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얼굴로 사는 세상 [문학]

글 입력 2016.02.2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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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고보作'타인의 얼굴'
특별할 것 없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고보의 실종 3부작중 하나인 이 책 역시 우리에게 꽤 진지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작가는 얼굴이 실종되었다는 설정으로 단순하면서도 극단적인 상황에 주인공을, 또 우리를 몰아넣고 책을 읽는 내내 갈등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얼굴, 외모, 외적인 면모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일까, 사회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일까, 얼굴이 나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등의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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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소장을 맡고 있는 주인공은 실험실에서 액체질소 폭파사고를 당한 후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는다. 덩어리가 되어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린 얼굴이 그에게는 자신과 타인을 연결하는 통로의 차단으로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붕대를 칭칭 감은 그를 피하고 그의 내면을 알아봐주지 않게 되는데 심지어는 그의 아내마저 그의 손길을 거부한다. 추한 자기로부터 사람들이 멀어져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 그는 본래 자신의 얼굴을 되찾기 위해서, 나아가 얼굴로서 뒤틀린 인간관계를 회복하고자 타인의 얼굴을 한 가면을 만든다.
인간의 피부과 똑같이, 정교하게 완성된 가면을 쓰고 타인으로 변신한 그는 그제야 남들 앞에 당당히 서게 되는데, 사실 처음부터 그가 당당했던 것은 아니다. 몇 차례 남들 앞에 서는데도 전혀 몰라보는 그들의 반응에 자신감이 생긴 그는 그에게서 멀어졌던 자신의 아내를 유혹해보기로 한다.
그러나 아내는 그에게 쉽게 유혹당하고, 자신의 아내에 대한 실망감과 본래 얼굴에서 오는 패배감 등이 휩싸여 애증의 감정이 생겨버린 그는 마침내 아내를 뺏긴 기분에 가면에게까지 질투를 느끼며 그녀를 단죄할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아내에게 모든 일을 고백하려고 그간 자신이 타인이 되기까지의 경위가 담긴 노트 세 권을 준비한다. 아내는 이미 남편임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이 생각하는-남편 와는 다른-가면의 의미에 대해 편지로 답장한다.

 
     얼굴, 외모, 외적인 요소 - 타인과의 상호작용, 그 존재의 필요성
이를 하나씩 답해보기까지 나 역시도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리고 이 답에 대해 아직도 확신을 하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나는 가면을 쓴 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 처음부터 자신의 망가진 얼굴이 타인과의 관계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얼굴만 녹아내린 것뿐이지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듣는 귀도, 타인을 대한 마음도 변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모두들 녹아내린 덩어리를 바라보는 것을 포기했고 그는 그 시선들에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흉측한 얼굴이 인간관계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얼굴을 숨기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저 고뇌의 물음들을 하나의 물음으로 압축시켰다. 얼굴을 잃었던 그가, 그 세상에 맞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 살아가는 데 있어 얼굴이 꼭 필요할까?’라는 물음을 하게 되었다. 저기서 얼굴이라 함은 외모나 외적인 요소 뿐 아니라 주인공과 같이 얼굴의 실종을 뜻하기도 한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의 얼굴이 전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인 것 같다. 첫째로는 그저 외적인 면이다. 사납고 거친 인상은 때론 선입견을 갖게 하고 겁을 먹게 되기도 한다. 반면 부드럽고 선한 인상은 그에게 다가가기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설사 이 두 사람의 내면이 각각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일단 외모로서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화장을 하는 것도 이를 위한 행동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외모를 조금 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로 도드라져 보이기 위해서 하는 치장인 것이다.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이 유행이듯 우리가 누군가와 상호작용 할 때 외모는 이미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이 아니라도 얼굴은 나와 타인의 만남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얼굴도 의사소통방법 중 하나이다. 미안한 표정, 고마운 표정, 각종 의미를 담은 표정들은 때로는 말 이상으로 효율적인 전달 방법이 된다. 솔직한 교감도 힘에 부칠 수 있다. 얼굴이 없다는 것은 신뢰를 주기 위해 목소리와 전달하는 말로만 진심을 전해야한다는 뜻이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또한 나 자신을 나타내는 가장 손쉽고 정확한 방법이기도 하다. 얼굴이 아니면 나를 남에게 각인시켜줄 수 있는 것이 몇 개나 될까? 목소리, 몸짓, 말의 어투, 이것들도 얼굴처럼 이미지로 기억시키는 것만큼 나를 정확히 나타낼 수는 없다. 얼굴은 우리가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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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인의 얼굴 (The Face Of Another, 1966)



