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간을 그리다 [시각예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
글 입력 2016.02.0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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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만 느껴졌던 새 해의 1월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덧 그 뒤를 이어 2월이 찾아왔다. 장이 넘어간 달력을 들여다본다. 2016년을 맞닥뜨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 당혹스러운 기분이 든다. 새 달을 맞이했기 때문일까 들뜨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곧 다가올 봄을 어렴풋이 그려보며 설렘에 젖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만 가고, 멈출 수도, 가둘 수도, 잡을 수도 없다는 사실에 때때로 무기력해지고 마는 것이다.

달력으로 시간을 가둘 수는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달력을 찢어낸다고 시간이 찢겨지진 않는다. 시간은 언제까지고 계속 흘러만 갈 뿐, 달력은 결국 그 흘러가는 시간에 얼핏 옷 같은 것들만을 걸쳐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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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보면 시간이라는 개념은 참 독특한 속성을 여럿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분명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모두 항상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의 맥락에서 거론되듯 시간은 항상 절대적이진 않다. 각 개인에게 같은 모양으로, 때로는 다른 모양으로 받아들여진다. 시간은 또한 개인의 경험과 삶에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내가 느끼는 시간이란 소나무처럼 그저 늘 푸르다. 내게 봄이 와 꽃이 피든 가을이 들어 낙엽이 지든, 시간은 봄과 가을을 내게 던져주고는 저 홀로 항상 푸르르다. 가끔씩은 나를 남겨두고 흘러가는 것만 같아 매정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시간은 형태가 없어 표현하는 데에 한계를 느낀다. 그렇다면 시야에 담을 수 없는 것들까지 시각적으로 풀어내야 하는 시각예술계의 작가들은 시간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려 할까. 오늘은 작가들이 시간을 어떻게 평면에 담아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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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직접 보고 만질 수는 없어도, 시간은 다른 형태로 증명될 수 있다. 해가 뜨고 지는 하루 안에는 반드시 시간에 따라 다양한 빛의 형태가 존재한다. 빛의 형태와 색깔이 변화하는 것이다. 연작 형식으로 시간의 흐름을 화폭에 표현한 작가가 있다. 인상주의 화풍을 이끌었던 화가 '클로드 모네'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루앙 대성당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같은 대상이라 하더라도 이를 그린 계절이나 시간, 기후 상태에 따라 대상이 보여주는 이미지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모네 이전의 서양미술계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모네는 그림을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자의 '사실적'이라는 의미가 시간과 공간을 전제하지 않은 일반론적인 것이라면, 후자의 '보이는 대로'라는 의미는 화가가 대상을 보는 바로 그 순간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마주친 모습을 의미한다. 모네는 화폭에 자신이 보고 있는 순간의 시간과 공간을 담기 원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짧은 시간 내에 마무리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이전 시기의 작품에 비해 거친 효과가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상주의의 등장 이후 현대로 건너온다면, 독특하게 표현된 시간의 여러 형태를 초현실주의의 세계 안에서 목격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는 기본적으로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과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한다. 초현실주의는 그 때까지 드물게만 등장해왔던 무의식이라는 주제에 집중한 미술 사조이다. 억압되어있던 무의식의 세계를 최대한 진솔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초현실주의의 여러 시도는 불가사의한 것, 비합리적인 것, 우연한 것 등을 화폭에 낳게 되었다. 초현실주의의 연장선상 안에서 시간이란 개념은 작가들에게 흥미로운 주제였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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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난로를 뚫고 어디론가 향하는 증기기관차. 위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못 박힌 시간'이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두 대상의 결합은 관람자로 하여금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이 풍경에 관람자는 그 어떤 기이함과, 신비로움까지 느끼게 된다. 벽난로에서 기차가 나오는 풍경을 보고 의미를 찾지 못해 슬퍼할 필요는 없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저 풍경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저 세계는 그저 말 그대로 이성의 영역에서 벗어난 무의식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그 무의식의 세계를 관통하는 시간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시계와 벽난로를 포함한 정적인 공간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증기기관차의 운동성. 열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의 형태는 기차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임과 동시에 관람자로 하여금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기차의 움직임과 증기의 형태는 화폭 속에서 더이상 움직일 수 없는 존재이고, 그와 동시에 화폭 속의 시간도 절묘하게 정지해 버린다. 정적인 공간과 한 대상이 지닌 운동성의 역설을 통해, 시간이 존재함과 또한 그것의 움직임과 정지를 표현한 것이다. 제목에 얽힌 일화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일반적으로 '못 박힌 시간'으로 번역되어 알려졌지만 사실 마그리트는 이 제목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너무 축약적이었기 때문이다. 원제의 뜻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단검과 같은 날카로운 물체에 의해 꿰뚫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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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많은 사람들의 눈에 익숙하게 남아있는 작품일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 중 하나인 '기역의 영속성', 혹은 '기억의 집요함'으로도 불리는 작품이다. 그 옆의 작품은 '첫 폭발 순간의 부드러운 시계'로, 이 역시 마찬가지로 달리의 작품이다.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묘사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얼음이 녹아 물이 된 듯 흐물거리며 녹아내리고 있는 시계의 모습이다. 두 작품을 각각 전체적으로 봤을 때 담고 있는 주제는 다르지만, 달리의 작품 안에서 저 부드러운 형태의 시계는 시간에 대한 강한 상징성을 담고 있다. 

