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초기 실존주의자의 메타소설, 미겔 데 우나무노의 < 안개 > [문학]

*소설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 입력 2016.04.0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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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에는 소위 말해 통과의례라는 것이 있다. 태어나고 어른이 되고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죽음을 맞이하는, 어떤 문턱을 넘는 순간 말이다. 사람들은 대게 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모두들 그렇게 살아 왔고 나도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생’, ‘성년이 되는 것’, ‘천직(天職)을 찾는 것’, ‘사랑’, ‘출산과 육아’, ‘죽음’은 따지고 보면 모두의 일이 아니다. 개인의 일이다. 다른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운명 속에서 나 홀로 감당해야하는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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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중독을 비판하는 일러스트 (이미지 출처: 구글)


  현대 사회는 그런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무궁무진하게 제공한다. 마음만 먹으면 SNS로 콘텐츠를 제작해 일반인이 수십만으로부터 주목 받을 수도 있고, 굳이 문학계에 정식으로 등단한 전문 작가가 아니더라도 중소출판사가 많아졌기 때문에 웬만한 책은 낼 수 있게 되었다. 패션이나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가지고도 자기 자신을 얼마든지 꾸미고 드러낼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이 사회는 그런 ‘나’가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어떤 프랜차이즈의 커피를 마시는지, 어떤 패션 유행을 따르고 있는지, 어떤 몸매를 유지하는지, 어떤 즐거운 연애를 하고 있는지 등의 척도에 맞춰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는 ‘나’라는 사람을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외적인 굴레에서 벗어난 진짜 ‘나’는 누구일까? 그 존재가 있기는 할까? 이 물음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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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데 우나무노의 <안개> (이미지 출처: Yes24)


  최근에 어떤 한 책을 읽었다. 스페인의 위대한 지성인 미겔 데 우나무노의 <안개>라는 소설이다.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지 않고, 주인공의 생애가 엄청나게 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면서도 너무 짧은 것 같기도 한 책이다. 이야기의 주된 골격인 주인공 남자 아우구스토와 에우헤니아, 로사리오, 마우리시오의 사각관계 치정극보다 그 속에서 파장을 일으키는 인간 존재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목소리가 훨씬 더 큰 것이 그 이유인 것 같다. 


  아우구스토는 뜬금없이 벼락에 맞은 사람 마냥 커다란 충격을 느끼며 길에서 본 어여쁜 피아니스트 에우헤니아에게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첫눈에 말이다. 그러나 그녀에겐 건달 같이 껄렁하고 게으른 애인, 마우리시오가 있다. 아우구스토는 환희에 취해 그녀에게 구애를 하면서 점차 사랑에 빠진 ‘자기 자신’과 대상인 ‘여성’ 자체에 대한 깊은 정념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복잡한 심리를 친구나 자신의 하인들, 그리고 길에서 주운 개, 새로운 느낌으로 자신을 흔드는 여자 로사리오 등에게 털어놓는다. 바로 이런 순간순간에 이성과 감성, 삶과 예술, 사랑, 결혼의 유형과 출산, 여성, 죽음 등에 관한 철학이 정신없는 대화와 독백으로 쏟아진다. 인생의 희비극이 전하는 심오한 의미들에 관해 이 저자이자 철학자가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제 내 고독한 하늘에서 에우헤니아의 두 눈이 빛을 발하고 있다. 그 눈은 우리 어머니가 흘린 눈물의 광채와 함께 나를 비춰주며,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끔 한다. 달콤한 환상이여!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러한 사랑은 존재의 안개를 부수고 구체화시켜주는 고마운 비와 같은 것이다. 사랑으로 인해 나는 내 몸의 영혼을 느끼고 어루만질 수 있다. 사랑으로 인해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다. 영혼 자체가 사랑, 그리고 육화(肉化)한 고통이 아니겠는가? -p.75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현실인가 아니면 허구인가? 이 모든 것은 신 아니면 누군가의 꿈은 아닌가? 그래서 그가 깨자마자 사라져버릴 것은 아닌가? 그러기에 우리는 그를 잠들게 하고 꿈을 꾸게 하기 위해서 그에게 기도하고 찬미의 노래로 경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종교의 모든 예배와 의식은 신이 깨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를 꿈꾸도록 하기 위한 방식은 아닌가? -p.162



