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직설적이고 강렬한 연극 < 떠도는 땅 >

글 입력 2016.02.23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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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과정에 자잘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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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떠도는 땅>은 이제껏 제가 봐왔던
가볍고 발랄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연극이었습니다.
미스테리 연극이라는 점이 흥미로웠고,
미리 받은 보도 자료를 읽은 뒤에도 생각할 게 많은 연극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연극을 관람한 후에 역시나 제게는 좀 어렵고,
생각할 부분이 많은 연극이라 가벼운 기분 보다는 무거운 기분으로 공연장을 나왔습니다.
그나마 미리 보아둔 보도 자료가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습니다.


먼저, 간단하게 <떠도는 땅>에 관해 설명을 하자면,



땅에 소속되지 못하고 떠도는 동시대인들의 삶 <떠도는 땅>
- 2014 창작산실 연극 대본공모 우수상 수상작
- 2015 연극 창작산실 중 유일하게 극작/연출을 겸하는 동이향의 당찬 도전!
- 독자적인 연극 언어를 구축해가며 동시대 연극 모색을 추구하는
‘극단 두’ 창단공연
- 아버지의 장례식과 빛 독촉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 2월 13일(토)부터 28일(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 2015 연극 창작산실 중 유일하게 극작/연출을 겸하는 동이향의 <떠도는 땅>

시적 언어와 작가주의적 관점으로 꾸준히 주목받아온 극작가이자 연출가 동이향이 ‘극단 두’를 창단하고, 창단공연 <떠도는 땅>을 선보인다. <떠도는 땅>은 ‘아버지의 장례식’과 ‘빚 독촉’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2014 창작산실 연극 대본공모’에서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5 연극 창작산실 우수작품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이번 선정작 중 유일하게 극작과 연출을 겸하는 작품이다. 2월 13일(토)부터 28일(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 5년간 축적되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 <떠도는 땅>

이 이야기의 시작은 동이향 작가가 회사에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료의 부친상에 참석하기 위해 시골에 내려갔던 늦은 밤, 문상하고 돌아오던 피곤한 새벽에서 부터다. 이상하게 그 날의 느낌이 오래 남았고, 그게 왜 오래 남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때의 감각을 이야기로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밤, 한 가족이 외딴 시골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으로 요약되는 한 문장의 이야기가 완성되기 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다. 동이향 작가는 스스로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고 이야기 한다. "관객에게 이 이야기가 리얼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신화적으로도 써보고, 사건도 여러 방식으로 만들어봤어요. 톤을 조절하는데 굉장히 어려웠고, 몇 년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작품 하나만 쓰고 있는데, 완성이 안 되니까 좌절이 심했죠." 이렇게 수많은 선택과 실패를 거치며 5년의 시간을 축적한 희곡 <떠도는 땅>이 비로소 움직임을 시작했다.
 


이 보도 자료를 읽고, 연극을 보면 작가님의
많은 고민이 작품에 녹아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족이 외딴 시골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으로 짧게 요악되는 한 문장이지만
연극을 통해 풀어내는 과정에서 많은 함축적 의미가 담겨서인지
연극은 쉴틈없이 빽빽한 느낌으로 진행됐습니다.
그 빽빽한 느낌은 작가님이 5년 간 꾹꾹 눌러오신
열정과 고민이 한데 뒤섞여서 나타난게 아닐까 싶네요.


 
○ 연극 <떠도는 땅>의 ‘떠도는’ ‘땅’에 관하여

땅이란 본디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근원이면서도 생을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을 공급하는 원천이다. 땅은 사람들이 발붙이고 살아가는 곳이며 동시에 생을 마감하고 돌아가는 곳으로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시간을 퇴적하고 미래의 시간을 약속하는 삶의 터전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현대적 삶의 조건들은 터전으로서의 땅을 돈으로 환산해 버렸고 그리하여, 마치 돈이 그러하듯이 땅 또한 떠돌기 시작했다. 사람이 땅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땅이 사람에 속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삶이 머물 곳은 없다. 연극 <떠도는 땅>의 머물 곳 없는 삶은, 정주하고 은신하지 못하는 몸들과 실체 없이 옮겨 다니는 말들을 중심으로 구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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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으면 작가님의 땅에 대한 생각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생명의 근원이면서 삶의 터전인 땅이 현대에 오면서 금전적 가치로 환산됐죠.
특히, '사람이 땅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땅이 사람에 속하는 것'이란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과거에는 주된 역할 이었던 삶의 터전을
이제는 우리 일상의 부속품처럼 가볍게 여기면서 진정한 머물 곳이 사라지는 현실을
이 작품은 직설적으로 꼬집어 내는 것 같습니다.

연극을 보기 전까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땅의 의미가 연극을 통해 새롭게 각인됐습니다.
극의 흐름을 환기시켜주는 노인들의 땅에 대한 잡담은
전형적으로 땅을 지키려는 세대를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땅을 팔아 빚을 갚으려는 미스터 노의 모습에서 현대인을 엿볼 수 있었구요.
이러한 대비가 소설 <돌다리>를 연상시켰습니다.
극의 진행이 무겁다고 느꼈던 점은
근현대 소설을 읽을 때 느껴지는 기분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 불확실한 예고와 전조들로 가득한 서스펜스 연극.

