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닉은 왜 사기꾼이 되었나 - 낙인과 차별의 주토피아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3.3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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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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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토피아’가 ‘쿵푸팬더 3’을 제치고 전세계 애니메이션 흥행 1위에 등극했다. 평소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지 않지만 호기심에 영화관을 찾았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가젤이 열창하던 ‘try everything’을 흥얼거리며 영화관을 나오고 있었다. 작년 성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으로 크게 흥행했던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약간의 실망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인간의 다양하고 충동적인 감정들을 마치 로봇이 움직이는 것처럼 기계화하여 표현한 것이 어딘가 불편했던 걸까. 그런 의미에서 나의 주관적인 기준으로는 단언컨대 주토피아가 훨씬 ‘사람냄새’ 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주디’가 되기도 하고 ‘닉’이 되기도 하고 다른 모두가 되기도 한다. 주토피아는 모두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우선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달리 인간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대신 동물들이 의인화되어 표현된다. 다양한 종류의 동물이 모여 인간 사회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주토피아’라는 곳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다. 주토피아는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평화로운 도시었지만 포식자 계층에 속하는 동물들이 연이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이자 주토피아의 최초의 토끼 경찰인 ‘주디 홉스’가 문제를 해결하려 나선다. 주디 홉스는 48시간 안에 사건을 해결하라는 미션을 받고 교활한 여우 ‘닉’과 함께 수사를 진행한다.
 
 
 
 
 
수사 결과 범인은 영화 초반부터 나오던 순진해보이던 양이었고, 그녀는 포식자 계층에게 공격성을 일깨우는 약을 먹임으로써 포식자 계층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을 찍고 공포심을 조장하여 사회의 체계를 유지하려고 했던 것으로 밝혀진다. 이렇게 일부를 배제시키고 이를 통해 나머지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방식은 인간 통치의 역사에서 언제나 존재하여 왔다. 가령 1950년 미국은 언제나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던 동성애를 ‘동성애자’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집단으로 분류하고 낙인찍음을 통하여 그들을 법적, 사회적으로 구속하였다. 또한 정신의학의 발달은 이전에 없던 수많은 개인의 심리적 현상들을 병리화 함을 통해 정신병자라는 새로운 낙인을 탄생시켰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인종 차별, 성차별과 같은 뿌리 깊은 낙인과 차별의 역사와 항상 얽매이며 흘러왔는지도 모른다.
 
 
 
 
 
영화 ‘주토피아’는 이렇게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동시에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쾌활함과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톡톡 튀는 개성의 동물 캐릭터에는 인간의 귀여운 호기심과 상상력이 반영되어있다. 토끼가 이어폰을 꼽는다면 어떤 모습일지, 코끼리가 아이스크림 장사를 한다면 어떨지, 나무늘보가 사무적인 일을 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 지와 같은 깜찍하고 섬세한 상상들이 관객을 끊임없이 웃음 짓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준다. 평화로운 주토피아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질문하며 쫓아가다 보면 영화가 보내는 메시지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내가 주목한 캐릭터는 '닉와일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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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하고 귀여운 동물이라는 편견을 깨부수고 최초의 토끼 경찰관이 된 주디 홉스와 달리 닉은 교활 여우라는 편견을 받아들이고 보이는 모습에 맞추어 교활한 사기꾼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닉을 비롯한 수많은 여우들은 이렇게 살아갔을 것이고, 이는 또 ‘여우가 저렇지 뭐’하는 식의 반응을 통해 끊임없이 악순환 되어 왔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닉의 모습들은 우리의 모습을 닮아서 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른다.
 
 
 
 
 
닉은 일종에 여우라는 ‘낙인’이 찍힌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낙인 이론에 의하면 차별적 경계가 되는 이러한 낙인이 한번 찍히게 되면 이것은 그 한 사람의 다양한 정체성 가운데 유난히 도드라지도록 ‘돌출된 정체성’이 되고, 결국 그 돌출이 그 한 사람을(또는 한 여우를) 설명하는 전체가 되어버린다. 주디가 했던 실수처럼, 우리는 모두 낙인이 찍힌 채로 살아가는 피해자인 동시에 남들을 머릿속에서 멋대로 분류하고 그 틀 안에 가두어버리는 가해자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닉인 동시에 닉을 사기꾼으로 만든 범인이기도 한 것이다.
 
 
 
 
 
마침내 닉은 그러한 ‘돌출된 정체성’ 경계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도 그런 유토피아가 올 수 있을까?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사회라는 동시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주토피아는 이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박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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