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레베카' 속 댄버스, 충성심일까 동성애코드일까? [공연예술]

글 입력 2016.04.29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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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레베카>는 지난 2013년 한국 초연을 성공리에 마친 후, 이듬 해 재연, 그리고 올해 2016년 삼연에 이르기까지 매번 흥행 신화를 세우며 '대극장 뮤지컬의 대표주자'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이 공연을 본 관객들은 뮤지컬<레베카> 속 화려한 회전무대와 조명, 전율이 이는 넘버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을 흥행 요인으로 꼽는다. 옥주현, 민영기, 엄기준, 신영숙 등 국내 최고의 뮤지컬 배우들이 이 작품을 거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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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레베카>는 ‘서스펜스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의 여성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대표작인 소설 『레베카』를 그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1938년 출간 이후 한 번도 절판된 적 없는 미스테리의 고전으로, 그 해 전미 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한 세계적인 명작이다. 뮤지컬<레베카>의 내용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레베카>에 레베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신 '나'라고 불리는 한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나'는 양부모를 잃고 가족 없이 고아로 가난하게 자라왔는데, 어느 날 자신의 고용인인 백작 부인을 따라서 몬테카를로라는 휴양 도시에 가게 된다. 그 곳에서 '나'는 호텔 근처를 산책하던 중 절벽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던 한 남자를 발견하고 그를 위로, 설득하게 된다. 그 남자는 부인의 죽음 이후 마음의 상처를 입은 후 몬테카를로로 여행을 온 막심 드 윈터란 사람이었는데, 영국 맨덜리에 대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매력적인 대 부호였다. 막심은 절벽에서 만난 그녀의 따뜻함에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게 되고, 결국 '나'에게 청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이제 새로운 '드윈터 부인'이 되어 맨덜리의 대저택에 도착한 '나' 는 집 안에 감도는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집안의 하녀들과 집사 댄버스는 이미 죽었다던 막심의 전처, 레베카를 여전히 찬양하고 그리워하는 듯 보였고, 레베카와 비교하며 '나'를 안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화려하지만 어두운 분위기의 대저택, 그 안의 질서는 항상 검은 옷을 입고 창백하고 냉담한 얼굴로 '나'를 대하는 저택의 집사 댄버스 부인이 장악하고 있다. 또한, 집안 곳곳엔 죽은 레베카의 흔적들이 남아 있어, 그녀의 존재와 기억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혼란을 느낀 드 윈터 부인은 남편 막심과 맨덜리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고 더욱 더 힘들어짐을 느낀다. 그러던 중 '나'는 레베카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게 되고, 그 혼란 속에서 자신과 남편을 굳건히 지키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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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레베카>는 '나'라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가장 강력한 인상을 주는 사람은 댄버스 부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극 중 댄버스는 악역이지만, 주체할 수 없는 그녀만의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뮤지컬<레베카>를 "댄버스의, 댄버스에 의한, 댄버스를 위한 뮤지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작품을 관람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댄버스 부인의 그 카리스마에 압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첫 관람 때 댄버스 부인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서 무서워 움찔했던 기억이 난다. 뮤지컬<레베카>를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으스스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뒤편에는 맨덜리 저택의 집사인 댄버스 부인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댄버스는 드윈터 부인과 남편 막심의 사이를 모함하여 멀어지게 만들고, 드윈터 부인을 자살의 길로 내몰기도 한다. "왜 나를 미워하는 거죠?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고 외치는 '나'의 말에 댄버스는 "감히 드윈터부인의 자리를 차지하려 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레베카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댄버스는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레베카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드윈터부인'의 자리는 레베카 그녀만을 위해서 언제까지나 비워두어야만 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레베카가 죽은 이후에도 그녀를 향한 댄버스의 맹목적인 동경과 무한한 추종은 그 둘이 단순히 하녀와 집주인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극 중 댄버스의 여러 가지 행동과 태도들 또한 평범한 집사-안주인의 충성 관계에서 왔다고 보기 힘든, 다소 과한 요소들이 많다. 댄버스 역할을 연기했던 신영숙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댄버스 부인은 댄버스라는 개인의 정체성이 없다. 레베카로 인해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레베카가 잘 되어야 댄버스가 기쁘지, 댄버스라는 개인의 정체성으로만 보았을 때에는 무의미한 존재다."(오마이뉴스,박정환)라고 말하기도 했다. 레베카와 댄버스, 그 둘의 관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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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MK뮤지컬컴퍼니


