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아직 발견되지 못한 기억과 순리를 거스르는 진리[문학]

W.G.제발트 - 아우스터리츠
글 입력 2016.02.24 23:3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아직 발견되지 못한 기억과 순리를 거스르는 진리

 


 

 제발트가 2001년에 썻던 <아우스터리츠>, 이번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아우스터리츠>는 가장 어렵고 매우 난해한 작품이라고 유명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만큼 겁이 나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용기를 내서 ‘아우스터리츠’를 집었다. 길게 이어지는 건조한 묘사, 그 묘사가 끝나고 시작되는 다른 긴 묘사 속에 길을 잃을 읽기를 여러 번. 읽다가 머리를 쥐어짜며 다시 놓다가, 나는 결국 소리 내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체코 프라하에서 유대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아우스터리츠는 네 살이 되던 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입양된다. 이는 일종의 구조운동으로서, 유대인 어린아이를 피신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의 역사를 알지 못한 채 살아왔으나 열 네 살에 아우스터리츠라는 본인의 이름을 알게 된다. 세월이 흘러 건축가가 된 그는 그를 도와주는 서술자와 함께 실타래 같이 얽힌 과거의 유년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다.

 

 이 소설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아우스터리츠는 런던의 미술사학과 교직을 가진 건축가이다. 그리고 그의 지인이자 오래 전 친구인 ‘나’의 서술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둘은 일전에 벨기에, 런던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이를 시작으로 특별한 교류를 이어간다. 이후 다시 조우하게 되고 나레이터인 '나'가 벨기에에서 늙은 건축가인 아우스터리츠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20년 만에 만난 서술자에게, 아우스터리츠는 자신이 되찾고자 하는 기억의 흔적을 이야기 한다.

 

 소설은 녹투라마 동물원에 갇힌 너구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서술에 따르면, 이 너구리는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확실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북미산 너구리로, 나는 그 녀석이 작은 물가에 앉아서 진지한 표정으로 시종 똑같은 사과 조각을 씻는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했는데, 분명히 녀석은 아무 특별한 이유도 없는 이런 행위를 통해 자신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빠져든 이 잘못된 세상에서 빠져 나오려는 것 같았다.”

 

너구리는 반복적으로 물가에 사과를 씻는다. 원치 않게 빠져버린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런 행동은 아우스터리츠의 모습과도 연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전까지의 세계, 순리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벗어나고 자신이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 이 소설 속에서 그가 자신의 과거 기억과 부모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것도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사실 ‘기억’을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하는 주체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시간이라는 순리를 거슬러 ‘과거’를 찾고자 하는 과정이 단순히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은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성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잊혀진 기억을 찾아 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의 과정인 것이다.

 

“지난 여름이 끝날 무렵 몇 마일 계곡 위에 놓인 돌겔 초원에서 시험 비행을 보낸 뒤 시간이 훨씬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이미 희망을 접은 다음날에야 비로소 한쪽 날개가 부러진 채 집 입구의 자갈길을 걸어서 돌아왔다고 했어요.”(89)

여기에서,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자신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즉, 'identity :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인 것이다. 작품 내내 아우스터리츠는 끊임없이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20100705.01100101000004.02M.jpg


아우스터리츠는 입양된 영국에서 이름도, 출신도 잊어버린 채 성장하게 된다. 데이비드 일라이어스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그의 기억에는 유대인으로서의 그의 과거도, 전쟁도 존재하지 않았었다. 양부모도 그의 출신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았고, 그 자신도 역사를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훨씬 지난” 후에, “비로소”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아우스터리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즉 진정한 자신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이미 잊혀진 것을 복원해내려 하고, 지나간 과거를 되살리고 싶어 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앞서 간다는 것은 판타지 영화에서 소재로 쓰일법한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모두들 이것을 알지만, 사람들은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 한다.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로 돌아갔으면 하고 생각하고 잘못했던 순간들은 지우고 싶어 한다. 아우스터리츠 또한 이번 작품 속에서 시간의 극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진리를 너무나 잘 알기에, 스스로 시계를 절대 소유하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한 번도 시계를 가진 적이 없는데, 벽시계나 자명종, 주머니 시계, 손목시계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114) 그러나 그는 모순적이게도, 스스로 시간을 거스르며 과거를 찾고,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나는 그의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진리를 발견했다. 우리의 삶은 이처럼, 극복하기 어렵거나 때로는 불가능 한 것에 대한 노력과 성찰로 채워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성찰의 과정, 불가능한 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에서 아우스터리츠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듯이 우리도 그러한 과정을 통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어버리고 자아를 잃어버리고 기억을 잃어버린 아우스터리츠가 이를 찾고자 떠나는 여정이 험난했듯이, 전체적으로 소설 <아우스터리츠>는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그러한 여정을 표현하는 문장들은 아름답고 화려한 묘사의 연속이다. 이 소설의 문체의 난해함이나 주제의 무게감을 감안했을 때, 독자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평가되는 것은 이러한 독특하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운 문장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책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문장들은 수많은 겹겹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축약이라곤 없는 길고 반복적인 묘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줄곧 소리 내어 읽곤 하였는데, 세 네 줄이 넘는 문장들은 호흡을 어디서 쉬어야 할지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평소 간결하고 짧은, 명료한 문체를 선호해서 그러한 종류의 작품들을 골라 즐겨 읽었던 나에게는 매우 낯설고 이질적인 작품이었다. 이야기의 줄거리 역시 역동적이고 반전 있는 스토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조로우면서도 매우 난해하여 읽는 내내 연신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뛰어난 묘사력과 표현력, 화려한 문장들은 기억에 깊게 남는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던 점은 번역이었다. 실제로 필자는 문학 번역에 관심이 많아서 지난 작품 <맥베스>를 읽을 때에도 영어 원문과 두 가지의 버전을 함께 읽으면서 비교해보곤 했었다. <아우스터리츠>는 아쉽게도 국내에는 한 가지 버전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제발트는 의도적으로, “어떤 독일인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 ‘인공언어’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일상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은 이러한 어려운 말로 쓴 이유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할 때 일상어가 가지는 표현의 한계, 그리고 이를 통한 소통과 이해 가능성에 대한 그의 깊은 회의를 보여주기”위해서 였다고. 번역을 한 안미현 교수는 이번 작품을 옮기며 ‘번역 불가능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쉼 없이 이어지는 여러 겹의 문장들, 간접 화법, 제발트 특유의 세세한 묘사들을 내가 결국 모두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번역 덕분일 것이다. 작 중에서 아우스터리츠가 자신이 입양되어 살았던 영국의 웨일즈 지방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그 문장이 너무도 세세하고 섬세해서 그 풍경을 눈으로 그려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러한 복잡하고 난해하면서도 길이가 긴 문장들을 어떻게 다른 언어로 이렇게 잘 표현해 낼 수 있었는지 그 놀라운 수고와 실력이 여실히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아우스터리츠>는 작가 제발트가 2001년 교통사고로 작고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쓴 작품이라고 한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별세하지 않았다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도 있었다고 할 만큼 높이 평가되는 작품이다. 매우 난해하고 어려운 책이라고 여겨지면서도 이렇게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은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쉽게 읽힌 책은 쉽게 잊힌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는 이 명제의 반대 명제로서, 나에게 오래오래 기억될 만한 소설이다.



[안시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