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독한 사랑, 그리고 망국의 노래- 뮤지컬 아랑가[공연예술]

아랑, 아랑, 매력인가.
글 입력 2016.03.1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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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사랑…
그리고 망국의 노래
뮤지컬 아랑가


아랑가.jpg

 
창작뮤지컬 지원 프로그램인 '예그린 앙코르' 당선작인 아랑가!  그동안 <여신님이 보고계셔>, <난쟁이들>들 흥미로운 뮤지컬을 많이 발굴해왔던 예그린 앙코르이기에 이번에도 기대가 많이 되었는데요! 
특히 <아랑가>는 제 모교 연영과에서 창작한 뮤지컬로, 예그린에 당선되기 전, 학교에서 공연이 되었었거든요! 그때 보고싶었는데 결국 못봐서 너무도 아쉬웠는데 이번에 올라와서! 더더욱 기대가 되었습니다.  



사전조사: 도미와 개로, 그리고 아랑



뮤지컬 <아랑가>는 설화와 역사적 사실들에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 된 뮤지컬 입니다.  차용 된 모티브로는 '도미설화'와 '아랑설화', 그리고 백제의 21대 왕 '개로왕'입니다. 우습게도 뮤지컬 <아랑가>에서 가장 많이 차용 된 모티브는 '아랑설화'가 아닌 '도미설화'인데요. 도미 설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도미는 의리를 아는 사람인데 그의 처 역시 아름답고 절행이 있어 두루 칭찬을 받았다. 이 소문을 들은 개루왕은 도미를 변방으로 보내고 거짓으로 신하를 왕처럼 꾸며 도미의 처를 시험하지만 도미 처 역시 계집종을 자기처럼 꾸며 시중을 들게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왕은 도미의 두 눈을 뽑고 강제로 배에 태워 띄워버리고는 도미 처를 입궁시켜 강제로 범하려 하였다. 도미의 처는 월경(月經)을 핑계로 왕을 멀리하고는 궁을 탈출하여 도미를 만나려 강가에서 울부짖었다. 그때 물 위에 조각배가 떠내려 오므로 그것을 타고 천성도(泉城島)에서 남편을 만났다. 도미 처는 눈이 먼 남편과 함께 고구려 산산(蒜山)으로 가서 살다가 생을 마쳤다.



이 설화에서의 왕은 개루왕(백제 4대왕)으로 기록 되어있는데요. 현대에 와서는 여러 정황들로 따져봤을때백제 21대왕 개로왕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아랑가>는 이 해석대로 도미설화의 내용을 '개로왕'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엮었는데요.  그 역사적 사실의 산물이 바로 '도림'이란 인물입니다.



고려왕은 백제 침략의 목적으로 책사를 모집했는데, 이에 응한 것이 도림이었다. 당시 백제 개로왕은 바둑의 명수였고 도림 역시 바둑의 명수였다. 도림은 허위로 죄를 짓고 백제에 들어갔다. 그는 개로왕의 바둑 동무가 되어 조석으로 개로왕을 모시고 바둑을 두었다. 개로왕은 자기와 바둑의 적수가 될 만한 이는 천하에 오직 도림 하나뿐이라면서 그를 둘도 없이 총애했다. 수년간 개로왕의 곁에서 그의 성격과 행동을 골고루 훑어본 도림은 이렇게 말했다.

“신이 일개 망명죄인으로서 대왕의 총애를 받아 이처럼 호화로운 의식주를 누리고 있지만, 이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은 온 마음을 다해 대왕께 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대왕의 나라는 안으로는 산악을 끼고 밖으로는 바다에 싸여 있어서, 적병 백만 명도 어찌하지 못할 요새입니다. 대왕이 이런 요새에 의지하여 숭고한 지위와 풍요한 재산을 갖고 사방의 눈과 귀를 두려워 떨게 할 만한 기세를 보인다면, 사방의 열국이 열심히 존경하고 섬길 겁니다. 그런데도 성곽을 높이 쌓지 못하고 궁궐을 크게 짓지 못하며 선왕의 유골을 작은 묘에 파묻어 두었습니다. 또 매년 장마 때마다 인민의 가옥이 강물에 흘러가버리니 외국인이 보기에 창피한 일이 많습니다. 이러니 누가 대왕의 나라를 쳐다보고 높이 받들겠습니까? 신은 이것이 대왕께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달콤하게 받아들인 개로왕은 전국의 남녀를 총동원하여 벽돌을 굽고 둘레가 수십 리 되는 왕성을 높이 쌓고, 성 안에는 하늘에 닿을 듯한 궁궐을 짓고, 욱리하 가의 큰 돌을 가져다가 큰 석관을 만들어 부왕의 유골을 넣은 뒤 넓은 왕릉에 매장하고, 사성(蛇城) 동쪽에서 숭산 북쪽까지 욱리하의 제방을 쌓아 어떠한 장마에도 수재를 입지 않도록 하였다. 이 같은 공사를 마치자, 국고가 비고 군비가 없어지고 백성도 피폐해지고 도둑들이 창궐했다. 점점 백성들은 개로왕을 싫어하기 시작했고, 국가의 위급함이 누란지란 같았다. 이에 자신의 성공을 확신한 도림은 고구려로 도망가서 장수태왕에게 이런 사실을 아뢰었고 고구려는 즉시 3만 군대를 동원해 백제를 공격했다. 



