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 읊어주던 나의 선생님들 [문학]

변하지 않는 진실로 그대 곁에 머물고 싶네.
글 입력 2016.02.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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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읊어주던 나의 선생님들


모두들 각자의 마음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미소가 지어지는 은사님 혹은 선생님 한 분쯤은 있을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이든, 학원 선생님이든, 아니면 피아노 선생님이든 분야는 상관없이 무언가를 배웠거나 배울 점이 있는 분들은 모두 제게 선생님입니다. 얼마 전 핸드폰 주소록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선생님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긴 배움의 시간 동안 참 좋은 분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시를 소개해주시고 읊어주시던 선생님들과 그들이 들려준 ‘’에 대해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 때의 기억과 감정은 희미해졌지만 괜찮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시’는 기록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변했지만 ‘시’는 그대로입니다. 좋은 작품은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와 깨닫는 바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접할 때마다 달라지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발견하는 것도 작품을 읽는 것의 큰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 1. ‘어제’ - 박정대 ; 언어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시 한 편]

시인 박정대 출처 네이버 인물검색.PNG
시인 박정대 
(출처 - 네이버 인물검색) 


어제는 네 편지가 오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적막한 우편함을 쳐다보다가 이내 내 삶이 쓸쓸해져서, <복사꽃 비 오듯 흩날리는데, 그대에게 권하노니 종일 취하라, 劉伶도 죽으면 마실 수 없는 술이거니!>, 李賀의 <將進酒>를 중얼거리다가 끝내 술을 마셨다, 한때 아픈 몸이야 술기운으로 다스리겠지만, 오래 아플 것 같은 마음에는 끝내 비가 내린다
 
어제는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환청에 시달리다 골방을 뛰쳐나가면 바람에 가랑잎 흩어지는 소리가, 자꾸만 부서지려는 내 마음의 한 자락 낙엽 같아 무척 쓸쓸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면 메마른 가슴에선 자꾸만 먼지가 일고, 먼지 자욱한 세상에서 너를 향해 부르는 내 노래는 자꾸만 비틀거리며 넘어지려고 한다
 
어제는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슬펐다, 네가 너무나 보고 싶어 언덕 끝에 오르면 가파른 생의 절벽 아래로는 파도들의 음악만이 푸르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 푸른 음악의 한가운데로 별똥별들이 하얗게 떨어지고, 메마른 섬 같은 가을도 함께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정신을 가다듬고 내 낡은 기타를 매만질 때, 너는 서러운 악보처럼 내 앞에서 망연히 펄럭이고 있었다
 
어제는 너무 심심해 오래된 항아리 위에 화분을 올려놓으며, 우리의 사랑도 이렇게 포개어져 오래도록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우젓 장수가 지나가든 말든, 우리의 생이 마냥 게으르고 평화로울 수 있는, 일요일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두툼한 외투를 껴입고 밤새도록 몇 편의 글을 썼다, 추운 바람이 몇 번씩 창문을 두드리다 갔지만 너를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속 톱밥 난로에 불이 지펴졌다, 톱밥이 불꽃이 되어 한 생애를 사르듯, 우리의 生도 언젠가 별들이 가져가겠지만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나는 불멸이 아니라 오래도록 너의 음악이다

 

언어선생님께서는 항상 교과서나 문제집에 나오지 않은 소설과 시를 학생들에게 소개해주곤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글을 잘 쓰셨고 또한 달변가이셨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한 번은 학생들에게 창작시 한 편을 지어오라는 과제를 내주셨는데, 그 때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시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셨던 시 중 저는 박정대의 ‘어제’라는 시가 좋았습니다. 그 중 저는 아래에 소개된 부분을 가장 좋아합니다.
 
어제는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슬펐다, 네가 너무나 보고 싶어 언덕 끝에 오르면 가파른 생의 절벽 아래로는 파도들의 음악만이 푸르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 푸른 음악의 한가운데로 별똥별들이 하얗게 떨어지고, 메마른 섬 같은 가을도 함께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정신을 가다듬고 내 낡은 기타를 매만질 때, 너는 서러운 악보처럼 내 앞에서 망연히 펄럭이고 있었다
 