레베카와 댄버스의 관계


많은 관객들이 댄버스의 행동에서 레베카를 향한 동성애적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레베카의 침대에서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었고, 그녀를 원했던 남자들을 함께 비웃었다는 사실 등이 그 근거이다. 그리고 레베카의 사촌이자 연인이었던 잭 파벨을 이상하리만큼 경계하고 증오하는 댄버스의 태도 또한 일종의 질투 감정이라고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남자들 다 그녀를 꿈꿨지. 하지만 그 누구도 가질 수 없었어. 당신도 마찬가지."라는 가사에서 또한 레베카를 너무 사랑하기에 그녀를 자신만이 소유하고 싶어하며 질투를 느끼는 댄버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1막에서 부르는 '레베카1'에서도 레베카를 사랑하는 댄버스의 모습을 찾게 된다. 댄버스는 레베카의 생전 물건을 모두 그대로 간직하고 소중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이 노래를 부르며 댄버스는 레베카의 침대, 잠옷 등을 하나씩 꺼내보고 매우 소중하다는 듯 쓸어내리며 눈을 감고 향기를 맡는 등의 행동을 하는데, 이는 집사로서의 충성심이나 동성간의 우정으로 보기에는 이상하리만큼 과한 행동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장면은 단순히 고인이 된 전 주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보기에는 그 정도가 지나쳐서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둘의 관계를 동성애적인 코드로 묶어버리면 어색함 없이 이해가 된다. 이렇듯 극 중에 여러번 등장하는 레베카를 향한 댄버스 부인의 과한 태도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관객들이 많은데, 레베카와 댄버스의 관계를 동성애 코드선상에 놓고 보면, 댄버스의 거의 모든 대사와 노랫말들이 설득력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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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를 향한 댄버스의 감정이 동성애였다는 주장의 가장 가능성 있는 근거는 작가인 대프니 듀 모리에가 실제로 동성애 성향을 지녔었다는 사실이다. 소설 『레베카』의 뒷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대프니 듀 모리에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동성애 성향이다. 자기 작품을 미국에서 출판해준 출판인의 아내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던 일화는 퍽 유명하다. 대프니 듀 모리에도 자신에게는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모습 외에 강한 창조적 에너지가 넘치는 남성의 모습이 존재한다고 인정한 바 있다.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가 대프니 듀 모리에를 소년처럼 키운 점, 또한 부모의 직업 때문에 어릴 때 부터 자주 접한 배우 등 연극계 인물들의 상당수가 동성애자였다는 점이 그녀의 동성애 성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된다. 동성애 성향은 대프니 듇 모리에의 작품 활동에 긍정적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물론 작가가 동성애자였다고 해서 그녀의 작품 속 인물이 동성애자라고 섣불리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동성애적 코드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작품안에 깔려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다. 본인의 이러한 성향 덕분에, 작가는 아마도 레베카를 향한 댄버스의 동성애적인 감정을 완전히 이해,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를 작품 속에서 인물의 행동과 대사, 태도를 통해서 담아낸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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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K뮤지컬컴퍼니


댄버스는 레베카에 대한 애정과 집착을 넘어 결말에는 레베카로 인해 촉발되는 '광기'까지 보여준다. 댄버스의 감정은 위에서 언급한 동성애적인 사랑과 더불어, 완벽하고 아름다웠던 레베카를 우상처럼 숭배하고 동경하는 사랑까지 합쳐져서 더욱 심화된다. 뮤지컬 배우 차지연은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이 뒤엉켜 집착 혹은 광기로 보이는 것”이라며 “하나의 절대적인 대상에 평생을 바치고 그것이 사라졌을 때 엄청난 공허함을 느끼는 댄버스의 인생이 너무도 딱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뉴스컬쳐, 양승희) 평생 레베카에게 헌신하느라 정작 댄버스 자신의 삶은 제대로 살 수 없었다는 점에서 ‘딱한 피해자’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여인을 위해 평생 충성하고 복종했으며, 무한히 숭배했던 그녀가 파괴되자 자기 자신까지 파괴의 길로 내몰아 결국은 죽음에 이른 댄버스. 
우리는 그녀의 감정을 충성심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동성애적인 사랑으로 재평가해야 할 것인가?




사진출처 EMK뮤지컬 컴퍼니



[안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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