르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google


[이경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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