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극적으로 그려낸 인간성의 고귀함 - 셰익스피어 4대 비극 中 맥베스 [문학]

글 입력 2016.04.25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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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으로 그려낸 인간성의 고귀함 - 셰익스피어 4대 비극 中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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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써 <맥베스>를 네 번 읽은(본) 셈이 되었다. 첫 번째는 만화책으로 만들어진 <맥베스>를 초등학교 때 읽은 일이고, 두 번째는 고등학교 시절 가입한 ‘영미문학반’에서 영화로 보았던 1971년 작 <맥베스>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주 까지도 필자에게 <맥베스>는 읽어보지 않은 작품이었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야 드디어 여러 번 읽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처음 두 번은 읽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만큼 대충 또는 너무 얕게 감상했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에 들었던 문학 강의의 교수님께서는 어떤 소설을 몇 십번 읽었다고 말씀하셨었는데,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었다. ‘어차피 똑같은 내용의 작품을, 똑같은 생각을 가진 똑같은 독자인 내가 읽는 건데 여러 번 읽는다 한들 그 행위가 시간을 소비하는 것 말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맥베스> 감상을 통해서, 그 의미를 직접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래 전에 읽어서 내용이 기억이 안 나서 다시 들여다본 책들을 제외하고는, 세 번 이상 읽은(본) 작품은 <맥베스>가 처음이었다. 이번 <맥베스>는 이전의 감상을 달라지게 했고, 전에는 미처 안 보이던 부분들을 보이게 해주었으며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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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크게 변한 점은, 맥베스 부인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렸을 때 이 작품을 읽었을 때에는, 맥베스의 덩컨 왕 시해는 부인의 부추김 때문인 것으로 보였었다. 맥베스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양심과 죄책감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맥베스 부인이 다그치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맥베스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며 의문을 제기할 때도, 맥베스 부인은 “과감히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당신을 사나이셨어요.” 라며 남편의 남성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존심을 건들고, 남편인 그를 조종하는 능력과 우월함으로 그를 부추긴다. 부부라는 인연으로 맺어져 서로를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 남편에게 범죄를 저지르라고 꼬드기다니, 경악스러운 마음만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맥베스 자신의 내면의 혼란이 그런 살인을 저지르게 한 원인이라고 보았다. 물론 그러한 내면의 혼란에는 외부의 자극이 있었는데, 그 자극의 시발점은 부인의 부추김보다는 마녀들의 영향이 더 컸다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이 전에는 그녀가 남편을 부추지고 살인을 저지르라고 주장하는 장면에 주목했었다면, 이번에는 극 후반에 등장하는 맥베스 부인의 몽유병 장면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오히려 맥베스 부인은 그녀의 양심에 의해 고통 받고 있었으며 몽유병 장면을 통해서, 그녀의 양심과 영혼이 붕괴되어 가고 있음이 돋보였던 것 같다. “피비린내”가 여전히 손에 남아있다고 반복해서 잠꼬대하는 부인의 모습은 그녀가 죄책감을 상당히 많이 느끼고 있음을 드러낸다. 반복적이고 분열된 그녀의 대사가 지니는 특징은 맥베스 부인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잘 보여주고, 이전에 맥베스를 부추길 때의 철하고 강인한 효율성과 대비되어 보였다.
 
이렇게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지만, 필자가 <맥베스>라는 작품을 여러 번 읽고 보면서 변하지 않았던 감상은 맥베스라는 인물에 대한 동정심과 비극적인 종말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의 덩컨 왕 살해는, 외부 자극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는 하나 결국 분명히 자기 자신의 계획적인 범죄였다. 심지어 맥베스는 뒤따라 벌어지는 뱅코와 맥더프 부인, 그리고 그 아들의 살해 또한 자객들에게 지시한 잔인한 살인교사범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평소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정의를 추구한다고 자부해왔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극악무도한 범죄자인 맥베스의 죽음이라는 결말에 통쾌해하지 않고 안타까워하며 그를 동정했을까? 인륜과 도덕을 저버린 잔인한 행위를 저지른 맥베스를 어느 정도라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 이유는 작가가 설치한 소설 속 여러 장치들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독자들로 하여금 살인자 맥베스를 동정하게 만드는가?


