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의 온도를 전달하는 전시 -'디어 알래스카' [여행]

글 입력 2016.04.29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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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단 두 글자 단어로 나를 설레게 한다. 여행은 낯설지만 기대되는 그 무언가를 가져다준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하고, 익숙한 시간과 장소일지라도 여행으로의 그 곳은 정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장시간 비행을 거쳐야만 도착하는 해외든지 매일같이 내가 산책하는 공원이든지 상관없이 말이다. 계획할 때, 실제로 떠났을 때, 다녀와서 진하게 여운이 남았을 때, 모두 다른 감정을 내게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여행이니까. 초등학생 때 가족여행을 다녀온 즈음의 내 일기를 보면 이런 말이 적혀져있다. ‘매일매일이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행을 좋아한다. 직접 떠나는 여행도 좋고, 지난 여행의 사진을 다시 살펴보는 것도 좋고, 친한 친구의 유럽 여행 후기를 듣는 것도 좋고, 연예인들끼리 여행을 떠나는 예능 TV프로그램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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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여행과 관련 있는 전시회를 다녀와 보았다. 4월 13일부터 시작해 얼마 전인 27일에 마무리된 ‘디어 알래스카(Dear Alaska)’였다. 신사동 갤러리 블루스톤에서 Place of Wonders(POW)의 첫 프로젝트로 열렸다. POW는 현대인이 바쁜 삶 속에서 잃어버린 ‘경이로움’이라는 감정을 사진, 패션 디자인, 설치 예술, 피아노 연주 등의 다양한 예술 장르로 끌어내 소통하는 글로벌 아티스트 콜렉티브다. 영화감독인 유정아가 알래스카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과 영상들을 기반으로 그 안에서 느꼈던 수많은 이야기들, 대자연의 모습들을 다채롭게 전달한다.

작지만 깊은 감수성을 전해준 전시회였다. 그 벽면은 유정아 감독이 알래스카 여행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으로 가득 차있었다. 사진마다 달아놓은 코멘트를 몇 번이고 곱씹어보며 사진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자면 나 역시도 알래스카에 가있는 기분이었다. (특히, 알래스카의 맛이 담겼다며 조심스레 사탕을 주셔서인지 더욱 ‘알레스카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코멘트’의 조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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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빌딩이 지배하는 수직의 도시에서 살다가, 
가로로 드넓게 펼쳐진 자연을 보면서 
나는 경쟁이 아닌 상생이라는 단어를 기억해 냈다.



정말이지 공감 갔다. 나의 일상은 수직으로 높게 뻗은 빌딩들이 서로 밀집되어 있는 도시에서 이루어진다. 숨 막히는 수직의 공간에서, 건물보다 더 빽빽하게 밀집된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살아간다. 치열하고 냉정한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 잠깐이라도 대자연 속에서 휴식을 즐길 때를 떠올렸다. 3월의 개강을 앞둔 지난 겨울, 나와 친구는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강원도 속초로 향했다. 내 기억 속 속초는 내가 밟고 있는 이 땅보다 하늘이 더 많다. 사실은 고층 건물보다 더 높은 산이지만, 넓은 바다와 하늘 아래에선 그저 수평으로 펼쳐진 자연의 일부였다. 집 근처 뒷산을 볼 땐 떠올리지 못했던 느낌이었고, 색다른 감탄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경쟁하며 힘들어했을까 생각하며,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속초 낙산사 가장 높은 곳 끝자락에 서서 원초적인 감각만 느껴보았다. ‘쏴아-’ 반복되는 바다 파도 소리. 눈 감고 있어도 선선함이 느껴지는 바람 냄새. 그 때 그 소리, 그 냄새가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사진과 코멘트였다. 대자연 속으로 여행해봤다면 누구라도 느꼈을 그 감정을 사진으로, 한 문장으로 풀어 놓았다. 


KakaoTalk_20160430_022556345.jpg▲ 파도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속초 낙산사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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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같았던 여행을 다녀온 뒤 바쁘고 복잡한 일상으로 돌아올 때면 많은 생각이 든다. 여행에서 재충전된 나 자신을 격려하기도 하고, 얼른 또 이 일상을 벗어나 여행가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하고, 결국은 반복되는 현실에 억울하기도 하다. 오죽하면 ‘여행 후유증’이라는 말이 있을까. 일상에서도 여행에서도, 기뻐도 슬퍼도, 시간은 흐른다. 그 누구도 멈출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게 시간이다. 이러한 시간의 한계와 허무함을 전시장 한 쪽에서 설치 작품으로 표현한다. 하얀 풍선들을 끈에 연결하고, 바닥과 벽에 붙여 전시 기간 내내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둔다. 처음에는 팽팽한 표면의 풍선들이 높게 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풍선은 흐물흐물해지고 바닥을 향해 가라앉게 된다. 결국은 시간이 흐르기 마련이고, 풍선도 우리도 가라앉는다. 여행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 순간에는 황홀하고 경이롭지만, 시간이 지나 우리의 현실 자리로 돌아왔을 때부터 점점 잊혀지고 흐릿해진다. 그래서 여행의 경험과 기억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를 다독일 수도 있고, 현대인들이 상실한 어떤 감정들을 회복하게끔 도와줄 것이다. 이 곳, <디어 알래스카>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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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사람들이 나타나 
이야기와 눈물, 마음을 나누는 것. 
이것이 진짜 여행이다.



한 남자가 어떤 그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이 사진. 잘은 모르지만, 알래스카를 여행하던 유정아 감독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공유한 사람일 것이다. 알래스카의 대자연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각자의 방식대로 나누었을 것이다. 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바라보고 있는 알래스카 풍경을 그리고, 사진으로 담지 않았을까. 그 상황에 내가 함께 있지도 않았는데 그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나 역시도 지난여름 처음으로 혼자 가본 해외여행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했다. 홍콩 여행이었는데, 야경을 보기 위해 빅토리아 피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양정승의 ‘밤하늘의 별을’을 들었다. 아직도 그 노래를 들으면, 반짝이는 별과 같은 홍콩의 야경이 선명하게 남아있고, 두근거리던 기분까지 든다.


KakaoTalk_20160430_022652466.jpg▲내가 좋아하는 노래 속에 담기게 된 홍콩의 야경.
 





“경험과 시간은 우리를 전과는 다른 존재로 빚어간다. 알래스카에서의 시간은 그동안 도시에 살면서 멀었던 눈과 닫현던 귀가 열려 다시금 세상을, 주위를 느끼고 볼 줄 아는 사람으로 회복되는 시간이었다. 또한, 도시에서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지를 상기시키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이 도시에서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새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알래스카에서 찍은 사진들을 종종 들춰보곤 한다.” 
- <디어 알래스카> 프롤로그 중.



눈으로 본 감각뿐만 아니라 듣는 것,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 누군가를 만나 마음을 나누는 것까지. 모든 감각의 경험을 기억하고 보존하며 또 다른 이와 공유하는 부분도 여행의 일부라 할 수 있다. <디어 알레스카>에서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와 나에게 고스란히 그 감정을 전달해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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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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