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물에 깃든 철학 파헤치기 - 책, ‘사물의 철학’ [문학]

글 입력 2016.02.2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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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으로 시작하여 사유로 깊어지는 인문학 수업
'사물의 철학'


사물의철학.jpg
 

당신은
머리를 손질할 때 사용하는 ‘빗’을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있나요?
쏟아진 커피를 닦을 때 유용한 냅킨을 깊게 관찰해 본 적이 있나요?
늘 덮고 자는 ‘이불’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이 책은 저자 함돈균씨가 [매일경제지]에 3년 동안 매주 기고한 글을 엮어 낸 책입니다. 그의 글에는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사물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소재가 평범하다고 해서 글이 평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사유는 비범하다 못해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저자는 사물의 ‘기능적 쓰임새’가 아닌 ‘관계적 차원에서의 의미’에 주안점을 둡니다. 일상의 사물을 달리 볼 때 비로소 세상에 대한 관점이 바뀌며,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 나의 삶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의 눈길을 끌었으며, 기억해 두고 싶은 사물에 대한 얘기를 나눠 보고자 합니다.





[양산] - 그늘을 만드는 일은 남자답지 못한가


우산과 양산은 모양이 똑같지만 용도는 정반대다. 하나는 비를 피하고, 하나는 뙤약볕을 피하기 위해서 가지고 다닌다. 현실적 관점으로 볼 때, 양산은 여자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양산으로 제 머리에 그늘을 이고 다니는 남자가 있다면, 십중팔구 그는 남녀 모두에게 의혹의 시선을 받게 되지 않을까. ‘어머, 저 남자 뭐야. 혹시......?’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옛날에는 우산도 여자의 전유물이었다는 사실이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 등 고대 문명에서 남자들은 비를 피하려고 우산을 쓰는 것을 떳떳하지 못한 일로 여겼다. 지금은 보편적인 것이라 여기는 사물이 전혀 그렇지 않게 사용되고 인식되던 시절도 있었다는 말이다. 우산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양산을 놓고서 ‘남자다운’ 사물과 ‘여성스러운’ 사물을 나눈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실 여름 햇볕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따갑지 않은가.
 
저는 평소에 왜 남자들은 ‘양산’을 들지 않는가라는 주제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양산’에 대한 글을 읽고 난 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산’을 든 여자를 떠올려 봅시다. 따가운 햇볕을 피하면서 자신의 우아함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인 ‘양산’. 그러고 보면 ‘양산’의 무늬 또한 우산과는 달리 꽃무늬가 많으며 색 또한 강렬한 색보다는 파스텔 톤 위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대부분의 아이들도 ‘양산’을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양산’에 만화캐릭터가 그려져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기분을 들까요? ‘양산’이라는 도구는 그야말로 여성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최적의 도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햇볕이 따사로운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드라마 촬영지의 여배우가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양산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큰 양산을 쓰고 있었는데, 남배우들 또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평소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관행화된 남자다운 사물과 여성스러운 사물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어폰] - 연인들의 공동체


이어폰은 밀실을 두 사람만의 공동체로 인도하는 마술선이다. 나 외에 오직 단 한 사람, 그리하여 둘만이 공유하는 비밀이야말로 혼자 간직한 비밀보다 은밀하고 달콤하지 않은가. 밀실의 역설은, 그 자신 외에 두 유형의 타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어폰을 매개로 그 둘이 공유하고 있는 대상은 돈도 명예도 지식도 아니다. 그런데 음악이란 건 실은 세상의 잣대에서 보면 별 쓸모를 가지지 못한 것, 무용한 것이다. 없지 않은 것이지만, 분명히 있다고 할 수도 없는 것, 그들은 바로 이걸 그 순간 공유하고 있다. 쓸모로 환산될 수 없는 것, 실체화되지 않는 것,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는 순간, 그들은 세상에 없는 그들만의 공동체를 건설한다. 이 순간 이어폰이 진정으로 건설한 것은 바로 ‘연인들의 공동체’다.
 
