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생명이 넘쳐나는 수중 미술관 [시각예술]

바다를 사랑한 예술가, 제이슨 디케리스 테일러
글 입력 2016.02.06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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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사랑한 예술가
제이슨 디케리스 테일러

 



술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기 작품이 유명한 미술관에 걸리기를 꿈 꾼다. 
하지만 조각가 제이슨 디케리스 테일러(Jason deCaires Taylor)는 
그의 작품을 바다 깊은 곳으로 의도적으로 내던져 수몰시켰다. 
바다 속은 수장(水葬)된 조각상들의 무덤이 되었다.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자연이 무덤을 새 생명을 위한 요람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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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ccisitudes
Depth 5m, Grenada, West Indies


바다, 그리고 예술

소년은 바다를 사랑했다. 제이슨은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을 말레이시아에서 보냈다. 
때문에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며 물 속을 관찰하는 일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후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 대학에서 예술을 공부하고 졸업 후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스쿠버 다이빙 강사, 무대 연출가, 짧지만 파파라치도 했었다.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러 경험을 쌓았지만 무엇인가 부족했다. 
해소되지 않은 예술적인 열망이 그 안에서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그가 오랫동안 꿈꿨던 ‘바다’에 답이 있음을 깨달았다.


 "내 열정은 스쿠버 다이빙을 가르치는데 있지 않았어요.
바다를 위한 예술작품을 창조하는데 있었던 거죠."


바다를 향한 순수한 열정과 예술적 갈증이 만나는 순간, 창조의 불꽃이 터졌다. 
그렇게 바다는 자신의 깊은 곳을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전시 공간으로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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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Rubicon 
Depth 14m, Museo Atlantico, Lanzarote, Spain





최고의 전시공간


10년전, 해양 생물학자와 지역의 다이빙 센터와 힘을 합쳐 진행한 프로젝트가 첫 시작이었다.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발 한 발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었고, 그렇게 첫 조각품인 “길 잃은 특파원(The Lost Correspondent)”을 그레나다 연안에 가라앉혔다. 놀랍게도, 결과는 기대 그 이상이었다. 조각상의 모습이 변한 것이다. 제이슨의 손을 벗어난 조각상은 바다라는 새로운 예술가의 손길로 재창조 되었다. 조촐한 시작, 하나의 조각은 두 개가 되었고 두 개는 순식간에 26개가 되었다. 어느새 세계 최초의 수중 조각공원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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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ost Correspondent
Depth 8m, Grenada, West Indies


“바다는 예술가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전시장입니다.
시시각각 바뀌는 멋진 조명이 빛을 비추고, 
물속에서 모래가 폭발하면서 생긴 신비로운 모래 구름이 조각상을 덮습니다.
유일무이하면서도 영원한 모습이죠. 

또한 호기심 많은 손님들이(각종 해양 생물들)이 줄지어 방문함으로써
수중 박물관에 특별한 손길을 더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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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ght


생명을 살리는 예술


독특하고 보기 좋은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었다. 조각상은 환경파괴로 사라져가는 바다 생물들을 위한 새로운 집이 되었다. 중성 시멘트를 재료로 사용해 바다 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었다. 조각상의 표면이 산호충이 달라붙을 수 있는 질감으로 되어있어 산호가 자랄 수 있는 인공암초 역할을 하고, 이로써 새로운 산호초가 형성되는 원리이다. 산호가 형성된 조각상은 다양한 해양 생물을 끌어들였다. 각종 물고기와 바닷가재, 성게 같은 갑각류가 먹이를 구하고 몸을 숨길 수 있는 좋은 서식처가 생겼다. 지구 온난화로 그 수가 급감한 산호초를 보호하고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과 물고기들이 몰려들지 않도록 해서, 자연 암초가 받는 부담도 줄였다. 

