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곳이 어디라도 각오 높게 춤추라, 뮤지컬 로기수 [공연예술]

글 입력 2016.03.3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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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어디라도
각오높게 춤추라
뮤지컬 로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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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화예술 분야에서 ‘북한군’이란 소재가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나, 공동경비구역 JSA 등. 여기서의 북한군은 무서운 괴뢰도, 적도 아닌. 단지 말투가 특이한, 그리고 우리와 똑같이 ‘감정’을 느끼는 친구, 혹은 가족일 뿐입니다. 이념적으로 대립이 있고, 국가적 사정으로 인해서 ‘적’으로 규정 되었지만 좁게는 한 민족이고, 크게는 같은 ‘사람’인,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면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존재들. 여기 그런 북한군을 그린 뮤지컬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뮤지컬 로기수 입니다.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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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입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종전 후에 한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 중공군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설치한 곳입니다.  포로 송환 문제를 놓고 북한으로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와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로 갈려 대립하였으며 심지어는 폭동이 일어나는 등 유혈사태를 빚기까지도 했는데요. 이 곳은 이러한 특수한 상황과 그 비극성 때문에 공동경비구역 JSA 등 많은 작품들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뮤지컬 로기수도 이 중 하나인데요. 미군과 북한군과 남한인이 함께 공존 할 수 밖에 없던 그 특성과 같은 '북한군'끼리도 서로 싸우고 죽일 수 밖에 없던. '거제도포로수용소'만이 지니고 있던 그 특수성이 시놉시스에 잘 녹아나 있습니다.  


모티브: 나는 번호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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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번호가 아냐! 나도 이름이 있어. 날 번호로 부르지 마"
"이제는 말할거야, 이 무대 위에서 춤추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말할거야. 아무도 모르게 번호로 남을 순 없어."


뮤지컬 로기수는 위 사진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뮤지컬 입니다. 포로로 보이는 아이들이 얼굴을 가리고 춤을 추는 모습의 사진을 보고 ‘이들은 왜 이러고 있을까?’를 생각하다 만들어진 이야기 인데요. 사진을 보고 그것을 뮤지컬로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합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이 보면, 그저 ‘포로들’이었을 사진에서. 결국 그들 각각도 사람이고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착안해서 만들어진 스토리였기에, 극 중 나오는 ‘나는 번호가 아냐! 나도 이름이 있어. 날 번호로 부르지 마’ 라는 가사가 더 깊게 와 닿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다른 극의 리뷰를 하면서 ‘모티브는 모티브 일뿐,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사진 한장을 모티브로 삼아 이런 스토리까지 발전시킨 뮤지컬 로기수가 그 반대의 좋은 예시가 될 듯 합니다.


각오 높게 춤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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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추고 싶어, 나는 꿈꾸고 싶어, 세상 끝까지!"


뮤지컬 로기수의 가장 큰 장점은 ‘춤’이었습니다. 물론, 춤이라고 했을 때 의아하실 수도 있습니다. ‘뮤지컬’은 춤을 출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뮤지컬에선 그것이 상황적으로 맞든, 맞지 않든. 뮤지컬적으로 허용되는 범위에서 일반 대화나, 상황을 안무로 표현해 냅니다. 하지만 여기서 로기수는 조금 더 특별했습니다.  ‘춤’을 추는 이들의 이야기이기에 ‘춤’이라는 것이, 뮤지컬 안무적으로 소화되면서도 묘하게 그 상황에 더욱 맞게 떨어졌습니다. 안무이면서도 그 상황 그 자체가 되는 것이죠. 춤을 추고 싶어하는 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춤을 춘다는 그 미묘한 역설. 실제로 땀을 흘리며 열성적으로 춤을 추는 배우가, 춤을 추며 행복해 보이는 배우가 ‘나는 딴스(Dance)가 좋아!’라고 말하니 더욱 공감이 갔었습니다.
 
