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매혹적인 질투가 불러온 파멸, 뮤지컬 살리에르[공연예술]

글 입력 2016.02.2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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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도 매혹적인 '질투'가 불러온 파멸
 뮤지컬 살리에르
살리포스터.JPG
 


고흐, 살리에르, 파리넬리 등의  거의 위인뮤지컬 전문  HJ 컬쳐사의 두번째 작품인 살리에르가  올 뉴!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재연으로 돌아왔다. 중극장 정도였던 초연과 달리, 대극장으로 돌아온 살리에르!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또 어떻게 발전했을까?
살리에르란?
살리에르 ㄹ.png
 
 <출처: 뮤지컬 살리에르 상세페이지>
극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일단 '살리에르'란 인물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흔히들 '살리에르'라 하면
 2인자가 떠올랐을 것이다. 살리에르는 피터셰퍼의 희곡과, 동명의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2인자가 된 인물이니 말이다. 심지어는 이인자 증후군을 살리에르 증후군이라고 표현 할 정도니. 그가 가진 '2인자'의 이미지는 엄청나다. 그런데 실제로 그는 모차르트를 질투한, 재능없고 볼품없는 음악가일 뿐이었을까? 위 이미지에도 나와있듯, 실제로는 그렇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그 당대에는 모차르트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았을 정도며, 슈베르트나 베토벤 등의 유명한 작곡가를 키워낸 사람도 바로 살리에르였다. 모차르트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보면, 외려 모차르트-살리에르를 두고 한 여러 경쟁아닌 경쟁에서 살리가 이겼던 경우들도 많았고 둘의 관계 또한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모차르트의 아들을 살리에르가 교육했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보아 살리에르는 이미지처럼 그리 '무능'하고, '모차르트에게 뒤진'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 자세히 알고싶다면 여기서.


시놉시스

살리에르.jpg
 

 대놓고 적어넣은 '질투의 속삭임'이란 제목에서부터 대충 감이 왔겠지만,  시놉시스는 보편적인 '살리에르'의 이미지를 따라간다. 시놉시스를 읽고 영화 <아마데우스>를 떠올린 사람이 있다면 그 생각이 맞다고 말해주고 싶다. SNS 등에도 많이 돌아다녀서 이미 유명한 대사인 '욕망을 갖게했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지.' 이 대사 하나로 이 뮤지컬을 표현 할 수 있을 정도로 뮤지컬 살리에르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설정, 스토리 라인 등과 거의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완벽했던 살리에르의 삶, 혹은 완벽했다고 '생각'했던 살리의 삶은 '모차르트'라는 존재가 등장함으로써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평생을 바라고 바라왔던, 자신은 끝없이 노력했지만 결국 갖지못했던 '하늘의 음악'을 가진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났는데 어떻게 제정신일 수 있을까? 여기서 영화와 다른 점은 '젤라스'란 청년이다. jealous. 마치 뮤지컬 엘리자벳의 '죽음' 처럼, '질투'라는 감정을 형상화 시킨 이 캐릭터는 자칫 영화 <아마데우스>의 무비컬이 될 수 있던 뮤지컬 살리에르에 그 자체만의 고유한 매력을 선사해준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젤라스의 그 대사가, 매혹적이면서도 서늘하다.

살리에르와 젤라스

"그가, 그가 오고있어!"

살리에르는 자신의 목에 펜대를 꽂아넣는 살리로 시작한다. 그 후로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소문이, 음악이. 소문처럼 빠르게 공연장 안을 잠식해 나간다. 살리가 중얼거리는 알 수 없는 '그'의 존재. 완전히 미쳐버린 것만 같은, 폐인의 모습을 한 살리는 '그'가 나타나기 전 자신의 완벽했던 과거를 떠올린다.

"나의 영광을 노래해"

그렇게 시작되는 화려한 무대. 뮤지컬 '살리에르'는, 이미 '그' 때문에 몰락한 그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일종의 회고록이다. 살리를 무척이나 아꼈던 이전의 왕 덕에 살리는 '궁정악장'으로서 당대 최고의 권위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왕권교체의 시기. 살리를 굉장히 아꼈던 이전의 왕과 달리, 새로운 왕은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 '새로움'으로서 나타난 것이 바로 '모차르트'. 모차르트를 마주한 순간 깨어난 '질투'. '젤라스'로 인해 그의 삶은 180도 바뀌고 만다. 

"순한 종이 되어 드릴테니."

시도때도 없이 찾아와서, 모차르트에 대한 질투심을 부채질하고 그를 괴롭히는 그. 다 '선생님'을 위한거라고 하지만 그 말이 고깝게 들리지 않는다. 사실 뮤지컬 살리에르에서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가, 바로 이 '살리에르와 젤라스'의 관계이다. '젤라스'는 결국 살리이자, 살리에르의 감정이다. 질투이자 자기애. 살리에르가 지금껏 억눌러왔던 모든 감정들의 화신인 것이다. 그러나 살리에르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젤라스'를 인정하지 않는다. '감정'이면서 '본인'에게 거부당하는 감정. 그러한 '감정'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젤라스'는 살리에르를 위하지만, 살리에르는 이를 원치 않는다고 한다. 결국 젤라스도 살리 그 자신인데도 말이다.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자기 자신을 인정 할 수 없을만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살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리를 위할 수 밖에 없는 젤라스. 그 둘 모두 안타깝다. 극 중 살리가 젤라스를 받아들이는 장면들이 있지만 결국 그 둘은 서로 닿지 못하고 끝이난다. 서로 맞잡은 손, 마음만은 갈 길을 잃었다. 형상화 된 캐릭터인 '젤라스'도. '감정'에게 감정이 있다면, 결국 본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셈이니 너무나도 안타깝고 살리에르 그 본인도 무척이나 안타깝다.  자신이 한 일들을 '젤라스'라는 존재를 만들어서 타인의 짓이라고 여기고 싶어 할 정도로 죄책감을 느끼며 끊임없이 스스로 자기부정을 하고있는 것이다. 