그가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의 조각상을 바다 밑으로 가라앉히는 것은 온갖 중장비를 총동원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8톤짜리 조각상을 해저에 내려놓기 위해 30m짜리 기중기 아래에 있어야 할때면 '그냥 수채화나 그릴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우스겟 소리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 바다는 가장 매력적인 존재이자 지켜야 할 더없이 소중한 연인이다. 그의 예술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수 많은 바다 생물을 살리고 보호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었다. 타임즈, 내셔널 지오그래픽같은 각종 해외 언론에서 그의 작품에 주목하고 찬사를 보내는 것도 그것이 단순한 예술 작품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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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rdener
Depth 5m, MUSA Collection, Punta Nizuc, Mexico.


소멸과 생성, 찰나와 영원, 모순을 담다


그는 조각상에 현대 사회의 인간상을 담고자했다. 타성에 찌들어 버린 무기력한 자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개인중심주의의 바다 속에서 침몰되어가는 개개인이 그것이다. 또한 제이슨의 작품은 영원 불멸을 추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유한하다는 자연의 섭리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물 속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그러나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자연은 그 품으로 다시 데려가  소생시킨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현대 문명과 낯선 해저 세계가 만나는 순간, 모든 것은 완전히 변한다. 소멸과 동시에 영원으로 향하는 새로운 문이 열린다.


“조각상을 바닷속으로 가라앉히는 순간부터 조각상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가라앉히는 순간부터 바다의 것이 되니까요. 새로운 암초가 형성되면서 
정말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그 세상은 저를 끊임없이 놀라게 하죠. 
진부한 말이겠지만 사람이 만든 그 어떤 것도 자연의 상상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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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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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ertia
Depth 5m, MUSA Collection, Punta Nizuc, Mexico.


바다는 신성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바다는 평탄하고 거대한 존재이다. 한 없이 넘실거리는 파도와 지평선 너머의 무한한 세계를 보고 있자면, 바다는 그저 모든 것을 수용하고 영원토록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바다를 제대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바다생태계는 지구온난화, 환경오염, 남획 등으로 붕괴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지난 몇 십년간,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 탄소를 바다가 흡수하면서 지구상 산호의 40%가 사라졌다. 이 추세로라면 2050년까지 80%가 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 보고 있다. 지구 전체 바다에서 산호초가 차지하는 면적은 0.1퍼센트도 안 되지만, 해양 생물의 1/4이 이곳에서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는 우리가 신성하게 여기는 모든 것과 같이 바다도 신성하게 여기고 보호해야 함을 외친다. "Our Ocean is sacred" 이 말로 강의를 끝맺는 그에게 바다는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신성한 존재이다.


“우리는 히말라야, 파밀리아 대성당,
심지어 모나리자를 보면 그것들을 ‘신성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소중히 간직하고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죠. 
누군가 그랜드 캐니언 아래에 7성급 호텔을 짓고 싶어 한다면
모두가 그를 비웃으면서 쫓아낼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 바다를 준설하고 물고기를 남획하고 오염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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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on fire
Depth 8m, MUSA Collection, Cancun/Isla Mujeres, Mexico.


전혀 다른 두 열정이 만난다면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고민한다. 제이슨도 그랬다. 좋아하는 것은 있었지만 동일선상에 두고 보기 힘든 것이었다. 바다와 예술, 이 둘은 서로 관련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전혀 다른 두 열정이 만나는 바로 그 곳에서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자 스스로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해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열정을 불태우고 싶다면, 기억과 경험을 천천히 더듬어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찾고, 그것간의 새로운 접점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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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son deCaires Taylor


“크고 깊게 생각합시다. 
우리의 상상력과 의지가 우릴 어디로 데려갈 지 어떻게 아나요? 
저는 우리가 이렇게 바다에 예술을 가져옴으로써, 놀라운 창의성과 
바다의 배경이 주는 시각적 효과를 이용하는 것만을 바라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바다에게 무언가를 돌려주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생태 환경이 풍성히 생겨나는 것을 돕고, 
바다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새롭게 열고자 합니다. 
이 새로운 관점은, 어쩌면 아주 오래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다를 연약하고 소중하며 보호가 필요한 장소로 여기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진 출처 및 내용 참고



[윤정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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