저자는 ‘이어폰’을 연인들의 공동체와 연관 지어서 주목했지만 저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어폰’이 연인들의 공동체 매개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밀실’을 갖게 하는 도구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었다는 얘기입니다. 대학교 수업 오리엔테이션 시간에는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으레 자기소개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그 중 졸업을 앞두고 있던 고 학번 선배는 자신이 처한 힘든 상황을 담담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이를테면 부모님, 자신의 미래에 관한 얘기들로요. 그는 이어서 걸어 다닐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힘을 낸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 후로 그 선배는 수업을 들으러 올 때 종종 이어폰을 낀 모습을 보여주곤 하였습니다. 제가 ‘이어폰’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모습은 바로 그 선배의 모습이었습니다. 현실은 암울하고 암담했겠지만,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절대 함락되지 않을 자신만의 견고하고 단단한 밀실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을 그가 여전히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을 들으며 거리를 거닐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자전거] - 바퀴살은 왜 비어 있을까


운동하는 자전거는 바퀴살 사이로 언뜻언뜻 빈 공간을 드러낸다. 조형적으로 잘 만들어진 자전거를 풍광이 좋은 곳 앞에 세워보라. 처음에는 자전거 바퀴살이 보이다가, 나중에는 살들 사이로 빈 공간이 드러나며, 마지막에는 빈 공간 사이로 ‘나타나는’ 자연을 보게 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파르테논 신전의 아름다움은, 신전이 없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신전 뒤의 하늘과 깎아지른 절벽을 ‘불러들여서’ ‘나타나게’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하였다. 공학적으로 따지면 쇠로 만든 바퀴살이 자전거를 지탱하는 물리적 축일 수 있겠지만, 철학적으로 해석하면 이 단순한 기하학적 사물을 경쾌하게 운동시키는 근거가 이 바퀴살 사이의 ‘무(撫)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자전거 바퀴살’에 관해 이야기 또한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자전거 바퀴살을 통해 바라보는 자연과 풍경에 대해 주목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아마도 저자는 자전거 바퀴살을 통해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했던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거리가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 서려 있는 공간이 되듯이 저자에게도 그 경험이 잊지 못할 만큼 소중했지 않았을까요.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들으니 저도 파르테논 신전을 찾아가서 그 신전 너머에 있는 하늘과 절벽의 아름다움을 만끽해 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자전거를 탈 일이 있으면 바퀴살 너머의 또 다른 세계를 포착하기 위해 노력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젓가락] - 둘이 있어야만 시작되는 ‘사람다움’ 


우리말로 간단해 보이는 ‘어질 인’을 공자는 ‘사람다움’이라고 사유했다. 이 ‘사람다움’은 단독자로서의 개인의 내면성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글자 모양을 보면 ‘사람(人) 둘(二)’ 있는 게 ‘인’이라는 글자다. 내가 보기에는 젓가락이 일상 사물 중에 가장 사람다움을 반영하는 사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젓가락은 한 짝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물이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하는 것은 젓가락의 동선이다. 젓가락은 양쪽이 각각 움직이지만 음식을 퍼올리거나 긁거나 찌르기보다는, 같은 방향을 향해 바깥에서 감싸듯이 안으로 움직이며 음식물을 들어올린다. 바깥에서 감싸는 동선으로 음식물에 다다른 각각의 젓가락은 그때 ‘하나’가 되는데, 젓가락의 모양새도 둘이 모여 정확히 ‘사람 인(人)’ 자가 된다. 어쩌면 ‘사람 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간다움’이라는 공자의 ‘인’은, 불균형한 둘이 각자 자기 동선을 작동시키고, 한 방향을 향해 감싸듯 움직이면서 비로소 사람[人] 형상을 하게 되는 ‘젓가락의 윤리’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저의 외국인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인 친구가 있는데, 중국이 공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이 얘기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 동양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되겠지요. 어쩌면 조그마한 논쟁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포크’라는 사물에 담긴 철학을 새롭게 알게 되면서 말입니다. ‘포크’에 담긴 철학은 무엇일까요? 개개인마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한데, 동양과 서양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점도 흥미진진하며 그 차이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저는 엉성하게 젓가락질을 하다가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올바른 젓가락질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에 이런 얘기를 들었더라면 더 일찍 고칠 수 있었을까요? 한 짝만으로는 가치가 현격히 떨어지는 젓가락을 보면서 인생을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야하는지를 배우게 되다니, 사물이 가지고 있는 철학이 시사하는 바가 참 큰 것 같습니다. 저자만큼 깊고 창의적인 발상을 하지 못하더라도 일상 속에서 사물의 철학을 엿보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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