하지만 외모만이 타인과의 관계를 오롯이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외모가 우선적인 면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커버할 수 있는, 그것 이상으로 타인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것 또한 많다. 나를 인식시키는 데 강력한 힘은 없지만 저 외모가 아닌 것들의 매력발산도 그의 사회생활 복원에 가면 못지않은 도움을 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피부조직을 따라한 정교한 가면을 만들어 얼굴에 입히는 그의 노력을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는 형용하지 못할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녹아내린 덩어리로 주위 사람들의 두려운 시선을 감당하는 것이, 더욱이 자신을 향한 아내의 거부가 그에게 가면을 제작하게 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극 후반에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회의감을 들게 한다. 극 후반 아내는 그가 덩어리 얼굴을 내밀었을 때는 그의 손길을 거부하더니 그가 가면을 쓰고 오니 그간 거부했던 관계를 맺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 역시 그저 외모가 중요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내 주장을 되돌아보게 된다. 인간의 개인적 욕망과 외모의 순기능의 조합이 이 책에 대해 곱씹어보게 하는 요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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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
그렇게 그가 얼굴에 쓰게 된 가면은 그에게는 숨 가쁘게 도망치다 숨을 돌릴 수 있는 비상구 같은 존재였다. 그는 인간관계에서 의기소침해졌던 자신감을 다시 찾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원래의 를 감쪽같이 몰라보았고 소원했던 아내의 마음을 갖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에게 설정된 가면이라는 장치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첫 번째는 왜 타인의 얼굴을 가면으로 만들었냐는 것이다. 자신의 잃은 얼굴을 위해서라면 원래 자신의 얼굴을 본 따 가면을 만드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는 타인이 되어 제 2의 생활을 한다. 게다가 그렇다면 그 타인의 얼굴이 마음에 들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가면과 자신을 철저하게 배제시킨다. 각자 다른 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 소설 속에선 ‘~을 했다. 물론 내가 아니라 가면이 말이다,’따위로 그려내고 있다. 자의적으로 해석해보자면 그는 이미 징그럽게 엉겨붙어버린 자신의 얼굴에 지쳐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본인의 자아로 생활했을 때 벌어진 사고와 사람들의 거부로 이미 자신의 자아에 대한 기대희망은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자아로 살아보고자 타인의 얼굴을 택한 것 같다. 이러한 전과(?)가 없는, 그래서 인간관계를 마치 새로운 사람을 만나듯 시작하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두 번째 자아는 분명히 그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얼굴 위에 붙어있는 이 얼굴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철저한 배제가 일어난 것 같다. 2의 만들어진 자아가 하는 일들에 대해 이건 진정한 내가 아니다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가면을 쓴 이후의 그의 솔직한 심리이다. 그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피하지 않는다는 안도감은 충분히 얻었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는 가면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기쁘지가 않다고 말한다. 이는 복원하고 싶던 인간관계는 원활해졌지만 그 결과에 뒤따라올 제 2, 3의 결과가 두려웠던 것 같다. 이를테면 타인의 얼굴을 쓰는 것은 성공적이었지만 이 타인에게 자신의 본연의 모습까지 빼앗겨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감일 것이다. 얼굴은 달라졌지만 눈빛, 목소리, 말투, 행동, 생각은 모두 의 것이다. 이것이 이제 타인의 얼굴에 빗대어 나올 것이니 그간 가지고 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이 이 타인의 것이 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만든 타인의 얼굴은 자신이 그토록 안고 싶었던 아내를 유혹하는 데도 성공한다. 그의 불안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가면이 꼭 모든 해결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결국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임시적인 용도였을 뿐이고 자신의 인격을 침해받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인 만큼 가면을 쉽게 내던지지도 또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지경에 서게 될 수도 있다. 아내는 말한다. 가면은 그 안의 진짜 얼굴을 감출 때가 아니라 자신이 가면을 썼다는 것을 알리고 쓰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이다. 이것이 가면에 대한 결론을 정리해주는 것 같다. 흉측한 얼굴을 지우고 싶은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의 가면까지는 참 좋다. 하지만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은 가면 뒤에서 서서히 자신의 얼굴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기능만 가져가고 자신을 온전히 잃지는 않게 하기 위해 아내는 에게 그러한 편지를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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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아베 고보
일본의 카프카라고도 불리는 아베 고보(1924~1993)의 본명은 아베 기미후사[安部公房]로 고보[公房]는 필명이다. 일본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1950<붉은 누에고치>로 전후문학상을, 1951<-S.칼마 씨의 범죄>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일본문학계에서 우뚝 떠올랐다. 극단을 운영하며 자신이 쓴 희곡들을 무대에 올리는 등 극작가로서의 활동도 활발하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타인의 얼굴>, <불타버린 지도>, <상자 인간>, <모래의 여자>등이 있으며 <모래의 여자>, <불타버린 지도>, 그리고 <타인의 얼굴>은 아베 고보의 실종 3부작이라 불린다. 사회와 인간관계의 폐쇄성,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을 초현실적이고 전위적인 수법을 이용하고 도시인의 고독, 타자와의 소통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였다.
실존주의적 성향이 강하며 이는 탐구하고자 선정한 <타인의 얼굴>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김지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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