'젤라스'란 존재로 인해, 각각 개별로 봐도 둘의 관계는 너무도 안타깝고 그 둘을 하나로 봐도 안타깝다. 어떻게 해석을 해도 너무나도 안타까우면서도 매력적인 관계성이다. 극 중에 약간의 브로맨스같은 장면들이 있는데, 그 장면들도 브로맨스라기보단 처절한 '자기애'로 보인다. 

살리에르-젤라스-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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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서대로 모차르트-살리에르-젤라스>


극의 또다른 매력포인트는, 살리에르-젤라스-모차르트 이 셋의 관계이다. 


"점점 더 가까이 나에게 말을 해, 저이는 누굴까 마음을 흔드네 나에게 말을해~♪"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만난 순간. 자신의 안에 '질투'라는 감정을 인식한 순간, 아무도 모르게 '젤라스'란 존재는 나타난다.  '질투'의 감정이어서 그런지, 살리에르와 모차르트가 실제로 붙는 장면은 많지 않다. 둘이 붙는 장면은 대부분 '젤라스'를 통해서 표현 된다. 살리가 모차르트를 만날 때는 항상 '질투'라는 감정을 수반하고 있다는 점이 참 마음이 아프다. 


"살리에르, 그를 알아요? 젤라스. 매일 밤 내게 찾아와서 백조의 노래를 의뢰했어요."

극이 '살리에르'를 중심으로 살리에르의 회상으로 흘러가기에, 극 상에는 '살리에르의 질투'로 많이 표현되지만 나는 '젤라스'가 모차르트의 질투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살리에르와의 경합에서 진 모차르트는 결국 빈에서 외면을 받고, 파멸의 길을 걷는다. 그 길을 재촉한 것이 바로 젤라스이다. 알 수 없는 파란약을 주며, 백조의 노래-라크리모사를 의뢰하는 그. 그 약과 음악은 모두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나는 당신이 부러웠어요. 날 외면한 빈의 사람들이 당신은 인정해요."

모차르트를 죽이는 행위가 모차르트의 젤라스라고? 의문을 품을수도 있지만.  저 대사에서 나는 모차르트의 '젤라스'를 분명하게 느꼈다. 나는 이미 '빈', 즉 살아있는 이승에서는 이길 수 없게 되어버린 살리를 모차르트가 영원히 이기는 방법 중 하나가 라크리모사의 완성과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여론적으로, 상황적으로 살리에게 져버린 모차르트. 그런 그가 '살리'에게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다. '음악'. 완벽한 음악을 작곡하다 죽는 것. 그보다 더 살리에게 제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살리는 자신이 죽였음에도, 모차르트가 완성하지 못한 음악의 뒤가 궁금할 것이다. 그에게 '재능'은 없어도 음악을 듣는 귀는 내려주신 신이었으니 말이다. 그것이 궁금할때마다 그는 자괴와 함께 질투에 휩싸일 수밖에 없을것이다. 죽음으로서 모차르트의 '질투'는 살리에르를 완벽하게 이겨버리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모차르트를 죽이는 행위는 살리의 질투이다. '너만 없으면!'이라는 감정의 발로인 것이다. 모차르트가 죽는 장면에서 젤라스와 살리에르가 접전을 벌이는데, 이는 살리의 남아있는 양심+이성과 질투가 싸우는 내적갈등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모차르트는 '젤라스'라는, 살리와 모차의 질투의 산물로 죽음을 맞이하고 살리는 죽음과도 같은 여생을 살게 되었다. 보면 볼 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타깝고도 너무도 매력적인 관계성이다.

 
화려한 앙상블, 화려한 의상, 화려한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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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볼 수 있듯 배우진+의상이 화려하다. 30명에 가까운 배우진이 펼치는 여러 장면들은, 귀 호강은 물론 눈호강도 제대로 시켜준다. 의상의 재질이 약간 의심되기는 하나, 의상의 화려함도 눈요깃거리로 좋다. 남자 앙상블들을 세워놓으면 마카롱을 전시해놓은 듯 보일 정도로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의상과, 흑백으로 대비되는 모차르트와 살리-젤라스를 보는 맛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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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옛시대로 간 듯, 넓게 펼쳐지는 붉은색 커튼도 그 분위기에 한 몫을 한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젤라스와, '한국인 정서'에 정말 잘 맞는. '노력형' 살리에르와 화려한 무대, 의상, 배우들을 보고싶다면 살리에르가 적격이다.

뮤지컬의 상세페이지는 여기서 확인 가능하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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