“여성에 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심리적 실험은 결혼이야.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여성의 영혼을 심리적으로 경험할 수 없을 거야. 여성 심리학의 유일한 실험실은 결혼이야.”
“그러나 그것은 구제 대책이 없잖아!”
“진실한 실험이라면 구제 대책 같은 건 없어. 무언가 실험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배를 불사르지 않고 후퇴의 길을 열어놓는다면 아무것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거야. 자신의 육체 일부를 절단해 보지 못한 외과 의사를 결코 신뢰해서는 안 되며 미치지 않은 정신과 의사에게 너를 맡기지 마. 그러기에 결혼해. 네가 심리학을 알기 원한다면 말이야.” -p.239



  결론이 나지 않는 인물들의 논쟁과 독백을 보고 있노라면 끝을 알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그러나 가장 놀랍고도 중요한 지점은 에우헤니아가 잔인하게 아우구스토를 속이고 마우리시오와 떠나버린 후다. 그가 자살을 결심하며 저자인 우나무노 선생에게 찾아가기 때문이다. 자살을 허락하지 않는 작가와 자살로써 죽고 싶지만 소설 속의 인물이기에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허구적 존재의 대화는 거의 야구배트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처럼 얼얼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나무노는 그에게 끝까지 자살을 허락하지 않았고 주인공에겐 그저 저자가 신적으로 부여한 예정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할 뿐이다. 


  작가에게 쏟아내는 아우구스토의 반격을 보라. 



그러니까 안 된단 말이죠? 당신은 내가, 내가 되고, 안개로부터 벗어나고, 살고 살고 살고 나를 보고, 나를 만지고, 나를 느끼고 아픔을 느끼며 내가 되도록 허락하지 않겠다는 거군요. 그러니까 안 된다는 말이군요? 그러니까 허구의 실체인 나는 죽어야 하는군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저를 창조해주신 우나무노 선생님, 당신도 역시 죽을 것입니다. 당신 역시도 원래 있었던 무의 세계로 돌아갈 것입니다. 신은 당신을 꿈꾸는 것을 중단할 것입니다!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 네, 비록 원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죽을 거예요! 당신은 죽을 거예요! 그리고 내 이야기를 읽는 모든 사람들도 죽을 것입니다! 모두가, 모두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나와 같은 허구의 실체들! 나와 똑같이! 모두가, 모두가, 모두가 죽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소셜적 허구의 실체인 나, 아우구스토 페레스는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나의 창조자 돈 미겔 당신도 하나의 소셜적 실체에 지나지 않으며 당신의 독자들도 당신의 희생물인 나, 아우구스토 페레스와 똑같이 소셜적 실체일 뿐입니다 -p.292

* 소셜: 스페인어로 소설을 의미하는 ‘노벨라(novela)’의 개념을 전복하기 위해 작가가 만들어낸 신조어인 ‘니볼라(nivola)’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작품은 독특한 구조로 구성되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1914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오늘날까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니, 현재에 더 필요한 소설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스스로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인간, ‘나’ 자신을 이토록 대담하고 잔인하게 해체시킬 수 있을까? 내가 내 자신의 존재가 떠있는 호수에 돌을 던져 파동을 일으키는 것. 책을 덮고 나면 밀려 올 줄 알았던 공허함이 오히려 실존적 감동으로 되돌아온다. 삶을 규정하던 굴레, 명확해 보이는 실체들에 회의를 던져야 한다. 언어로 그 의미가 제한되는 모든 것들 그러니까 영원할 것 같은 순간과 특별할 것만 같은 나의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환상과 내 자아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면서 더 견고한 ‘나’에 대한 인식이 탄생한다. 우리라는 존재는 그렇게 단일하지 않다는 것. 속을 알 수 없는 깊고 넓은 안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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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소설가이자 교육자,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노 (이미지 출처: 구글)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자 안개 속에서 휩싸여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시야가 걷혔다. 그리고 허구적 존재였던 인간 ‘아우구스토’가 내 눈 속으로 생생하게 걸어왔다. 내 앞에는 그저 한 인간, 살아 있는 ‘살과 뼈’를 가진 인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가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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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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