이렇듯 설화, 역사적 사실 등에서 '도미', '개로', '도림'이란 인물들이 나왔습니다. 뮤지컬 <아랑가>는 도미설화와 개로왕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적절히 엮어 스토리를 그려나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아랑가>에서 <아랑>은 어디갔을까요? 도미설화에서 도미의 아내는 그저 '도미의 처'로 표현 될 뿐,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랑'은 누구일까요? '아랑'에 대한 단서는 밀양의 '아랑설화'에서 찾을수 있었습니다.



 아랑이라는 규수가 아버지를 따라 밀양에 갔다. 어느 날 그 고을 통인과 유모의 음모에 휘말려 영남루에 나갔다가 통인에게 욕을 당하게 되었다. 전력을 다하여 항거한 아랑은 끝내 통인에게 피살되고 그 시체는 강가 숲으로 던져졌다. 별안간 딸을 잃은 아버지는 태수 직을 사퇴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 뒤는 신관이 부임할 때마다 그날로 밤중에 귀신이 나타나 신관은 기절하여 죽고 말았으므로 밀양태수로 가고자 하는 자가 없어 조정에서는 자원자를 구하여 내려 보냈다. 신임 태수가 도임 당야에 촛불을 밝히고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음풍이 일며 방문이 열리고, 산발한 채 가슴에서 피를 흘리는 여인이 목에 칼을 꽂은 채 나타났다.그 여인은 아랑으로, 태수에게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고 그 범인인 통인의 이름을 가르쳐 준다. 신임 태수는 이튿날로 범인을 잡아 처형하였더니 그 뒤로는 신임 태수가 변을 당하는 일이 없어졌다.



보고 떠오르는 것이 있으신가요? 저는 장화홍련이 떠올랐는데요. 이러한 아랑의 설화는 '아랑형전설'로 불릴 정도로 비슷한 유형의 설화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티브가 된 소설이 '장화홍련'이구요. 여기서의 이 '아랑'과, 도미설화-개로와의 연관성은 크게 없지만 '정절을 지킨 여인'이라는 점에서 이름을 따온 것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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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왜 시놉시스 이전에 사전조사를 넣었는지 알겠죠? 시놉시스를 읽어보시면, 앞서 읽으셨던 '도미설화'의 잔재와 '개로왕'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이 보입니다. 결말은…각자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아랑, 아랑, 매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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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서대로 도창-도림-아랑-개로-도미-사한 순>


뮤지컬 아랑가의 매력포인트를 뽑자면, 첫번째로는 '창극'이란 말에 걸맞는 도창입니다. 저는 박인혜 분으로 봤는데요! 극에서 도창은 극에 상황에 대한 설명, 묘사부터 심경묘사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데요! 수업시간에 영상자료로 봤던 것 빼고는 도창을 처음봤는데,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목소리, 표정, 손짓하나로 무대를 휘어잡으시는데. 어떻게보면 구구절절 설명한다고 생각 할 수 있을 만한 것도, 엄청난 흡입력을 지니고 다가오더라구요. 특히나 도미가 변방에 가서 보았던 상황에 대한 묘사는 정말이지 엄청났습니다. 판소리에 홀렸던 민중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두번째론 '부채'의 상징성이었습니다. 극중 인물들은 모두 부채를 하나씩 들고나오는데요, '부채'라는 소품자체가 주는 느낌이 고전적이기도 하고. 그 부채가 때로는 칼도 되었다가, 때로는 삶도 되었다가 하는 것이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부채'의 의미에 대해서 다각도로 생각 해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죽음'에 대한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데요. 아랑가에선 부채를 내려놓고 떠나는 것으로 '죽음'을 표현했는데, 그 모습이 '육체'를 두고가는 영혼같기도 해서 '육체, 생명'같기도, 또 내려놓고 떠난다는 점에서 '삶' 자체를 표현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무대에서의 약속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연출을 참 좋아해서 좋았습니다.

