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처가 나를 집어삼키지 않을 수 있게[문화전반]

상처가, 내 기억의 일부가 스스로를 집어삼키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글 입력 2016.04.14 15:4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우리는 누구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발표 중 망신을 당했던 비교적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성폭행, 9.11테러와 같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사건들까지 사람마다 다양하다. 때때로 그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히 극복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상처를 내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곪을 대로 곪아버린 상처를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은 혼자 견뎌내는 것보다 그들에게 더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 의해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예술이라는 그릇에 자신의 트라우마를 담아낸 사람들이 있다. 
 
 



쿠사마 야요이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녀의 작품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땡땡이’


 부유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난 쿠사마 야요이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난 것, 어머니가 엄격했던 것. 그녀가 소녀였던 시절, 일본은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1929년에는 대공황이 터져 세계 경제가 침체되었고 1931년 일본은 만주사변에 이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으켰다. 사회의 불안정성, 전쟁의 혼란함으로부터 쿠사마 야요이만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외부적 상황보다도 어린 소녀에게 더욱 직접적인 문제가 되었던 것은 어머니의 학대였다.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을까, 이유야 어찌됐든 어린 시절부터 쿠사마 야요이는 환각, 편집증 같은 정신이상증세를 보였다. 그렇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것을 병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교육의 부족이라고 여겨 보다 엄격하게 그녀를 체벌할 뿐이었다.  

 
b14f94e59b3476c0f25eaeed3acfa6a7.jpg▲ -구글 이미지 발췌
 

 부모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아도 모자랄 시기에 자신의 상태를 부모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했던 충격은 그녀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음속 상처가 곪아가던 중 그녀는 집안의 붉은 꽃무늬 식탁보를 보고 난 후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잔상이 온 집안과 심지어는 자신의 신체까지 뒤덮기 시작한 것. 그 뒤로 이러한 환영은 평생 그녀를 쫒아 다녔고 이것이 그녀의 예술 활동의 주 소재가 되는 ‘점’과 ‘망’의 시작이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예술가가 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곤혹스러운 병, 불안신경증, 강박증과 편집증이 원인이다. … 귀신에게 빼앗길 듯싶은 넋은 스케치북 위에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잠깐 낮잠을 잔다. 아, 이것으로 오늘까지 나는 살아있다." 
-쿠사마 야요이



1399865316091.jpg▲ - 구글 이미지 발췌
 
20140505_191923.jpg▲ -구글 이미지 발췌
 

 그녀는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 환영을 조금이라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캔버스에 점과 망의 형태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캔버스도 그녀의 상처를 견뎌내기엔 역부족이었는지 점들은 네모난 틀을 벗어나 점차 외부의 공간을 향해 뻗어나갔다. 마치 과거에,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녀를 어지럽히는 환영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처럼 말이다. 
 


“미술이 아니었다면 나는 자살했을 것이다.” 
-쿠사마 야요이



 그녀는 48세가 되어서야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았다. 그 때까지 그녀가 자살하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오로지 미술뿐이었던 것이다. 쿠사마 야요이는 여전히 자신의 환영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건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신경숙
 
 
 심리치료 과정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저항’은 환자가 어떠한 기억을 떠올리기를 거부하거나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피하는 것과 같은 현상을 말한다. <엄마를 부탁해>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최근 표절 논란으로 대중의 뭇매를 맞은 신경숙이라는 작가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었다. 


다운로드.jpg▲ -구글 이미지 발췌
 

 자전적 소설인 <외딴방>은 신경숙이 열여섯 살이었을 때부터 스물살이 될 때까지의 시간을 담고 있다. 고향에서는 나름대로 귀하게 자랐던 주인공 ‘나’는 구로 공단에 취직해 도시 어느 한 구석 ‘외딴 방’에서 큰오빠와 함께 살아간다. 도시는 삭막하고 황량했으며 노동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이팔청춘 꽃다운 나이에 낮에는 공장,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는 일이 즐거울 리 없었다. 그나마 ‘나’의 생활에 힘이 되주었던 것은 필사하는 일과 희재 언니였다. 공장에서 만난 희재 언니는 ‘나’가 잘 따르고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자살했다. 아직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 어렸고, 마음 속 깊숙한 곳에 구로 공단에서의 기억을, 희재언니를 가두어 버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간은 흘러만 갔고 ‘나’는 스물 하나, 스물 둘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결국 신경숙은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의 가혹한 노동과 희재언니를 외딴방에 가두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녀도 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지난 시간 동안 단 한순간도 외딴방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기억을 힘겹게 한 권의 책으로 풀어놓고 나서야 신경숙은 외딴방 밖으로 조금이나마 걸어 나올 수 있었다. 자신의 과거를 똑바로 바라보고 피하지 않을 수 있었다. 

 



 넘어져 상처가 난 자리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는 것보다는 깨끗이 씻어주고 통풍이 잘 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상처는 더 빨리 낫는다. 트라우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트라우마나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보통 그것을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묻어버린다. 때로는 그 기억을 너무 깊숙한 곳에 숨겨두는 바람에 자신도 그 존재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어떻게 곪아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하지만 쿠사마 야요이와 신경숙은 그것을 바깥으로 꺼내놓았다. 부끄러웠을 것이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남들이 알게 되면 남들에게 버림받을까봐 두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미술을 하지 않으면 자살할 것 같았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정신이상을 누가 밝히고 싶겠는가. 그래도 그들은 용기를 냈고 예술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상처를 세상 앞에 떳떳하게 공개했다. 덕분에 그들은 트라우마가 자신들을 갉아먹고 집어삼키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상처를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의 아픔과 그것의 깊이를 내가 감히 그렇게 밖으로 내놓으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사마 야요이와 신경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큰 희망이 되리라 생각했다. 당신이 가진 상처와 아픔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부끄러워서 숨겨야만 하는 흉터가 아니라는 것을, 고칠 수 없는 질병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예술을 하라는 것도, 사람들 앞에 당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트라우마가, 상처가, 내 기억의 일부가 스스로를 집어삼키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반채은.jpg
 

[반채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