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몽상의 대가, 가스통 바슐라르의 미술론 [예술철학]

‘상상력’이야 말로 가장 구체적이며 우리의 삶에 더 깊숙이 닿아있는 것이다
글 입력 2016.03.2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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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가 포착하는 색은 어떠할까? 어떤 사진작가가 등대를 주시하다 그것을 찍는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본 것은 무엇이고 왜 그 순간의 등대를 담으려고 했던 것일까? 찍은 것이 단지 등대의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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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의 등대 (이미지 출처: 구글)


  어둑한 황혼 속에서 우뚝 서 있는 등대의 불빛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그 침묵의 안에서 뿌리부터 샘솟는 힘의 파동이 전해지는 것 같다. 등대 너머 푸른 어둠의 적막이 철옹산성의 벽처럼 막막하게 보이다가도 허공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검푸른 강물이 흐르는 듯한 착시를 겪는다. 사진이 품고 있는 공기의 흐름에 정신이 일체감을 느낀 것이다. 이런 몽상(夢想)의 길을 따라가면 감상자도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은 그 자리 그 곳에 서 있을 수 있다. 이쪽의 암흑을 더듬으며 저쪽을 향해 가다보면 부딪치는 차가운 벽. 등대 건물마저도 어둠에 잡아먹힌 듯 시커먼 위세를 자랑하고 초라한 몸은 그 속에서 압사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유약한 유리의 질감을 깨고 나온 등대의 맑은 불빛이 부드럽고 느슨하게 펄럭이는 어둠의 실크 장막 뒤에서 차갑게 번져오는 것 같아 마음이 고요해진다.
 

  필자의 설명이 장황한가? 너무 감상주의자 같은가? 그러나 고정된 회화 작품을 ‘이야기’로 보는 사람이 있었다. 가스통 바슐라르. 그는 회화는 회화 나름대로 말주변이 좋은 우화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색채와 양감으로 넘쳐흐르는 공간이 등장하는 것들 즉, 그림 위에서 인간이나 동물들, 배경 어느 하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다고 여겼다. 위대한 화가의 예술적 위력에 대해 생각할 때, 색채는 하나의 창조적 힘이다. 화가는 색채가 물질에 작용하고 그것이 물질의 참다운 활력으로 나타나고 색채가 물질과 빛 사이의 항구적인 힘의 교환에 의해 살아가는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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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고흐의 해바라기 (이미지 출처: 구글)


   바슐라르가 그의 저서 「꿈꿀 권리」에서 설명하는 반 고흐의 작품은 이렇다. 


반 고흐의 황색은 연금술적인 황금이며, 무수한 꽃으로부터 채취되어 햇빛에 굳어진 꿀과 같이 만들어진 황금이다. 그것은 결코 단순한 밀이나 불꽃이나 밀짚의자의 황금빛이 아니다. 천재의 한없는 꿈에 의해 영원히 개성화한 황금빛이다. 그것은 이미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재산, 한 인간의 마음, 전 생애를 통한 응시 속에서 발견된 기본적인 진실이다.


  그 응시란 결국 화가의 ‘의지’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끝까지 맥락의 축을 놓지 않는 투쟁적 의식 말이다. 그 끝에 닿아야만 화가는 남에게서 받아들이거나 복사한 색깔과는 전혀 다른 ‘원하는 색깔(couleur voulue)’를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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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네의 루앙 대성상 (이미지 출처: 구글)


  바슐라르의 모네에 대한 감상을 보자.


성당은 푸르스름한 안개로부터, 그 안개 자체가 푸른 하늘에서 빼앗아 온 푸르른 물질을 그대로 빼앗아 온 것처럼 보였다. 모네의 그림 전체가 그러한 푸르름의 이동, 푸르름의 연금술 속에서 활기를 띠고 있다. 두 개의 탑이 망망한 대기 속에서 모든 푸른 색조에 떨고 있는 것을 느껴보라. 성당은 날개를, 날개의 푸르름을, 날개의 파동을 지니고 있다. 그 윤곽은 약간 흐려져 있고, 선의 기하학성에 부드럽게 거역하고 있다.

한 시간 정도 바라본 인상으론 회색 돌로부터 하늘의 돌로의 이러한 변용을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이 위대한 화가가 원소의 변환의 연금술적인 목소리를 은밀히 듣는 것이 필요했으리라. 그는 돌들의 부동의 세계로부터 푸른빛의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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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통 바슐라르 (이미지 출처: 구글)


  가스통 바슐라르는 프랑스의 과학철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이다. 앞서 잠깐 보았듯이, 그의 미술론은 치밀하고 세련되고 이성적인 전문 용어로 가득한 분석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그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의구심을 갖거나 실망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셸 푸코에 의하면 바슐라르는 ‘자신이 딛고 있는 문명을 정면으로 부인한 사람, 서구 인식 전체에 대해 덫을 놓은 사람’이었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만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즉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에 반하는 용기 있는 사상가였다. 합리주의의 발달은 인간 이성 이외의 가치들, 즉 인간의 상상력이나 감성과 같이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요소들을 비합리적이라는 명목 하에 문화의 전면에서 몰아냈다. 그 속에서 그는 ‘상상력’이야 말로 가장 구체적이며 우리의 삶에 더 닿아있다고 주장했다. 상상력이 그저 허황되고 비논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이성 발달의 배경이 되는 원동력이자 근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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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슐라르의 저서 「꿈꿀 권리」 (이미지 출처: yes24)


  이에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우리가 한 가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감성’의 영역도 ‘이성’만큼이나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 확장된다는 것이다. 바슐라르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으로 ‘상상력’을 제시했다. 무언가를 감상하는 방법을 넘어서서 머릿속에서 빚어지는 생생한 이미지로 사고의 회로에 기름칠을 해야만 그림이든, 문학이든, 철학이든, 누군가의 심리든 그 깊이에 깊숙이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세계를 보는 시선을 ‘몽상(夢想)’으로 열어놓는다면 우리도 어쩌면 인생을 예술처럼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도 예술을 할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뒤늦게 우리의 인생이 예술이었다는 것을 알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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