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막춤으로 한국을 이야기하다 [공연예술]

글 입력 2016.05.04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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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외교.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 정상 혹은 국가기관 간의 외교가 아닌 외국 국민들에게 어필함으로써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신뢰를 쌓는 외교를 말한다. 공공외교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더라도 한류나 우리 문화 알리기 등에 정부 기관 및 민간단체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정치, 경제와 같은 비교적 딱딱한 분야보다는 문화적인 차원에서 대중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다 쉽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공공외교에 관심이 있었기에 공공외교 관련 대외활동에 지원했던 적이 있다. 지원서는 나에게 ‘청년의 관점에서 공공외교를 펼칠 수 있는 방안’을 요구했다. 하지만 판에 박힌 내 머릿속에서 떠올랐던 것은 한복, 판소리 등 전통이라고 불리는, 모두가 생각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분명 우리의 소중한 유산들이지만 과연 현재 한국의 모습을, 그리고 우리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가 한복을 입는다고 말하기엔 옷장 속에 양복이 들어있는 집이 많고, 판소리보다는 힙합이나 재즈가 더 인기가 좋은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양복이나 힙합이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웠다.   


 전통보다 우리랑 가까우면서도 너무 현대적인 것 말고.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우리의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것. 그래서 한국적인 것. 다른 국가 국민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우리들에게 친밀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을 그 때부터 했던 것 같다.


AKR20160430001200081_01_i.jpg▲ -구글 이미지 발췌
 

 그러다 최근 한 기사에서 안은미라는 현대무용가를 알게 되었다. 막춤으로 한-불 문화상을 수상했다는 말이 안은미라는 이름 옆에 붙어있었다. 궁금해졌다. 어떤 막춤을 선보였을까, 왜 할머니의 막춤이었을까, 한-불 문화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땐스 3부작


 1999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8회를 맞는 한-불문화상은 프랑스에서 한국문화예술을 알리고, 양국 문화 교류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상이다. 이번에 안은미에게 한-불 문화상을 안겨준 작품은 2015년 한·불수교 130주년 문화교류를 위해 파리 가을축제에서 선보인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사심 없는 땐스>,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스> 3부작이었다.
 

 현대무용하면 떠오르는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제목들이 우선 눈길을 끌었다. 마치 휴게소에서 종종 들려오는 쿵짝 소리에 맞춰 그냥 마음 가는대로 춤을 추어야만 할 것 같은 제목이랄까. 저런 제목을 가진 현대무용은 도대체 어떤 춤일지 알고 싶어서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무대는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였다. 




 안은미의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는 총 3부로 이루어져있다. 1부는 전문 무용수들의 춤, 2부는 다큐멘터리 영상, 그리고 3부는 진짜 할머니들이 등장해 춤을 추는 것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3부를 보고 ‘정말?’ 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 그렇다. 영상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만나 뵐 수 있는 할머니들이 나오셔서 무대 위를 활보하며 막춤을 선보인다. 어쩌면 촌스러운 노래와, 촌스러운 의상과 함께 말이다. 기사에서 소개된 그대로, ‘할머니들의 막춤’이 안은미가 파리에 당당하게 내놓은 춤이었던 것이다. 


 영상을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이게 바로 내가 찾던 한국적인 것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이 대략 60세 이상이었으니까 보통 아이를 대여섯 낳은 몸이에요. 
멋있는 몸은 아닐지 몰라도 긴 세월동안 스스로 살아있음을 말해왔던 몸이지요.”

“할머니들의 막춤은 1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안은미-


 
136305801624.jpg▲ -구글 이미지 발췌
 

 인터뷰에서 안은미가 했던 말처럼, 할머니들의 몸은 오랜 세월 대한민국에서 살아오면서 스스로 살아있음을 외쳐온 몸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할머니들의 몸은 대한민국의 분위기, 역사, 문화 모든 것에 영향을 받아왔고 또한 그것들을 체화시켜 왔을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몸에, 그리고 몸짓 하나하나에 ‘한국적임’이 묻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얼굴에 나타난다고도 하지 않는가. 할머니들의 몸은 한복보다, 판소리보다 지난 세월 동안 변화해온 한국의 모습과 분위기를 하나부터 열까지 차곡차곡 담아낸 결정체로써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적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저 할머니의 몸이라는 이유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막춤’을 통해 전달되었기에 보다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춤이라고 하면 즐거움,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슬픔, 한 이러한 단어들도 동시에 따라붙고는 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있어서 춤이라는 행위는 기쁨을 표출하는 매개체인 동시에 모순적이게도 슬픔과 한스러움을 담아내는 것으로 익숙하다. 때문에 춤에 대한 우리만의 특징적인 정서가 수 십 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기쁨과 슬픔을 겪어왔을 할머니의 몸과 만나면서 한국적인 색채를 보다 짙게 드러내지 않았나 싶다.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공연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관객들까지 무대 위로 올라와 다함께 춤을 추며 한껏 즐거움을 만끽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그 속에서 프랑스 대중들은 한복을 입어볼 때보다, 그리고 판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더욱 진하게 한국적임에 대해 느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안은미는 프랑스에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해 알리고 문화 교류에 일조했다는 이유로 한불 문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하나의 해답을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안은미의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는 한불 문화상 수상 그 이상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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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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