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역사가 정치를 경계할 때 ‘달빛 안갯길’

글 입력 2016.02.1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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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안갯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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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비추는 안갯길이라니?’ 자욱한 안개가 눈 앞에 그려졌다. 그 안개를 뚫고 가느다란 달빛이 비출 수 있는 것일까? 상상이 안갔다. 연극제목에서 ‘달빛’과 ‘안개’가 이 연극의 핵심이 아닐까 하는 추리를 했던 것이다. 내 예상은 틀렸다. 이 연극의 방점은 ‘길’에 찍혀야 했다. 비스듬히 경사가 진 채로 꾸며진 무대에 난 5개의 길. 그 길이 바로 이 연극의 핵심이었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길을 걷는다. 그 길의 교차점인 부석사를 배경으로 8명의 인물은 마주하게 된다. 이 만남에서 저마다 걸어가던 길은 뒤틀리기도, 함께 걸을 든든함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 연극은 상당시간을 들여 ‘튀틀린 길’을 보여준다. 촉망받는 조선인 사학자 이선균과의 갈등양상을 통해 말이다. 첫 번째 갈등은 이선균은 민갑완과 갑완의 외삼촌인 이기현과 갈등이다. 이성과 합리성으로 객관적 사실로 판단하는 지식인 이선균의 눈에는 검증되지 않는 신화, 설화는 역사적 사실에서 배제되어야 할 대상이다. 반면 이기현은 신화, 설화가 만들어진 배경을 추론하는 것 역시 역사가 분석해야 할 대상이 아니냐고 맞선다. 그리곤 혼란스러운 선균의 손에 단군신화가 쓰여져 있는 ‘고기’를 전해준다. “일본이 모두 없애버려서 이젠 남아있지 않은 단군의 마지막 기록”이란 말과 함께. 이 책을 분석한 이선균은 사료로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곤 소카치에게 알린다. 이 이후부터 두 번째 갈등은 터져나온다. 조선을 식민지화 하려는 일본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객관적 사실이 선별되고,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사실들은 폐기되는 것을 목도한 선균은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역사는 특정 목적에 의해 이용되선 안돼’ 


<줄거리>

영친왕의 약혼녀였으나 일본에 의해 강제 파약 되고 다른 이와의 혼인을 강요받고 있던 민갑완은 외삼촌 이기현과 함께 부석사로 오게 된다. 민갑완의 기분 전환을 위함이라 총독부에 이야기 하였지만, 사실 그들은 상해로의 망명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석사에서도 여전히 일본의 앞잡이 송씨로부터의 감시는 계속 되고 있고, 마침 부석사에서는 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찬위에 의한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발굴 작업 중 무량수전 앞에 선묘의 전설과 같이 석룡 (石龍)이 발견 되고, 조선인 인부들이 모두 도망가는 바람에 발굴 작업은 중단이 된다. 그로 인해 천 년간 잠들어 있던 선묘가 깨어나고, 천 년간의 시간을 모른 채 의상 대사를 만나러 민갑완이 머물고 있는 조사당으로 찾아간다. 이후 선묘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곳을 지키고 있던 아랑을 통해 그 동안의 일들을 듣게 된다. 
일본인 사학자 소키치와 함께 조선인 청년 이선규는 발굴 작업 일로 부석사에 오게 되고, 그러던 중 사소한 오해로 이기현과 충돌하게 된다. 이기현과의 만남을 통해 조선인 이선규는 지금까지 일본에게서 교육 받아 온 역사관이 흔들리게 되는데...



이 연극에 아쉬운 한 가지는, 대부분의 분량을 ‘뒤틀린 길’에 할애한 것이다. 튀틀려 버린 길 끝에서 다시 만난 이선균, 선묘, 아랑, 이기현은 민갑완의 상해 망명길을 돕는다. 함께 걷는 길을 시작한 이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작은 비중이지만, 배우들의 압축적이고도 탄탄한 연기력이 아쉬움을 커버한다. 안갯길이 자욱한 가운데 떠나는 그 길 아래 선묘의 축복이 달빛처럼 반짝인다. 한 편의 전래동화가 눈 앞에서 그려지는 듯한 길이 무대에 놓인다. 5개의 길. 그 길 중 어딘가로 민갑완은 떠났고, 이선규는 일본으로 떠나지 않고 조선에 남았다. 

2017년 3월부터 학생들은 ‘국가’가 집필한 ‘단일한’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게 됐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인물이 바로 연극<달빛안갯길> 속 이선균이다. 선균이 일본에서 유학하는 동안 일본에 의해 추려진 역사적 사실만을 알고, 습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균은, 연극 <달빛안갯길>은 분명하게 말한다. ‘역사는 특정 목적에 의해서 이용되선 안돼’라고,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걷는 이 길에 안개가 드리운 것은 아닐까. 가느다란 달빛 한 줌이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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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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