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동주'와 출판사 소와다리의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문화 전반]

시집에는 그림이 없지만 그림이 그려지는 듯 해서 재밌다. 그래서 시가 좋다.
글 입력 2016.03.0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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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 그리고 1인 출판사 소와다리의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지난 달, 친구의 소개로 1인 출판사 소와다리를 알게 되었다. 소와다리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초판본으로 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리고 몇일 후 책을 샀다. 사실 문학에는 관심이 없던 나였는데, 작년 생일에 시집을 선물받은 후 우연히 읽게된 그 시집을 시작으로 시에 어느 정도 관심이 생겼다. 시는 소설만큼 흐름이 길지 않기에 그 자리에서 시 한 편은 거뜬히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시는 은유와 비유로 많은 내용을 숨기고 있지만 그만큼 매력도 크다. 시집은 가벼워서 언제든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다. 시집에는 그림이 없지만 그림이 그려지는 듯 해서 재밌다. 그래서 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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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초판본, 1948


 많고 많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시집이 있지만 소와다리가 나의 마음에도 와닿았고, 많은 대중들에게도 사랑받는 이유는 윤동주 시인이 1945년 2월에 세상을 떠난 지 3년 뒤인 1948년 1월 20일에 출간된 초판본을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처음에 시집을 받았을 때 삐뚤빼뚤한 시집의 제목이 참 맑아보였다. 영화 <동주>를 통해 윤동주 시인이 정지용 시인의 시를 많이 사랑했고, 그를 정신적으로 많이 따랐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서문을 정지용 시인이 남겼음을 영화를 본 후에 다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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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영화 <동주>에서 인상 깊은 두 대사 중 하나가 바로 정지용 시인이 윤동주 시인에게 한 말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것.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대사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고, 그렇게 깨닫게 해준 영화에 감사했다. 나는 우리 역사의 대부분은 어두운 일로 채워져 있음을 알아가는 게 무서웠고 싫어서 오히려 외면한 사람이다. 그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음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면서도,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피한 비겁한 사람이다. 그런 나인데, 담담히 풀어낸 영화 <동주>가 나를 결국 울리고 말았다. 죄송함과 부끄러움과 아픔과 감사함이 담긴 눈물이었다. 역사를 그린 영화들이 나에게는 대부분 과장되게 애국심을 고취시키려 한다고 느껴졌다. 잔인하고 처절한 장면들로 두려움을 주고는 이러한 희생을 잊지 말아라고 말하는 듯 했기 때문이다. 이는 다분히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기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동주>는 달랐다. 흑백 영상으로 시각적 효과는 최대한 줄였고, 급박하고 강렬한 전개 대신 잔잔한 시와 대사로 채웠다. 그러한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표현이 오히려 내 마음을 열었다. 이렇게도 역사를 영화에 담을 수 있음에 놀랐고,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초판본을 읽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책을 받기 전까지는 몰랐다. 윤동주 시인은 한자와 한글을 혼용한 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한자는 필수 교양으로 들은 초급 한문이 다인 나로서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을 나만 몰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초판본을 읽으려면 먼저 해석본을 읽어야 할 판이다. 그래도 초판본에 잉크 번진 활자를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두근대는 시집이다.

 영화 <동주>에는 총 13편의 윤동주 시인의 시가 나레이션으로 등장한다. 암울한 시대 그 자체임에도 윤동주 역의 배우 강하늘의 나레이션은 너무나도 맑아서,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윤동주의 <자화상>은 나레이션으로도 등장했지만,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배우 강하늘이 OST로 부른 <자화상>이 흘러나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저려왔는데, 노래를 듣는 순간 터져나왔다. 어쩜 이리도 적절한 타이밍인가 싶었다. 한 동안 <자화상>을 mp3 목록에 담아 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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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 OST '자화상'




 운 좋게도 영화 <동주> GV에 갈 수 있게 되어, 이준익 감독과 배우들의 무대인사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영화 속에서 송몽규 역을 맡았던 배우 박정민을 볼 수 있는 자리여서 내심 기대가 컸다. 크게 빛을 받는 배우는 아니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영화도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윤동주 시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독립운동가 송몽규 역을 맡은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오히려 영화를 <몽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인공 그 자체였다. GV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이준익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독립운동가 송몽규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영화 제목을 <몽규>라 했으면 몇 명이나 이 영화를 관심가졌을까 생각해본다. <동주>라는 제목으로 송몽규를 알릴 수 있게 된 영화가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 윤동주는 과정도 있었지만 결과도 있는 인물이다. 그가 생전에는 비록 남기지 못했지만,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이름으로 시집을 발간했기 때문이다. 반면 송몽규는 과정은 윤동주보다도 더 치열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과를 내지 못한 인물이라 이준익 감독이 덧붙였다. 윤동주와 송몽규와 같이 우리 모두는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수 많은 과정을 거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결과를 내놓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송몽규라는 인물처럼 결과를 내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과정을 거쳤지만 결과를 내지 못한 채 끝낸 것도 많았고, 지금의 나는 과정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송몽규라는 인물을 통해 비록 결과를 내지 못함에도 과정에 후회가 없다면 그것으로도 괜찮다고 위안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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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동주>를 보며 인상 깊었던 두 대사가 있었다고 말했는데, 정지용 시인의 말과 독립운동사 송몽규가 일본 순사 앞에서 서명하기 전에 한 대사이다. 부끄러움에 대한 정지용 시인의 말만큼이나 강렬했던 송몽규의 대사였다. 일본 순사가 일본은 문명국이기에 문서 작성을 중요시 여긴다고 말하며, 송몽규에게 여러 장의 서명서를 내민다. 그것은 송몽규가 독립운동을 위해 한 행동을 인정하는 서명서였고, 송몽규는 끝내 울부짖으며 서명을 한다. 대사가 길어서 정확히는 담을 수 없지만, 서명서에 쓰인 행동들을 읽으면서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내가 여기에 서명을 한다라는 대사였다. 그 대사가 얼마나 먹먹했던지, 그리고 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답답했을 그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그러하다. 다시 영화를 볼 때에는 꼭 그 대사를 남겨 둬야겠다. 그리고 영화 <동주>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을 마지막으로 덧붙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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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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