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의는 과연 시작했는가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4.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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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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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내가 <배트맨 V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을 보고 쓰는 글이다.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그랬듯이 나 또한 이 영화를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이라니! 안 설레고는 못 배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영화는 나에게 실망감을 주었다. 사실 제목부터가 마음에 안들었다. vs도 아닌 v를 쓰며 이 둘의 대결구도를 완화해서 보여줄 것이라고 암시하며 실제로 감독이 이 둘의 대결만 보지 말아달라고 말하며 제목의 의도를 들어내었다. 이때부터 개인적인 기대와는 영화가 거리가 멀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딱 봐도 저스티스 리그를 암시하는 Dawn of Justice라는 부제는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적중했다. 이러한 나의 불평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글은 영화에 대한 나의 불평이 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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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영화는 배트맨인 브루스 웨인의 시점으로 전개되며 영화가 브루스 웨인을 주 캐릭터로 할 것을 보여준다. 물론 슈퍼맨인 클락 켄트도 영화에 큰 비중을 차지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만 연출때문인지 캐릭터 때문인지 브루스 웨인에게 밀리는 느낌이 있다. 아무래도 연출면에서 그렇게 의도한 면이 크다고 본다. 그 덕분에 브루스 웨인이 슈퍼맨에 대하여 왜 그렇게 적대적이며 그가 왜 슈퍼맨하고 대립해야하는지도 꽤나 그럴 듯 하게 설명된다. 슈퍼맨과 조드장군이 싸울 때 웨인 컴퍼니의 한 건물이 그대로 파괴되게 된다. 브루스 웨인은 자신의 직원들이 그 싸움 때문에 희생되는 것을 직접 지켜보았다. 이로 인해 그의 개인적인 증오와 슈퍼맨의 압도적인 힘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났다. 브루스 웨인의 개인적인 증오를 잘 보여주는 것이 월레스 키프라는 인물이다. 키프는 메트로폴리스 사태 때 두 다리를 잃은 웨인 컴퍼니의 직원인데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슈퍼맨에 대한 강한 분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영웅으로서의 수퍼맨을 거부하고 슈퍼맨에게 사과와 처벌을 요구한다. 그리고 브루스 웨인에게도 꾸준히 책임을 탓하는 편지를 보내는데 웨인은 키프의 존재를 전혀 모르다가 그의 사후 알게 되고 분노하게 된다. 이 분노는 브루스 웨인이 자신의 직원에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생기는 것과 더불어 슈퍼맨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커지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또한 브루스 웨인은 슈퍼맨이 메트로폴리스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힘에 불안감을 느끼는데 이는 슈퍼맨이 언제 마음을 바꿔서 인류를 쓸어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불안감은 브루스 웨인이 꾸는 꿈을 통해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물론 이 꿈이 다음의 저스티스 리그를 위한 복선이라고 보는 의견도 많지만 영화 내적으로는 브루스 웨인의 불안감을 나타낸다. 이렇게 배트맨의 대립이유는 잘 설명해주는 반면 슈퍼맨의 생각은 그렇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배트맨의 방식이 마음에 안 들 뿐이다. 배트맨은 고담시의 범죄자들을 폭력과 낙인으로 제압하는데 평화를 사랑하는 클락 켄트는 이 방식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기사를 쓰려한다. 그렇다. 나쁘게 말하면 그저 자기 방식과 맞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그것도 사실 매우 위선적이다. 슈퍼맨은 자기 여자를 구할 때는 사람을 그냥 날려버린다. 분명 죽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폭력은 나쁘다고 배트맨을 규탄하니 얼마나 어이가 없는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슈퍼맨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영화는 빌런인 렉스 루터를 이용하여 둘을 억지로 싸움에 붙인다. 렉스 루터 또한 딱히 큰 이유없이 싸움을 붙인다. 이렇게 별거 없이 싸우는데 싸움을 그만두는 이유조차 별거 없다. 억지로 싸우는데도 슈퍼맨은 자신의 어머니가 인질로 잡혀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 죽어가고서야 그때야 말한다. 이것 또한 이해가 안가지만 어쨌든 말한다. 그런데 어머니를 이름으로 부른다. 내가 미국에서 안 살아봐서 모르지만 미국에서도 자신의 부모님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특이한 경우라고 알고 있다. 아무리 봐도 배트맨의 어머니와 슈퍼맨의 어머니의 이름이 같은 점을 이용하여 배트맨이 슈퍼맨을 동조하게 하려는 각본가의 농락으로 보여진다. 그것도 슈퍼맨이 그 이름을 자신의 어머니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 3자 로이스 레인이 갑자기 등장하여 대신 말해준다. 왜 하필 그녀가 말해야 했을까? 슈퍼맨 본인이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나는 이 부분이 이해가 안 간다. 어쨌든 같은 어머니의 이름아래 배트맨은 슈퍼맨 또한 인간과 같은 감정을 지녔고 인간과 같이 봐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싸움을 그만두게 된다. 배트맨의 감정은 기억의 플래시백으로 보여지는데 문제는 이 기억이 어머니와의 추억이나 그리움이 아니라 그냥 본인의 어린 시절을 나열해서, 심지어 영화 도입부에 보여주었던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트맨이 어머니와 연관된 감정으로 슈퍼맨을 봐주는 것이 아닌 매우 뜬금없이 옛날생각이 나서 슈퍼맨을 봐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그 둘이 화해하는 이유가 어머니의 이름이 같아서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는 이해가 되지만 이런 식의 연출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이 극적인 화해후에는 평범하게 영화가 흘러간다. 빌런 렉스 루터가 계속 준비하던 극강의 괴물이 나타나고 조금씩 보이던 원더우먼이 나타나고 셋이 힘을 모아 괴물을 무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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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히 Dawn of Justice에서 저스티스는 정의와 저스티스 리그라는 중의적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정의는 잘 찾아볼 수가 없다. 배트맨은 정의를 위해서 슈퍼맨에 대항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결국 그것을 저버리고 말았다. 정의를 지키는 것과는 별개로 슈퍼맨의 인간성만 보고 그냥 자신의 신념을 바꿨다. 슈퍼맨은 어찌보면 매우 정의로운 캐릭터지만 그 점이 잘 부각이 되질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슈퍼맨의 정의롭지 않는 모습,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적을 죽인다거나 죽이러 가는 행위 등을 부각시킨다. 물론 영웅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의로움은 영웅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정의로움이 없다면 영웅이 될 수 없고 영웅이라면 정의로워야 한다. 하지만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들은 영웅이 아니라 그저 힘세거나 돈 많은 코스튬입고 취미로 자경단을 하는 사람이다. 이 영화는 정의를 시작하기는커녕 영웅들의 정의를 없애버렸다. 정의가 없는 영웅이 과연 영웅인가 하는 고뇌 따위는 없다. 그저 정의를 저버린 영웅들만 보여줄 뿐이었다.


[권중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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