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진실을 진실이라 말하지 못했던 그 날들, 연극 < 보도지침 >

부담 반 걱정 반 무게감을 잔뜩이고 묵묵히 보여주려는 작품
글 입력 2016.03.2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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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 티져1_ 오픈삭제.jpg
 

 많은 사람이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현실과 비슷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않는 일들을 대리만족하거나 간접 경험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영화나 드라마 같은 현실이 주위에 꽤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려 현실이 아니길 바라는 일들도 말이에요. 조선시대 허균의 <홍길동전>에서는 주인공 길동이 신분의 벽에 걸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 호부호형하지 못한다면서 한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요즘은 신분의 벽이 그 때보다는 낮아졌으니 길동과 같은 고민은 덜하겠구나 싶지만,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있는 그대로 우리가 부를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문제를 부담 반 걱정 반 무게감을 잔뜩이고 묵묵히 보여주려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연극 <보도지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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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의 배경이 된 '보도지침 사건'의 판결 주인공들(좌)와 '부천 성고문 사건'에 대한 실제 보도지침 사례(우) 


  연극 <보도지침>은 1980년대 '땡전뉴스'로 유명했던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문화공보부의 홍보조정실에서 언론사마다 보냈던 실제 보도지침에 기반한 '법정드라마'입니다. 당시 독재정권의 이 보도지침에 따라서 매일 아침 신문의 사건들은 자의적으로 부각되거나 은폐되고, 보도 표현 등이 조절되면서 언론통제의 직격타를 맞았습니다. 대표적으로 10.26사건이나 5.18사건, 군부와 정치인 등에 대한 지침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연극 <보도지침>의 등장인물들이 특히 이 '보도지침사건'과 관련된 당시 언론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법정드라마답게 이해관계와 치열한 공방을 볼 수 있어서 더 몰입도가 높을 것입니다. (물론 실제 사건과 인물을 차용하였을 뿐, 내용은 허구입니다!)

  처음에 <보도지침>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은 걱정스러움과 답답함이었습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1980년대에서 30여 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정부의 언론 통제라는 문제는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우리나라만 독재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더 분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언론통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도 최근 최대 정치 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라는 두 회의에서 '언론통제형' 보도지침이 발견됐습니다. 뉴미디어 정책이나 스모그 문제 같은 큼직한 사회적 이슈는 물론 미녀 통역사 보도 같은 가십성 뉴스도 자제하라는 내용을 지침에 담았습니다. 


괴벨스야.JPG
 

  아시아 이외에 미국이나 영국, 유럽 같은 서구 국가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긴 하지만 여전히 중대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독일의 경우 이미 1930년대에 히틀러 집권 당시 괴벨스가 먼저 전략적으로 언론을 장악하는 '보도지침'을 쓴 전례가 있습니다. 히틀러를 민족의 구원자라고 칭송하기도 하고 독일민족이 우수성은 부각하면서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전두환 정권의 괴벨스'라고 불리는 허문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보도지침과 언론기본법과 보도지침을 통해서 언론의 조작과 통제를 조장하는데 일조했다고 하죠.

  대체로 우리는 독재도 언론통제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보도지침'사건 같은 실제 사례들에 대해서는 접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연극의 배경은 어둡고 암울합니다. 그래서 아마 굳이 우울한 이야기를 왜 볼 필요가 있을지, 이미 알고 있는데 굳이 확인사살을 당해야 할지 고민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제 마음 속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곤 하니까요. 

  진실을 진실이라 말하지 못했던 그 하나의 진실을 마주하지 않으면, 아마 여기 저기 숨겨진 다른 여러가지 진실도 계속 묻히고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무조건 반드시 봐야해! 라고 말씀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민주적인 시민이라서 혹은 깨어있는 지식인이라서 보면 더더욱 좋은 연극이라고 추천드리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갔던 소수의 용기와 노력만큼이나 그 보도지침을 따르거나 아무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게 자연스러웠던 많은 사람들의 답답함이나 사정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상황은 다르지만 언론 통제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1980년이나 2016년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아마도 동지같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진실을 알리고 싶었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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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이런 무게감와 메세지 있는 작품을 함께 하는 배우진에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정의로운 기자, 검사와 변호사, 월간 '독백'의 발행인 등으로 변신해 탄탄한 연기력으로 무대 위에서 조화롭게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보여줄 '송용진'과 '김준원', '최대훈', '에녹', '안재영', '이명행', '김주완', '강기둥' 등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작품의 깊이와 여운을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보도지침>을 보면 진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떠오를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진실에 대해서 늘 가장 먼저 생각나는 소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구절을 나누면서 마무리 드리겠습니다.



"Truth. Truth is like, like a blanket that always leaves your feet cold
"진실. 진실은 언제나 발을 차갑게 만들어버리는 짧은 담요와 같아

You push it, stretch it, it'll never be enough
당신이 아무리 당기고 늘여도 결코 충분치 않으리라

You kick it, beat it, it'll never cover any of us.
발로 차고 두드린다 해도 그것은 결코 누구도 덮어주지 못하리라

From the moment we enter crying to the moment we leave dying
우리가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던 순간부터 죽음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it will just cover your face as you wail and cry and scream."
그것은 울고 절규하고 비명지르는 우리의 얼굴만을 덮을 뿐이다."



*연극 <보도지침>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6월 19일까지 공연됩니다.
화~금  8시 / 토 3시,7시/ 일 3시 (월요일은 공연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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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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