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청춘, 아리도록 아프고 한없이 무거운. '파수꾼'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3.3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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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아리도록 아프고 한없이 무거운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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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작은 한 소년의 죽음이었다. 허나, 의아하게도 소년이 죽은 후 주변은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고요했다. 시릴 듯 낮은 채도의 프레임. 교차되는 화면들 속에서 기태라는 이름을 한 소년은 학교폭력의 가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화면이 바뀐다. 소년의 아버지가 찾아간 친구는 기태와 친하냐는 한 마디에 미묘하게 표정이 굳는다. 다시 화면이 바뀐다. 소년의 서랍을 뒤지다 발견한 사진 속 너무나도 친한 듯한 세 명. 그들은 다정하게 웃고 있다. 가장 행복한 순간 속에 있는 듯 말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소년에 대해 무어라 말하지 않는다. 사진 속 친구 희준에게 찾아간 그는 그에게 사실을 묻는다. 머뭇거리다 꺼내는 애기들은 남 얘기 하듯 의례적인 얘기들뿐. 기태와 그들 사이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며 대답을 회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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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소년의 죽음에 대해 침묵하는 것일까. 기태의 아버지가 기태의 흔적을 뒤쫓으며 진행되는 서사의 시작에서 기태의 죽음과 이후의 침묵은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그는 활발하고 주위 친구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존재로 비춰진다. 또한 그에게는 동윤과 희준이라는 둘도 없는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집을 오가고 학교에서부터 인적 없는 기찻길에서 해가 질 때까지 캐치볼을 하는 등 일상의 대부분을 함께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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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없다


 희준은 함께 노는 또래 여학생들 무리 중 하나인 보경을 마음에 둔다. 그러나 그런 희준을 위해 계획된 그녀들과의 여행에서 기태에게 호감의 표시를 보이는 보경의 행동은 기태와 희준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드는 불씨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찮게 보경과 기태가 단 둘이서 얘기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희준은 자신과 보경을 이어줄 것이라 호언장담하던 기태에게 품어선 안될 가장 원초적이고 비틀린 감정의 시선을 갖게 된다. 


 며칠 뒤, 친구들 사이에서 가족사가 나오자 말을 돌리는 기태의 모습을 보고 눈짓을 주고 받는 희준과 재호의 모습을 포착한 기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말을 멈추고 이윽고 재호에게 눈짓의 의미를 추궁한다. 그리고 눈짓의 의미가 결국 모든 것을 주고 싶던 친구에게도 차마 드러낼 수 없었던 기태의 가족사에 대한 얘기라는 것을 듣게 된다. 감춰왔던 소중한 친구와 감추고 싶던 가족사의 관계에 있어 기태는 전자를 선택하게 되고 그들에게 말할 수 없던 진실을 동윤과 희준에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가 미처 털어내지 못한 소년으로서의 최소의 자존심이 기태가 뱉어내던 소통의 끝자락을 잘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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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조각의 자존심과 비틀린 시선. 이들이 만들어낸 결말은 처참했다. 기태가 희준을 위해 선택한 소녀의 고백에 대한 거절은 희준에게 비춰지지 못했다. 그로 인한 희준의 비틀린 시선은 기태가 친구를 위해 선택하고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자존심의 잔여물들을 자극했다. 결국 서로에게 ‘성숙하지 못했던 소통’이 만들어낸 파장은 맞물리게 되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폭발하고야 만다. 사춘기의 고등학생이 가지는 원초적인 힘의 차이에서부터 정해지는 서열이 기태와 희준의 사이에도 매겨진 것이다. 기어코 기태가 희준에게 휘두른 폭력으로 인해 둘의 관계의 끈은 끊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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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태에게 있어 친구라는 존재는 가족의 의미와 동등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던 감정이 동윤과 희준이라는 친구들의 존재로 인해 대체되어 왔기에 기태는 희준에게 다시 한 번 다가간다. 괜찮아질 것을 기대하면서 둘 사이에 존재했던 소통의 간극을 얼버무리고 만다. 다 괜찮을 거라고. 결국 표면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로 비춰진 기태와 희준의 관계에 있어 절대적인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태 : 얼굴에 상처는 좀 괜찮냐.

희준 : 왜이래.

기태 : 경계 좀 하지마라. 그냥 얘기하고 싶어서 그런거니까.

희준 : 무슨 얘기.

기태 :  이제 그만 하자.

희준 : 뭘 그만해.

기태 : 그냥, 그냥 이런거 다.

희준 : 나한테 언제부터 선택권 있었냐.

