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반 산트의 코끼리는 어떤 코끼리 일까?[시각예술]

- 영화 <Elephant>, 2003, 구스반 산트
글 입력 2016.02.2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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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산트의 코끼리는 어떤 코끼리 일까?
- 영화 , 2003, 구스반 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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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ine 콜럼바인. 미국 콜로라도 주에 위치한, 여느 고등학교들에 비해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학교 이름이었지만 미국 내에서는 이제 비극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이 곳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때문이다. 영화 “Elephant"는 컬럼바인 총기 난사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는 1999년 4월 20일에 미국 콜로라도 주 제퍼슨 카운티의 컬럼바인에 있는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두 학생의 총기 난사로 인한 참사이다.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는 이 날 미리 준비해두었던 총기를 난사하여 12명의 학생과 교사 1명을 살해하고 21명의 학생에게 부상을 입혔다. 본인들은 그 자리에서 자살하였다. 그런데, 이 끔찍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의 제목이 왜 ‘코끼리’일까? 언뜻 보기에, 영화의 내용과 제목은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은유나 상징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영어에서 Elephant는 어떤 숨겨진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머릿속에는 세 가지 종류의 ‘코끼리’가 떠올랐고 이를 통해 영화 ‘Elephant'의 제목에 담긴 의미에 대해서 짐작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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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떠오른 표현은 방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이라는 영어표현이다. 방 안에 커다란 코끼리가 한 마리 있다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그 코끼리를 밖으로 내보낼 방도는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코끼리를 그들이 거실에 둔 채 그대로 살아간다. 눈에 빤히 보이는 골칫거리이지만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다보니 그냥 무시한 채로 참고 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그 커다란 코끼리의 존재도 어느 샌가 익숙해진다. 이렇게 ‘방안의 코끼리’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 문제를 일컫는 말이다. 내부의 거대한 문제들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 코끼리는 가끔 몸을 움직여 집을 흔들기도 하는데,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 1999년 두 학생이 총기를 난사한 날. 그날이 바로 그 코끼리가 움직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컬럼비아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에도, 미국에서는 여러 번의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무고하고 소중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도 총기의 천국이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총을 구할 수 있고, 따라서 어떤 사람이건 이런 사건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러한 사회 상황에서 총기 규제는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논란거리 중 하나이다. 감독 구스반 산트는 영화 ‘엘리펀트’를 통해 총기 소유의 자유가 보장되는 미국의 현실을 ‘방 안의 코끼리’에 비유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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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소유’라는 사회의 커다란 문제점, 가끔은 크게 움직여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코끼리 같은 그 문제점을, 사람들은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떠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차가운 머리로 컬럼바인 총기사건을 평가해보고 더 나아가 총기소지법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해볼 필요성을 시사한다. 총기 소유뿐만 아니라, 청소년 게임의 폭력성 문제도 발견된다. 이 또한 사회가 갖고 있는 그러나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는 문제점이다. 영화가 후반을 향해 달려갈 때 쯤, 가해자 중 한 명이 총격 게임에 몰두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 장면은 처음에는 그렇게 나의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가해자들이 친구들, 선생님들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에서 내 머릿 속에 다시 튀어나와 오버랩되었다. 이는 가해자들이 폭력적인 게임에 몰입해왔고, 그 영향을 받아 현실세계에서도 이를 모방한 것이 아닐까? 둘 사이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것은 다소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가해자인 에릭과 딜런이 사격 게임에 몰두해왔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총기소유 문제와는 다르게, 이는 우리나라에도 적용된다. 요즘 청소년들이 즐기는 대부분의 게임에서 폭력적인 요소가 여과 없이 등장하는데, 이를 잠재적 위험요소인 ‘코끼리’로 보고 규제해야 할지,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야 한 표현의 자유중 하나일 뿐인지 우리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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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see the elephant"라는 어구이다. 현실을 보다, 인생을 경험하다 또는 세상물정을 알다라는 뜻을 가진 미국의 관용표현이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각종 언론매체는 이를 빠르게 보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사건의 현장에 있지 않은 우리들은 뉴스나 인터넷 등을 통해 사건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TV가 보여주는 대로, 언론인들이 말하는 대로 믿는다. 대중매체가 전하는 사실의 한계와 왜곡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이 건네주는, 또는 포장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당시 미국내에서 콜럼비아 총기난사 사건을 접한 미국시민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언론 매체들은 과연 믿을만한 것일까?