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만의 이상향, 카모메 식당 [시각예술]

처음으로 꿈꾸고 싶은 공간이 생겼다.
글 입력 2016.04.0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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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꿈꾸는 이상향이 있다. 어떤 이에게 그것은 돈을 벌지 않아도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에게 그것은 모두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이상향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실현불가능 한 것을 꿈꿀 만큼 상상력이 풍부하지도, 이상적이지도 않아서 그런 것일까. 유토피아는 내 삶에 존재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굳이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유토피아가, 처음으로 꿈꾸고 싶은 공간이 생겼다.
 
  
noname01.jpg▲ -<카모메식당> 이미지 캡쳐 발췌
 

“저 여자 여기서 벌써 한 달 째야.”
“하지만 손님을 본 적이 없어.”


 핀란드 헬싱키 어느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카모메 식당.’ 지나가는 할머니들이 하는 말에 따르면 한 달 동안 손님이 단 한 명도 온 적이 없다. 그냥 지나가면서 힐끗 쳐다보는 사람들이 전부다. 유럽, 그것도 한참 북쪽에 위치한 핀란드에 느닷없이 일식집이 생겼으니 이상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바로 이 이상한 곳이 최근 나의 ‘이상향’이 된 곳이다. 





 그녀를 닮은 카모메 식당


noname02.jpg▲ -<카모메식당> 이미지 캡쳐 발췌
 

    카모메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은 일본 여성, 사치에. 잔꽃무늬가 잘 어울리며 체구는 작지만 어딘지 모르게 야무져 보이는 그녀가 무슨 이유로 핀란드에 일식집을 차렸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하루하루를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살아간다. 밖에서 식당 안을 바라보는 이에겐 그저 짧은 목례와 함께 미소지어보일 뿐,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손님이 있든 없든 그릇을 깨끗이 닦고, 테이블을 정리한다. 일과가 끝나면 집에서 합기도의 기본기라고 하는 무릎자세를 하고 수영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녀의 일과는 지겨우리만치 단조롭고 평범하다. 영화 내내 그녀의 생활 범위는 식당, 집, 수영장 정도일 뿐이고 하는 일도 항상 비슷하다. 게다가 사치에는 어떤 면에선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한 달 만에 처음 온 손님을 처음 왔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커피를 공짜로 주지 않나, 헬싱키 여행정보란에 카모메 식당을 싣자고 하니 식당 분위기랑 맞지 않는다고 거절하지 않나. 그래서 <카모메 식당>을 정말 재미없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noname03.jpg▲ -<카모메식당> 이미지 캡쳐 발췌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무척이나 지루해보이는 그녀의 삶은 적어도 그녀가 주인인 것처럼 보였다. 돈에 얽매이지도, 시간에 쫓기지도 않으며 자신이 생각한대로 자신의 식당을, 그리고 삶을 이끌어나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돈만 넉넉하면 누군들 저렇게 여유부리며 살지 못하겠느냐고 따져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모두가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에, 시간에,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자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나 자신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당신의 식당은 당신을 닮아있다."


 영화 속에서 식당 손님인 리사가 사치에에게 한 말이다. 과연 사치에보다 바쁘게, 더 많은 변화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치에보다 행복한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사치에는 분명히 행복해 보인다. 그것은 아마 다른 이유가 아니라  자신을 닮은 가게를, 스스로가 주인공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카모메 식당과 사람들


 일본만화 마니아인 토미부터 시작해서 수화물을 잃어버리고 기약 없이 시간을 보내는 마사코, 갑자기 집을 나간 남편 때문에 슬픔 속에 살아가는 리사까지.  평생 아무도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카모메 식당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noname04.jpg▲ -<카모메식당> 이미지 캡쳐 발췌
 

 하나 같이 가슴 아픈 속사정을 가지고는 있는 그들은 그들은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햇살이 들이치고 은은한 하늘색이 감돌며, 정성이 담긴 음식 냄새가 풍기는 카모메 식당의 따스한 분위기에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이 덤덤하게, 자연스럽게 오고 간다. 그들은 그것을 울부짖으며 극적으로 표출 하거나 그런 사연이 어떤 사건의 도화선이 되지도 않는다. 단지 그저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일 뿐이다.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파티를 하는 것도,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역시 아니다. 그들은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깨를 빌려주며 서로를 의지 한다. 그게 전부인데도 각각의 인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에 활기가 띄고 웃음이 많아진다.

 딱히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나의 속사정이 때로는 가십거리가 되기도 하고, 약점이 되기도 하는 각박한 세상이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아픈 사연을 털어놓기를 힘들어하고 털어놓고 나서 나의 이런 모습에 상대가 실망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카모메 식당처럼 그런 우려스러움 없이 서로를 믿고, 정성이 담긴 음식들을 먹으며 가식이 아닌 진심어린 위로가 오고가는 그런 공간이라면 쓰라린 마음도 차츰 나아지지 않을까. 
 




 “동화 같다.”


우리는 보통 현실에서 보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보게 되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카모메 식당>이 나에겐 그랬다. 따스한 햇살과 아늑한 식당, 그 속에서 자신을 닮은 공간을 꾸려나가는 사치에가 동화 속 주인공 같았다. 현실에 있을 법 하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존재하기 어려운 공간이라서 오히려 더 마음이 갔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고, 그러한 것들을 기대해 본 적도 없지만 이번 만큼은 언젠가 내게도 ‘카모메 식당’이 생기기를 조심스레 꿈꾸어 본다.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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