 또 여기서 여러 춤들이 나왔지만, 결국 ‘텝댄스’가 주가 되었었는데요. ‘뮤지컬’의 특성 상 계속해서 ‘노래’가 나올 수 밖에 없는데 그 노래에 탭댄스의 경쾌한 스텝과 리듬은 너무나 잘 어우러 졌습니다. 넘버와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지는 텝댄스덕에 '춤'조차도 넘버의 하나의 요소가 되어서 화음을 이뤄낸다는 그 쾌감은 물론. 텝댄스의 '리듬감'에서 차용해 중간 부분에 삽입되었던 난타 장면도 함께 즐길 수 있어 더욱 즐거웠습니다.


북한은 싫지만, 북한군은 달라

"미국은 싫지만, 딴스는 좋아"
"왼쪽엔 빨갱이 오른쪽엔 반동! 앞으로 가면 깜둥이(옐로몽키)! 무대를 향해서 나의 춤 춰봐!"

대한민국’이란 차원에서 보면 북한은 적입니다. 우리는 현재 ‘휴전’을 하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전쟁 중이라고 볼 수 있기에 감히 ‘적’이라고 표현 할 수 있습니다. ‘북한군’에 대해서도 ‘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분단’ 국가입니다. 분단, 즉 한 나라가 ‘나뉘었다’는 의미죠. 이산가족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 결국 그들도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우리의 가족이었고, 친구였습니다. 전쟁에 휩쓸리다 보니 그저 북으로 남으로 나뉘었을 뿐.  북으로 남으로 나뉜 이들 중에는 ‘이념’이란 것도 모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련의 국제적, 국내적 정세에 의해 고조되는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는 별개로 ‘북한사람’에 대할 때는 다른 방식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형태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특히 도드라지는 데요. 남남북녀,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한 tv프로그램부터,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의 영화, 빛의 제국과 같은 연극까지. 수많은 작품 들에서 '북한'사람을 다뤘고, 특히 tv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그 중에서도 '간첩'을 포함한 '북한군'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로기수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저는 이러한 것이 '문화예술이 해야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념! 대립! 적! 이런 이분법이 아니라 그들 모두를 '인간'으로 이해하고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 결국은 이념이나 나라를 넘어서 서로를 인간으로 대하는, 인간으로 대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 국내외적인 정세와는 별개로, '인간'을 다루는 문화예술분야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뮤지컬 로기수에서는 이러한 방식을 취했을 뿐 아니라, 몇몇 가사를 통해서 그러한 면을 더욱 잘 보여줬습니다.

 '미국'은 싫지만, '딴스'는 좋다는 로기수. 결국 '춤'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뛰어넘은, '인간'이 본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일종의 흥이기에 '미국'이란 나라, 이념을 넘어서 '딴스'를 좋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결국 로기수는  이 '딴스'를 통해서 남한의 사람들과, 또 미군 흑인 장교 교감합니다. 서로의 소속이 어디든, 이념이 무엇이든, '춤'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을 뛰어넘게 만든 것이죠. 이러한 면은 춤을 연습 할때 하는 대사에서도 드러납니다. 빨갱이, 반동, 깜둥이, 옐로몽키. 어떤 의미에선 함께 할 수 없는 이들이 다같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는 장면에서, 모두를 '그 무엇'이라고 치부하거나, 반하거나, 비하하지 않고(비하적인 어휘를 택한 것과는 별개로) 그저 '너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는 가사는 결국 이들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 '사람'이며, 그러한 것들로는 규제 할 수 없는 '정', '유대감'이 통하는 이들이란 것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많이 울었었는데요. 따스하게 묘사되는 이 장면에서 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를 감상하는 저, 즉 '사람'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람'의 무언가에 공감하고 감동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글 문을 '북한군'소재에 대해서 이야기 했으니, 글을 닫을 때도 이 이야기로 끝마쳐야 할 것 같네요.
북한군 포로의, 어느 한 인간의, 가슴 아픈, 아름다운, 미국 딴스, 텝댄스, 춤…그리고 꿈 이야기. '북한군'일 뿐인, 그래서 여러 상황적 요인에 힘겨워 하지만. 결국 꿈을 찾아가는. 미국 딴스에 빠진 한심한 반동분자가 아닌, 춤에 빠진, 꿈을 꾸는 한 '사람'의 이야기. 뮤지컬 로기수였습니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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