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구나 사고를 치지만 누구나 책임을 지진 않는다 [시각예술]

영화 < 사고친 후에 >를 보고난 후의 나의 생각들
글 입력 2016.03.30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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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승진을 했다. 기분이 좋다. 이 주체 못 할 흥을 안고 클럽으로 가 몸을 흔든다. 남자는 우연히 여자를 보고 같이 놀자 한다.
기분이 좋았던 여자는 같이 논다. 그리고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자고 일어나보니 남자는 어디에나 있을법한 루저친구였고 여자는 실망하고 둘은 헤어져 한동안 보지않는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로맨틱 코미디의 흔한 시작점이다. 하지만 이 영화, <사고친 후에>는 여기에 엄청난 시작점을 추가한다. 바로 여자의 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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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에서 책임이 되기까지


 여자 앨리슨은 임신을 한 뒤 그 사실을 알고 남자 벤과 만나지만 둘 사이의 간격은 좁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임신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해 싸우기까지 한다. 산부인과에서 임신에 대한 최종확인을 한 후 둘은 헤어져 각자 출산에 대한 고뇌를 한다. 앨리슨은 어머니와 만나고 벤은 아버지와 만나 충고를 듣는다. 하지만 가장 좋은 조언자일 것 같았던 두 사람은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는 말만 한다. 출산에 대한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던 듯이 보이는 앨리슨은 낙태를 하라는 어머니의 말에도 불구하고 애를 낳을 것이라고 벤에게 말한다. 이때까지도 심각한 생각이 없던 듯이 보이는 벤은 아버지의 말을 따라하며 수동적인 자세로 앨리슨을 응원한다.

 그리하여 벤과 앨리슨은 서로 만나 출산을 준비하며 서로 조금씩 호감을 느낀다.(사실상 앨리슨만 점진적으로 호감이 늘어나는데 벤은 이미 앨리슨에게 호감으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벤의 계속되는 무책임한 행동에 질린 앨리슨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같은 앨리슨의 행동에 화가 난 벤은 결국 크게 싸우게 된다. 그 후 벤은 앨리슨의 언니의 남편인 피터와 같이 라스베가스로 놀러가고 앨리슨은 언니와 같이 클럽에 간다. 거기서 벤은 피터를 통해 큰 깨달음을 얻고 본격적으로 아버지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그리고 앨리슨의 출산의 때가 다가오고 담당의사가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앨리슨은 벤에게 의지를 하게 되고 벤은 그 역할을 잘 수행해내고 둘은 부모가 되고 영화는 끝이 난다.

 이 길다면 긴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로 어쩔 수 없이 이어지게 된 두 남녀가 부모가 되어가는 것이다. 솔직히 앨리슨의 변화과정은 그렇게 크게 나타나 있지 않다. 임신을 해도 앨리슨은 일을 하고 섹스도 하며 거의 일상과 같이 지낸다. 임산부의 태아에 대한 모성애는 매우 익숙한 소재이기 때문에 일부러 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앨리슨은 애초에 올바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였기에 임신 후에도 올바르게 어머니가 되는 준비를 했을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영화가 자세하게 설명을 안 해줬다 하더라도 우리는 앨리슨이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한다는 것은 알 수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벤이다. 수입이라고는 없고 매일같이 대마초나 피우면서 친구들과 가망없는 사이트나 만들려는 이 루저친구는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벤은 영화의 후반부까지 그렇게 책임감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초반에는 앨리슨의 사랑을 받으려고 책임감 있어보이려는 척을 한다. 물론 웹 사이트 개설에 조금이라도 더 힘쓰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아주 조금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마저도 소극적이며 아예 하지 않을 때도 많다. 이런 벤이 달라진 데는 피터의 몫이 크다. 피터는 자신이 꾸린 가정에 대한 책임에서 자꾸만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인다. 초반의 벤은 그런 피터의 모습을 보며 공감하고 동조했었다. 하지만 출산과 가정에 대한 고뇌를 끊임없이 하던 벤은 피터가 자꾸만 책임에서 도피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그에 화가 나게되고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벤은 직장을 갖고 집을 마련하며 책임을 위한 진정한 노력을 하며 자신의 책임에 도망가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두 사람의 변화를 통해서 마지막 앨리슨의 출산 장면은 생명의 탄생을 넘어 두 사람(벤이 주가 되는)의 내적 성숙까지 보여주는 클라이맥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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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감이라는 괴물과 싸우다


 이 영화에서는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앨리슨은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신이 싫어하는 남자와도 가까워지기 위하여 노력을 한다.또한 자신의 일이 몸매가 중요하지만 낙태 대신 출산을 결심한다. 최고의 출산환경을 위해서 꼼꼼히 담당의사를 정하고 세세한 출산계획까지 짜놓는 노력을 보여준다.벤은 친구들과의 삶도 포기하고 직장을 얻고 혼자 살며 그 좋아하던 대마초까지 끊는다. 근 10년동안 일도 하지않고 보험금으로만 살아온 친구로서는 아주 크나큰 결심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희생과 노력을 통해 겨우 자신의 책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행복한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책임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바로 피터와 데비 부부이다. 피터는 계속 가정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노력을 한다. 회사 일을 핑계로 혼자 영화를 보러 가던지 친구들과 노는 것과 같은 귀여운 노력들이다. 이런 귀여운 노력들은 피터가 가족들을 사랑하지만 단순히 가정의 책임에서만 도망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벤과 함께 있을 때 피터는 항상 결혼생활에 대한 강박에 대해 털어 놓는다. 피터가 벤과 같이 베가스에 가서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한탄할 때가 제일 압권이다. 이 장면에서 피터는 가족들의 사랑이 자신에게는 압박감으로 다가오며 그것을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사랑을 잘 받아본 적이 없던 벤이 그 말을 듣고 분개하며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토로하며 자신 또한 깨달음을 얻을 때 피터는 의자에 앉아 태아의 자세를 하고 있다.

 결국 피터 또한 편한 의자와 같은 가정의 품에서 자라는 아이와 같으며 다시 그가 가정의 품으로 돌아갈 것을 암시한다. 아니나 다를까 피터는 벤의 말을 듣고 집으로 가고 싶다 하고 다음엔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 되어 가정에 책임을 다한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가정에 대한 책임을 다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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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 결혼을 안 했을 뿐더러 아이 또한 가진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일들이 우리가 어디서나 보는 만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부모가 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 이것만큼 평범하면서 동시에 어려운 것이 어디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께 경의를 표한다. 


[권중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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