기태 : 그래. 내가 그만 할게, 내가.
그러니까 너도 이제 더 이상 이러지 마라, 응?
미안하다 희준아.

희준 : 미안하다는 말 쉽게 나오네. 미안해 할 필요 없어.
사과 받고 싶지도 않고

기태 : 무슨 소리야.

희준 : 사과 받고 싶지 않다고. 너한테

기태 : 야, 남은 고민고민해서 얘기하는건데 너 태도가 그게 뭐냐?

희준 : 나도 고민고민해서 진심으로 얘기하는 거야.

기태 : 왜 그러는거야, 어?

희준 : 나 다음주면 전학 가. 니 덕분에.
그래서 별로 사과 받고 싶지 않다고 너한테.
전학 안갔으면 너한테 까이기 싫어 받아줬겠지만
다음 주면 우리 볼 사이 아니잖아.
너 나 볼꺼야? 아니잖아.
근데 내가 뭣하러 받아줘. 안그러냐?

-파수꾼 中 희준과 기태의 대화



청춘이 버텨야할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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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미성숙한 소통’은 비단 희준과 기태와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동윤은 둘 사이에 존재하던 간극에 대해 알지 못했고, 기태와 희준은 애써 그에게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 동윤은 비틀어진 그들의 관계를 돌리기 위해 기태를 다그친다. 허나, 동윤도 성숙하지 못한 소년일 뿐이다. 기태가 가지고 있던 진심의 깊이를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한다. 서로가 알아주기만을 바래왔던 미묘하고 복잡했던 감정들, 묵혀진 그들의 진심은 다시 수면위로 들어올릴 수 없을 만큼 불어 있었다. 더 이상 소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크기였다.



기태 : 부탁이니까 이러지 마라.
너까지 나한테 이러지마 진짜 제발.
내가 어떻게 해야돼.

동윤 : 그냥 나가시라구요.

기태 : 아 진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거든.
진짜 내가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다.
진짜, 너까지 이러면 안돼.

동윤 : 나가라고

기태 : 동윤아 너까지 이러면 안돼 진짜
너만큼은 나한테 있어서

동윤 : 나만큼? 나만큼이라니
내가 뭔데, 응? 착각하지마.
착각하지 말라고.
너한테 기분 상해서 이러는거 아니니까 똑바로 들어.
내가 네 진정한 친구다, 이해해줄 사람 나뿐이다 지껄일때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는지 알아?
단 한번이라도, 내가 네 진정한 친구였단 생각하지마라.
생각만해도 역겨우니까.

기태 : 진심이야?

동윤 : 네가 더 잘 알지 않냐.
네 새끼 입버릇처럼 하던 얘기 있잖아.
가식적인 새끼 존나 싫어한다고.
근데 웃긴게 뭔지 알아?
네가 제일 가식적이야.
말은 똑바로 하면서 행동은 왜 그 따위냐.
그러니까 애들이 좆같이 보지.
네가 역겨우니까 네 주변 애들 다 너 떠나는 거야.
네가 옆에 있으면 토할 것 같거든. 알어?

기태 : 그거야? 그게 내 모습이야?

동윤 : 어

기태 :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동윤 : 아니, 처음부터 잘못된건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파수꾼 中 동윤과 기태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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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 속에 있는 소년들은 위태로웠다. 청춘에게 있어 친구라는 존재는 위태로우면서도 놓을 수 없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기에, 그들은 늘 서툴렀고 서로에게 상처받았다. 서로에게 무엇을 원했던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기태의 뒤늦은 '미안해'라는 한 마디에도 돌이킬 수 없었던 관계.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라는 동윤의 비수 같은 한 마디에 기태를 지탱하던 최우선의 가치를 부정 당한다. 서로를 지탱하고 있던 끈들이 하나 둘 풀리다 마지막, 온 몸을 지탱하던 단 하나의 끈마저 끊긴다. 그리고 저 아래로, 끝없이 떨어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직 온전치 못한 소년에게 미성숙할 수 밖에 없었던 소통은 결국 기태를 극단적으로 내몰게 되었으며, 동윤과 희준에게 잊을 수 없는 낙인을 선사한다. 그들에게 청춘이 감당해야 하는 소통은 너무도 힘겨운 것이었고, 버틸 수 없어 내려앉은 그들의 내면에 수많은 생채기를 내고 그 흉터에 선명히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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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 없어진다고 해도 나한텐 니가 있잖냐
내 맘 알잖아 너.
중학교때도 넌 나 알아줬잖아.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비참해지더라도
너만 알아주면 돼.
그럼 됐어. 된 거야.

-기태




[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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