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흐의 생애를 미디어 아트로 느껴보다 - 반 고흐 인사이드전 [다원예술]

글 입력 2016.02.1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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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 서울284에서 열린 반 고흐 인사이드전에 다녀왔다. 

페이스북에서 홍보 게시물을 본 뒤 매우 가고 싶어했던 전시회였다. 미디어아트 전시란 게 좀 생소하긴 했지만, 시각적으로 화려한 게 왠지 볼만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전에 고흐의 생애에 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이걸 어떻게 구현해냈을지 관심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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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구입하고 들어서자마자 그림들이 영상으로 펼쳐진다. 사방에서 각각 다른 그림들이 펼쳐지고 움직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전시를 위한 음악이 재생되는데, 덕분에 새로운 분위기가 환기된다. 1전시실에서는 고흐의 화가 인생 중에서도 초창기를 담아내고 있다. 당시 파리는 근대화를 맞이하면서 인상주의가 태동하고 있었다. 도시의 인상주의 물결 안에서 모네와 르누아르, 드가 등의 화가들이 등장했다. 이에 반해 고흐는 네덜란드 시골 작은 마을에 머무르고 있었고, 이러한 움직임을 알지도 못했다. 고흐는 성격상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지도 못했고 일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그런 고흐의 작품 생활 동안 힘이 되어준 건 남동생 테오였다. 테오는 고흐에게 경제적 후원을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계속 편지를 주고받으며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보면 고흐의 생애를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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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고 있던 고흐는 빈민층과 노동계층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대표작이 <감자 먹는 사람들>인데, 도시 화가들에 비해 고흐의 그림은 촌뜨기 취급을 받기만 했다. 

1전시실에는 고흐의 초창기 그림뿐만 아니라 당시 파리에서 유행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도 나온다. 모두가 한 번쯤 보았을 법한 모네의 <인상 : 해돋이>나 <양산을 든 여인>, 르누아르의 밝고 명랑한 <물랭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같은 그림들도 나온다. 이렇게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보니 당시 어떤 사조와 그림이 성행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고흐의 그림이 얼마나 다른 길을 가고 있었는지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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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시실에는 고흐가 파리로 간 뒤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인상파를 접하고 난 뒤 고흐가 한 생각들, 인상주의 화풍과 신인상파의 점묘법을 받아들인 고흐, 일본 미술에 눈 뜨고 난 뒤 풍부한 채색풍 변한 그림들, 그리고 고흐의 방탕한 도시 생활에 대해 나온다. 영상 초반에는 쇠라 같은 점묘법 화가들의 그림이 나오며 고흐가 매우 심취했던 일본 미술도 등장한다. 그리고 인상주의 그림에 대한 고흐의 첫 생각, 파리에서의 힘든 삶의 고백이 짤막한 문구들로 지나간다. 

보통 전시회장처럼 뻥 뚫린 사각 공간이 아니라 중간에 기둥도 있고 의자에 앉아 감상도 할 수 있었다. 역 안의 벽을 잘 활용했다고 생각했는데, 벽 사방에 그림을 비춰 보여준다. 큰 공간에 울려퍼지는 음악과 함께 그림을 감상하다보니, 다른 전시회장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그 기분을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미디어아트라서 새로웠던 것도 있겠지만, 역이라는 독특한 공간에 있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감상을 할수록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화려한 색채의 영상이 나올 때면 전시 공간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왠지 황홀하기도 했고,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를 때도 있었다. 나는 점점 고흐에게 감정이입하게 되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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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일본 같은 곳을 꿈꾸며 아를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고흐의 상징인 농도 짙은 노란색과 코발트 블루가 탄생한다. 파리에서 방황하던 고흐는 아를에서 그만의 개성적인 화풍을 완성한다. 그리고 풍경화보단 인물화에 몰두하기 시작하며 고갱과의 만남 후 이별, 그리고 정신병원 입원까지,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갈수록 고흐는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렸고 그의 소용돌이 치는 내면은 강한 붓터치와 곡선으로 나타나게 된다. 평온한 정신병원에서 어느 때보다도 감정이 격렬해진 고흐는 그의 요동치는 내면을 <별이 빛나는 밤에>나 <붓꽃> 같은 명작들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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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미친 듯이 그려보고 치료를 받아보아도 불안한 심리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고흐는 오베르의 푸른 밀밭에서 생을 마감한다. 고흐가 테오에게 부치지 못한 마지막 편지에 이렇게 써있다. “나는 그림에 내 생명을 걸었다”고. 

그는 “고통은 영원하다”는 말을 남겼듯,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고통스러워했다. 네 개의 전시실에 거쳐 고흐의 생애를 간략하게 짚어보았고 그의 그림 변화를 지켜보았지만 결국 그 종착지는 죽음이었다. 이 마지막 전시실에서 고흐의 죽음을 접하고 난 뒤 안타까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전시를 보며 고흐의 인생을 차례차례 따라간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결말이 고통스러운 죽음이라 그런지, 나도 조금 절망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림이 미디어아트로 생생히 재현된 데다가 음악이 고흐의 생애와 걸맞게 작곡됐기 때문인지, 괜히 더 감정이입 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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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구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마 고흐는 비정상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을 테지만, 애초에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일까? 
 

마지막 전시실을 빠져나오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반 고흐 인사이드전에 대한 평을 한 마디로 하자면, 오랜만에 좋은 전시회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미디어아트가 신기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내가 이 전시회의 음악을 매우 좋아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무튼 역이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이 미디어아트 전시를 접해보면, 그림을 보거나 글로 읽는 것보다 더 다감각적으로 고흐를 느낄 수 있다는 걸 알 것이다.   (나는 음악은 감정이입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포틀래치라는 작곡가가 이 전시회의 음악을 따로 작곡한 걸로 보인다.) 그리고 고흐를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난 뒤 오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고흐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전시회였다. 물론 관심이 없었더라도 전시를 보다보면 고흐가 안타까워져서 조금이나마 흥미가 생기겠지만.    


[이해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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