미스타 노는 <떠도는 땅>에서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주인공이다. 그는 장례식을 마치고 아버지 땅을 팔아 빚을 갚으려한다. 이제 남은 하룻밤만 잘 보내면 빚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미스테리한 미스터 리가 장례식장에 나타나고, 미스타 노는 점점 풀어낼 수 없는 미궁의 시간으로 빠져든다. 아내 미쎄쓰 노는 회사 동료 김대리와 불륜을 저지르고, 미스타 노의 첫사랑 영지는 생활고로 폐인이 되어 나타난다. 빈 벌판엔 밤새 연쇄살인범이 나타나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고, 동네 노인들이 키우던 닭들은 회사부도로 수만 마리가 떼죽음을 당한다. 자신의 죽음을 확신하지 못하는 노영감 귀신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데… 불길하고 뜨거운 밤공기와 함께 벌어지는 사건들이 점점 갈피를 못 잡는 미스타 노를 공격한다.



무거웠던 분위기를 그나마 환기시켜주는 여러 요소들이 극 중에 녹아있었습니다.
불륜, 과거의 첫사랑 등과  같은 요소가 유쾌하게만 풀렸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작가가 더욱 더 많은 것을 담아내고 싶어한 다는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했지만 연극이라는 한계상
이해하는데는 조금 어려움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가볍지 않고, 계속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었습니다.


대표_떠도는 땅_미스타 노와 가면들1.jpg
 

극의 시작과 동시에 나타나는 저 가면을 쓴 배우들의 역할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미스터 노가 약을 먹고 환각을 보는 듯한 장면에서 이 셋이 등장하는데,
아주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강렬하고 깊게 각인이 된 것 같습니다.
환각상태로 추정되는 상태이긴 하지만 그들의 대사와 행동이
다소 난해하고 어려웠지만 극중에서 큰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전쟁에서 죽은 자들의 원혼처럼 표현된 그들은
비틀림과 처절함을 연기하는데 있어 부족한 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또 황망함과 절망의 무게를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된 미스터 노의 연기 역시 일품이었습니다.
어려운 내용의 연극을 보는 내내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이 연신 터져나왔을 정도였습니다.


대표_떠도는 땅_미스타 노와 가면들2.jpg
 

극의 주인공인 미스터 노는 아버지의 땅을 팔아 빚을 갚으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문상을 온 이상한 남자 미스터 리를 만나면서
아주 이상하고 깊은 밤을 맞아합니다.
후배인 줄 알았던 미스터 리는 다른 사람의 조문객이었는데
동명이인이라 잘못 찾아온 조문객이지만 미스터 리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유혹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송장이 사라지고, 동네에는 연쇄살인 범이 나돈다는 소문이 돕니다.

미스터 리는 과거의 첫사랑과 조우하게 되지만
생활고에 피폐해진 그녀의 모습과, 자신의 처지에 나무들 사이로 숨어버립니다.
그 때 우연히 미스터 리와 그녀가 마주치고 그녀는 미스터 리를 미스터 노로 오해합니다.
미스터 리가 그녀를 유혹하는 것을 봤지만
미스터 노는 그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자신인 척 그녀를 데려가는 것을 묵인해줍니다.
물질에 져버린 현대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미스터 노가 한 가지 모르는 것은
미스터 리는 살인자로 그녀를 죽이기 위해 유혹했던 것 입니다.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녀를 살해하는 것 같은 그림자와
마지막에 그녀의 어울리지 않는 빨간 구두를 가지고 사라지는
미스터 리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게다가 후반부에 나오는 살인자에 관한 내용 중
무거운 짐가방에 죽인 사람들의 신발을 넣어가지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자
미스터 리가 살인자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소품을 잘 활용한 것 같습니다.


떠도는 땅_김대리와 미쎄스노.jpg


미스터 노의 아내와 그녀의 불륜 상대인 대리의 연기 역시 일품이었습니다.
아내는 생활고에 지쳐 새로운 자극적인 사랑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미스터 노의 아버지의 노여움을 무서워했습니다.
낭만과 현실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녀의 모습이 뭇내 안타까우면서도 소름이 끼쳤습니다.
대리는 불륜남의 역할도 적절히 소화해냈지만
귀신을 보는 사람이라는 캐릭터를 너무도 잘 소화했습니다.
연신 자신의 뒷머리를 만지고, 까뒤집어지는 목소리로 낄낄대는 그는
파괴적이고, 거칠 것이 없어보였습니다.

비록 무거운 내용이라 해석이 난해했지만
각자의 역할에 맞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완전히 내용을 숙지했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각자 나름대로의 해석을 붙여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볍게 보는 연극 뿐 아니라
이렇게 송곳처럼 찌르고 들어오는 연극 역시 문화생활에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캐스팅.jpg
 

정말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주 돋보였던 작품인 것 같습니다.
탄탄한 발성과 연기력이 인상깊게 남았고,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 했건 것 같지만
그만큼 생각하고 해석할 여지가 풍부했던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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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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