세번째론 배우들의 열연과, 그들이 부르는 넘버들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배우분들이 어찌나 열연하시던지. 아랑을 맡은 배우분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제가 도미라도, 개로라도 사랑 할 수 밖에 없을 듯 했고 개로왕을 맡은 배우분 또한. 점점 정신착란에 가까워지는 개로의 상태와, 그의 절망감을. 피부로 와 닿을 정도로 절절하게 표현 해 주셔서, '개로'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와는 별개로 그 인물의 감정을 너무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개로'라는 인물을 그래도 이 정도로 이해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배우분의 열연의 공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거의 후크송 처럼 반복되는(그래서 그만큼 중독성도 있는) '아랑, 아랑, 아랑, 아랑'하고 반복되는 선율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거기다가 대학로 믿보배, 즉 믿고 보는 배우들의 성대에서 그 선율이 흘러나오니. 그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중간에 배우 4명이 경쟁하듯 '아랑, 아랑, 아랑' 이 노래를 화음맞춰 부르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은 상황적 심각함과는 별개로, 청각에서 오는 일종의 쾌감까지 느껴졌습니다. 



단점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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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아랑가>에서 아쉬웠던 점은 첫번째로는 스토리의 부족이었습니다. 도미설화, 개로왕의 모티브 자체는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엮은 방식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모티브는 모티브일뿐! 만약 모티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풍부하다면 굳이 추가하지 않아도 되지만, 도미설화나 개로왕의 경우엔 원래 모티브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서사가 꽤나 단순합니다. 그렇기에 이것들을 '모티브' 삼아 서사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데, <아랑가>는 서사구조가 '도미설화'를 넘지 못합니다. 이것저것 부수적인 사항을 뺀다면 도미설화가 아랑가의 스토리의 전부일 정도. 그렇다보니 중간중간 지루한 부분도 생기고, 전개 또한 느린 편입니다. 무엇보다 극을 다 보고나서 이야기를 생각해 봤을때, '재미'가 없습니다. 또 부족한 서사 탓에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도 약간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약간 부가적인 부분으로 추가한 개로왕에 대한 무녀의 예언이라던가, 개로와 아랑과의 만남 등이 그나마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지만 그 정도가 미비했습니다. 개로가 아랑에게 그토록 집착하고 정서불안적인 면모를 보이는 이유로서는 조금 약한 느낌.  뭔가 더 나올듯 말듯 하다가 결국 나오지 못하고, '도미설화'에서 끝나버리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습니다

두번째로는 도창의 빈도였습니다. 매력포인트에 이어 아쉬운 점에도 등장하니 의아하실 텐데요. 극 초반부, 중요한 설정 등을 도창으로 설명해 주는데. 극을 볼수록 익숙해져서 들리기 시작하지만, 초반부는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반부 무녀의 예언등을 극을 보다가 후에 그게 그거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도창 자체는 참 좋지만, 몇몇 장면에선 이 부분은 도창이 아니라 그냥 연기였으면 더 몰입도가 높았을 듯한  장면들도 있었습니다.

세번째로는 무대 연출이었습니다. 아랑가는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실커튼과, 조명 외에는 아무런 무대장치도 없는데요. 실커튼과 조명의 조화는 너무도 아름다웠고 또 실커튼 뒤에 인물이 서있는 것으로 여러가지를 표현하는 것은 참 좋았지만…현재 극장이 충무아트홀 블랙이니 만큼 A구역이나 C구역 등 사이드 블럭 쪽에서는 조명 연출이 가려지거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또 무대가 약간 휑한 감이 있었는데요. 사실 저는 휑한 무대도 좋아합니다. 그 안에서 여러 연출로 이것저것 만들어내고 표현해내는 것을 구경하는걸 굉장히 즐거워하는데! 아랑가의 경우 무대 바닥에 쓰이는 조명이 선과 직사각형을 이용한 연출이 계속해서 반복되어서 후반부에서는 연출적으로 심심하다는 느낌을 조금 받았습니다. 무대의 휑함을 연출이 채워주지 못했다는 느낌. 사실 무대가 휑한 만큼 그 빈자리를 캐릭터들의 힘으로 채웠어야 했는데 캐릭터가 그만한 힘을 갖지 못하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랑가를 보고 돌아오는 길. 귓가에서 '아랑, 아랑, 아랑, 아랑~♬'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OST내주세요. 그리고 '백제의 태양이, 이제 보이는구나' 하며 아스라이 웃는 개로의 표정도 잊히지가 않았구요. 사실 단점이라고 꽤 장황하게 늘어놨지만, 개로의 그 절망과 삶의 끝에서 오는. 그 체념과 회한, 모든 것이 뒤섞인 그 감정은 아직도 너무도 생생하게 가슴 속에 남아있습니다. 아랑, 아랑. 지금까지도 흥얼거리는 이 노랫소리만큼 그 여운도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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