어제는 두툼한 외투를 껴입고 밤새도록 몇 편의 글을 썼다, 추운 바람이 몇 번씩 창문을 두드리다 갔지만 너를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속 톱밥 난로에 불이 지펴졌다, 톱밥이 불꽃이 되어 한 생애를 사르듯, 우리의 生도 언젠가 별들이 가져가겠지만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나는 불멸이 아니라 오래도록 너의 음악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언덕 끝에 올라갔는데 여전히사랑하는 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때의 마음속은 메마른 섬 같은 가을이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갈증이 납니다. 마라톤 선수가 결승점을 향해 뛰어가는데 자신이 어디쯤에 와있는지 가늠할 수도 없고, 결승점에 언제 도착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으며, 설상가상으로 목은 타들어가는 그런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결승점에 도달했을 때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면 내 안에서 한 편의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됩니다. 나는 지휘자이자 연주자가 되며 이 음악은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무대입니다. 파도들의 음악이 출렁이며 음악의 가운데로 별똥별들도 떨어집니다. 별똥별을 바라보며 사랑을 이루게 해달라던 소원들도 선율에 버무려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현실을 돌아보니 완벽히 연주할 수 없는 어려운 악보처럼 그 혹은 그녀가 내 앞에 서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을 살펴봅시다.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사랑이 변치 않더라도 그 사랑을 하는 주체나 객체가 사라진다면 사랑도 불완전한 상태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당신의 음악으로 남겠다는 말은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만들어줍니다. 그 혹은 그녀가 생각날 때 음악을 들으며 사랑했던 이를 추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도 떠올리면 아름답고 행복한 한 편의 시 혹은 한 곡의 노래가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 2. ‘만일’ - 러디어드 키플링 ; 영어 작문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시 한 편]
 
세계문학사 작은 사전.PNG
시인 러디어드 키플링
(출처 - 네이버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만일 네가 모든 걸 잃었고 모두가 너를 비난할 때
너 자신이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체하지 않고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네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너의 전 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몸을 굽히고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한번쯤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가슴과 어깨와 머리가 널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해도
강한 의지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만일 군중과 이야기하면서도 너 자신의 덕을 지킬 수 있고
왕과 함께 걸으면서도 상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적이든 친구든 너를 해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되
그들로 하여금
너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영어작문선생님께서는 항상 학생들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려 노력하셨고, 우리가 보지 못하고 접하지 못했던 것들을 접하게끔 도와주셨습니다. 가끔 독립영화를 보여주시기도 하고 자신이 녹음한 자작곡을 들려주기도 하는 등 학생들 저마다 선생님을 대하는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였지만 저는 이런 영어작문선생님을 좋아했고 동경했습니다.
 
어느 날은 영국 출생인 러디어드 키플링 작가의 영시를 소개해주셨는데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고 그것을 수첩에 적은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외우곤 했습니다. 키플링이 제국주의적인 사상으로 인해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그의 사상을 떠나서 저는 이 시를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편지에 이 시를 적어 보내 주기도 했고 지금도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때 가끔 꺼내 읽고 마음을 다잡고는 합니다.
 
만일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체하지 않고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다면,
 
하염없이 마냥 기다리는 것과, 목표를 향해 확신을 갖고 기다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저는 극소수의 천재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능력과 재능이 비슷하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얼마나 참을성 있게 기다렸느냐가 그 사람이 이루고자 한 바의 성패를 가른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만일’이라는 시에서는 ‘너무 선한 체하지 않고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말라’는 식으로 말을 건넵니다. 이 대목에서 ‘어느 9세기 왕의 충고’라는 잠언시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너무 똑똑하면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걸 기대할 것이다. 너무 어리석으면 사람들이 속이려 할 것이다. 너무 거만하면 까다로운 사람으로 여길 것이고 너무 겸손하면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러디어드 키플링이 말하고자 한 바도 다음과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만약에 누군가의 선생님 혹은 배움을 전하는 사람이 된다면 저는 제가 좋아하는 시 중 하나인 '칼린 지브란’의 ‘나 그대에게’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마음 속에 이런 시 한 편을 갖고 계신다면 어떨까요.


[ 3. '나 그대에게' - 칼린 지브란 ; 내가 들려주고 싶은 시 한 편]

칼릴 지브란.PNG
 시인 칼릴 지브란
(출처 - 네이버 인물검색)


아름다운 이름이고 싶네.
차가운 바람 속에 그대 서 있을 때라도
그대 마음 따뜻하게 채워드릴 수 있는
그대의 사림이 되고 싶네.

우리 서로에게 어려운 사람이길
바라지 않는 까닭에
그대 말하지 않는 부분의 아픔까지도
따뜻이 안아드릴 수 있다면 좋겠네.

그대 잠드는 마지막 순간이나
그대 눈을 뜨는 시간 맨 처음에
문득 그대가 부르는 이름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 서로의 가슴 안에
가장 편안하고 가까운 이름이 되어
변하지 않는 진실한 이름이 되어
변하지 않는 진실로 
그대 곁에 머물고 싶네.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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