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숨막히도록 압도적인 진홍빛 소녀

글 입력 2016.05.0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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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극이라서 기대감과 걱정을 반반 안고서 갔던 진홍빛 소녀입니다.
2인극이라는 점 역시 연극을 기대하게 만들면서도 걱정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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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받고 새삼 왜 극 이름이 진홍빛 소녀일까?
어떻게 극이 전개될까에 대한 궁금증이 솟기 시작했습니다.
무대와 소품을 보면서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지만
저마다 원래 그렇듯 자기 자리에 위치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극이 시작됐는데 연극의 묘미를 잘 살린 도입이라 인상깊었습니다.
이혁 역의 배우님께서 무대 위가 아닌 아래에서 저희에게 연극의 일부분으로
핸드폰에 관해 주의 사항을 주시고,
결말과 연관되는 방관자로서의 잘못에 대해 강의식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

배우분의 직업을 부각 시키면서 재미 요소를 더한 좋은 도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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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이어진 극의 전개는 점점 압박을 가해오면서 머지않아 팡! 하고 터지는 듯 했습니다.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이혁을 찾아온 은진은 이혁에게 반가운 손님이 아님이 확 드러났습니다.
연기였지만 두 베우님들의 호흡이 찰떡 같이 맞아 더욱 몰입이 됐던 것 같습니다.

회유해서 잘 돌려보내려던 은진이 기어이 버티고 있자
결국 이혁은 욕을 하며 은진을 쫓아내려 합니다.
담담한 듯 이혁의 밀어냄을 애써 무시하던 은진도 결국엔 버티지 못하고 나가려 합니다.
자신이 어렸을 적 자신을 사랑해주던 이혁의 너무도 변한 모습에 상처입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은진을 맡으신 배우님의 손끝 동작 하나하나까지 진짜 은진이 된 듯 굉장히 섬세했습니다.

억지로 웃는 모습까지 가슴이 짠해지더라구요.
은진이 큰 캐리어를 끌고 나가려던 차에 이혁이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그 전화는 비극의 시작을 알립니다.

은진이 이혁의 어린 아이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혁은
은진이 휘두른 흉기에 맞고 기절합니다.
다시 눈을 뜨니 자신은 묶여있고
은진은 딸을 살리고 싶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맞춰보라고 합니다.
그렇게 은진과 이혁이 과거에 만났던 고아원이 불타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된 사건과
은진이 고아원에서 겪어야 했던 끔찍했던 일들의 전모가 밝혀집니다.

그 과정이 참 처절하고, 다 밝혀지고 나서도 은진은 이혁에게까지
외면받는 사실이 극을 더욱 처절하게 만들고
약자인 은진을 더욱 더 나략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딸은 구하기 위해 겉으로만 입발린 소리를 하는 이혁이
은진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존재였습니다.
극적인 상황과 대사들이 오고가는 극의 중반부터는 정말
숨을 크게 쉬는 것 조차 어려운만큼 강한 압박 속에서 진횅됐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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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빛 소녀>의 관전 포인트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배우님들의 감정 연기가 모든 것을 압도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것 하나 거치지 않고 생생하게 정면으로 쏟아져 나오는 감정들을
받아들이는데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처절하게 절규하는 은진이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과
끔찍했던 과거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받는 고통의 크기는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고,
은진은 그 감정의 파편들을 마구잡이로 토해내지 않고
극의 진행과 함께 더욱 날카롭고 섬뜩하게 풀어냈습니다.

후반에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가슴이 답답할 정도였습니다.
같은 여자로서 은진이 당했던 소름끼치는 과거를
그 오랜 시간동안 어떻게 갈무리해왔을까 싶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은진이 가장 힘들었던 이유로 이혁이 준 희망을 꼽았습니다.

희망고문

딱 이 네글자가 은진을 가장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을 차라리 버렸다고 생각했으면 어느것에도 매달리지 않고
어쩌면 은진에게 있어 가장 편한 선택인 죽음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은진은 이혁이 교도서에 자신을 면회온 단 한 번의 이유로
죽지도 못하고 한 끝의 희망자락을 붇잡고 처절하고 끔찍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은진이 마주한 것은 이혁의 배신이라는 현실이죠.
그 현실을 마주하게 된 은진이 받은 타격은 어마어마 할 것입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은지의 표정과 대사에서 보이는 포기의 감정들이
오랜 시간 고통받던 은진의 모습을 더욱 현실적으로 묘사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원했던 너무도 단순한

사랑

그 사랑에 집착하는 약자의 모습이 더욱 가련하게 다가왔습니다.
또, 이혁의 연기 역시 일품인데
이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역할입니다.
결말에 은진이 딸을 납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이성을 잃은 행동을 했을 때까지도
아주 나쁜 놈입니다.

극 중에서 어쩌면 가장 나쁜 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혁 역시 사회 속에 한 피해자로서 자신을 소중히 하다가
결국 은진에게도 상처를 입힌 존재인 것 같습니다.
현재의 이혁은 말도 못할 나쁜 사람이지만,
과거에 은진을 사랑했던 감정만큼은 진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크기가 은진만큼 크지 않았고,
자신의 성공이 더욱 소중했던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며 은진이 나쁜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모습에서조차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절규하고 괴로워 하는 우리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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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빛 소녀>는 보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연극입니다.
사회 부조리극 이라는 이름을 달고 날카롭고 자극적으로만
현실을 지적하려는 극과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진홍빛 소녀> 역시 자극적이고 날카롭지만
훨씬 묵직하고 둔탁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감정을 자극하는 부분에서 어느새 저는 연극 속에 녹아든 주인공이 되어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너무 처절하고 불행해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현실적이지만 작은 부분들을 살려 더욱 더 공감이 가게 만든 극입니다.
그리고 극이 종료되면 자신이 가장 싫어하고 혐오하는 행동을 하는 역할이
곧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때의 탈력감과 죄책감 등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무겁게 가슴 속에 오래 남는 연극이지만
불쾌하거나 우울하기만 한 연극이 아니라 오히려
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연극이라 정말 좋았습니다.
같이 같던 친구와도 감정을 제대로 추스르고는 이것저것
연극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연극이 시사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얘기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아마, 가슴 속에 두고두고 남을 명품 연극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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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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