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대중들의 그러한 맹목적인 믿음과 의심할 줄 모르는 나태함을 지적하고 그의 작품을 통해서 가능한 가장 현실적으로 총기난사사건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이 영화는 여태까지 내가 봐왔던 대부분의 영화들과 달리, 러브라인도 화려한 액션도 나오지 않는다.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영화라고 해서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배경음악도, 인물들간의 대사도 몇 마디 없다. 서정적인 영상미나 색감이 뛰어나게 아름다운 장면도 나오지 않았으며 결말의 반전도 없이 영화는 끝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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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존의 영화와 반대되는 구스 반 산트의 영화 엘리펀트는, 기존의 매체들의 성향과 반대되고 또한 기존의 매체들이 보여주는 ‘가공된 것’들과도 상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미디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해석되고 가공된 사건이 아닌, 현실을 직접 보여주고 스스로 평가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1인칭 시점에서 촬영하며, 편집된 미디어가 아니라, ‘현실’을 보여주었다.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나는 미국의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를 돌아다니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지나가는 친구들의 잡담을 우연히 듣기도 하고, 체육 시간에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기존의 영화들이 지니는 특징인 대사, 카메라의 잦은 전환, 배경음악 등이 끼어들지 않자 더욱 더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대개 영화적인 구성과 특징이 있다. 그것을 뛰어 넘은 영화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스반산트의 영화 elephant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elephant를 보고,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어떠한 윤리적 잣대도, 가치 판단이 들어간 주제도 제시하지 않는다. 관객들로 하여금 그저 한 걸음 떨어져서 사건을 바라보게 해준다. 마치 일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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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장님과 코끼리'라는 불경의 고사이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see the elephant"와도 부분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 구스 반 산트 감독은 두 가해자가 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명백하게 그 원인을 드러내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냥 다양한 학생들과 선생님의 시점에서 그들의 하루 일과를 덤덤하게 드러낼 뿐이다. 똑같은 하루일지라도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라는 속담처럼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하루를 다르게 경험할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같은 시간 속에서 여러 인물의 뒤를 쫓아간다. 여러 인물들에 포커스를 맞춰서 그날 그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각각 그려낸다. 인물의 시선에 맺히는 곳을 잠깐 보여주기도 하고 주인공을 살짝 넘어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계속 그 인물을 따라간다. 사실 나는 이것이 너무나 단조로워서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인물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몰입해볼 수 있었다. 친구를 죽이는 두 소년을 따라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존의 시선에서 봤을 때는 그냥 ‘어떤 애들 두 명이 군용 가방 같은 것을 들고 학교로 들어갔어. 끔찍한 짓을 저지를 거야.”일 뿐이었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나를 조롱하고 무시했던 친구들,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던 선생님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렇게, 사건을 여러 시점에서 보여주는 연출을 통해서 “총기난사사건”이라는 한 마리의 “코끼리”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화를 보고나서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았을 때, 실제로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기사를 접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스미디어가 전하는 사건은 영화와 달리 기자들의 생각과 가치가 많이 주입되어 있는 것 같다. 기사마다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였고 가해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제각각이었다. 내가 만약 기사를 먼저 읽고 영화를 보았다면 그 기사를 쓴 기자의 생각에 사로잡혀 그와 똑같은 시선으로 영화를 감상했을 것이다. 그럼 “장님과 코끼리”라는 고사를 떠올리지도, 이를 영화제목과 연결시키는 감상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매체들과 달리 “엘리펀트”는 가공되지 않은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이런식이다' 라고 말하는 영화였다. 나는 이 사건을, 구스반 산트 감독의 시선으로 따라가 보고 싶다. “콜롬비아 총기 난사사건”이라는 비극을 어떤 시점에서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느꼈는지 이해해보고 싶다. 그의 어떠한 감상이 이 영화의 제목을 결정지었을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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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Elephant, 2003)

마지막으로, 포스터에 관해 말하며 글을 끝내려 한다. 구스반 산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어떠한 가치나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가공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또 다른 작품인 포스터를 통해서는 무언가를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중요하다는 메세지였다. 총기난사 사건에 관한 영화라는 것만 알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고 선생님께 꾸중을 들은 존이 가해자일 줄 알았다. 그러나 울고 있는 존에게 다가와 소녀가 키스를 해주었을 때 그는 가해자가 아닐 거라고 확신하였다. 수많은 사람을 살인하는 살인자가 될 수도 있었던 소년을 위로해준 한 번의 키스, 감독이 하필 저 장면을 포스터에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 키스가 없었다면 총을 든 소년은 존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안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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