1. 맥베스는 '악의 유혹'이 휘몰아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 조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들은 ‘세 마녀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극의 앞머리에 “고운 건 더럽고 더러운 건 고웁다.”라는 다소 역설적인 주문을 남기고 공중으로 사라진다. 이후에도 이 마녀들은 극에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도입하고, 어둡고 사악한 분위기를 흩어놓는다. 이것이 나에게는 마치 악한 기운을 온통 몰고 와서 맥베스에게 죄를 짓도록 다그치며 몰아가는 것처럼 보여졌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물론 개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마음 안에 어느 정도의 권력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며, 맥베스 또한 그 정도의 욕망이 잠재되어 있던 것인데 사악한 마녀들을 만나면서 외적인 자극에 의해 그것이 촉발된 것이다. 마녀들이 했던 세 가지 예언은 충신이었던 맥베스의 마음에 왕을 시해할 역심을 품게 만든다. 처음에는 황당한 예언에 그저 기분 좋아하고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이후 실제로 코도의 영주가 되자, 나머지 세 번째 예언이었던 “맥베스를 환영하라! 왕이 되실 분이다!”가 실현될 수도 있다고 기대하게 되고, 그 생각은 맥베스의 무의식 속에 잠재해있던 야심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이러한 꼬드김에 넘어가 맥베스가 수 차례 살인을 저지르며 주변 인물들을 제거하지 않았더라도, 마녀들의 예언은 얼마든지 순리에 따라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맥베스 자신도 말했듯이 “운에 따라 왕이 될 것이라면” 구태여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도 “운에 따라서 왕관을 쓰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막 3장 145-146행) 내가 이러한 시선, 본디 선했던 맥베스가 초자연적인 세력의 개입 때문에 악의 유혹에 결국 넘어가고 만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읽었기 때문에, 이것이 그가 저지른 잔인무도한 범죄 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 비난을 누그러뜨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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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맥베스가 가진 살인자로서의 악한 마음이 아니라 그것을 억제하고 싶어 하는 선한 본심이 돋보였다.
1막 7장에서 맥베스는 독백을 통해, 자신의 친척이자 왕이며, 그 날 밤에는 자신을 믿고 손님으로 그 곳을 찾은 덩컨의 살해를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 거사 후에 자신이 직면해야 할 상황을 예상하며 망설임을 드러내는가 하면 덩컨의 훌륭한 점을 묘사하기까지 한다. 이는 1막 7장의 “게다가 덩컨 왕은 너무나 겸손하게 왕권을 행사하고 그 권좌가 너무나 깨끗하여, 그 덕행은 이 크게 저주받을 암살에 맞서서 나팔 혀 단 천사처럼 그를 변호할 것이며” 라는 맥베스 독백에서 드러난다. 부인의 설득과 그의 애초 의도와는 달리 그의 마음은 곧 왜 자신의 시해 행위가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부당하며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들로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분에 넘치는 야망” 외에는 살인을 저지를 힘이 없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이런 장면은 맥베스에게 선한 본성, 살인의 충동을 불러오는 악에 반하여 착한 선의 편에 서고 싶어 하는 양심이 그래도 다소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여기에서 나는 악의 유혹에 저렇게 스스로 저항하는 맥베스를 동정하고 안타까워했으며, 그의 처지와 혼란스러운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도 치열하고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그가 인간성의 고귀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다소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지금 나의 감상에 더 인상 깊게 남는 것은 잔인무도하게 거듭된 맥베스의 살인이 아니고 악행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에 대한 동정심과 이것으로 알아 볼 수 있는, 선한 본성을 가진 인간성의 고귀함이다.



비극적으로 그려낸 인간성의 고귀함. 이제 W.셰익스피어에게 직접 물을수는 없겠지만, 이것이 저자의 본래 목표가 아니었을까? 작가가 치열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맥베스의 내적 갈등, 즉 선한 힘과 악한 힘의 대립 구조는 그의 죽음으로 작품이 끝날 때까지 선한 본성이 그 안에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저자인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맥베스를 동정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그를 사악한 살인범이 아니라 인간성의 고귀함을 입증하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작가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속 인물의 악행과 그의 고통스러운 삶과 죽음을 통하여 인간성의 고귀함을 비극적으로 우리에게 인식시켜 주는 것 같다. 


[안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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