달리는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시계의 이미지를 녹아내린 치즈를 보며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시계란 마땅히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통찰이 엿보인다. 시계는 시간을 담아내는 기계이지만, 시계는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나 정작 시계가 표현해내는 시간이라는 개념은 그렇지 못하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형태를 물리적인 형태를 지닌 시계의 모습을 빌려 역설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상대성 이론에 매료되었던 달리는 시계는 딱딱할지 모르나 시간은 유연한 것이라는 사실을 표현하려 했다. 또한 '기억의 영속성' 속의 늘어진 시계는 시간을 재는 시계가 현실 세계 속에서는 고유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실제적으로는 오직 기억 속에만 작용하는 것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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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품의 경우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시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카메라의 속성 때문이다. 과거 미술계에 있어서 카메라의 등장은 매우 큰 사건이었다. 카메라는 그림보다 훨씬 그 시간의 '단면'과 풍경의 '순간'을 담아내기 적합했으며 기술이 발전할 수록 점점 더 '사실'을 효과적으로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들의 마음과 손을 거쳐서 결과적으로 그림에 시간이 표현되었다면, 빛과 시간을 담아 현상되는 카메라의 경우엔 과정상으로 시간을 거쳐 사진이 나온다.

위의 사진은 '장태원' 작가의 밤 풍경 시리즈 중 한 사진이다. 그는 2005년경 휴전선 부근의 버려진 공장지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고, 그 이후 더 이상 인간을 위한 곳도, 자연도 아닌 그 곳의 모습에 충격받아 버려진 산업지대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진들을 밤에 최소 45분에서 8시간에 이르는 장노출 방식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낮에는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추지만 밤이 되면 인간이 필요한 곳에만 불이 켜지기 때문에 두 장소의 차이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이 풍경의 이야기를 긴 시간동안 빛을 축적하여 드러내고자 했다.


시간은 무엇일까.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공통의 삶의 배경이자 모든 것들의 원인이다. 시간에 대한 치열한 사고와 표현의 노력은 실제적으로 삶과 시간에 대한 혜안을 심어주기도 하고, 더 다양하고 더 아름다운 예술을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자, 우리 안을 흐르는 무언가이며,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혹은 그렇기에 더더욱 그 정체를 낱낱이 밝혀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마치 삶에 존재하는 공기와 같은 것이라, 손으로 잡아 보고, 형태를 부여해 보고, 시선 안으로 볼 수 있게 끌어당겨오고 싶은 것, '시간'. 때론 당연하고 사소한 시간의 모든 것들이 현실과 상상, 기억을 가로질러 신비롭게 다가온다.





* 자료 출처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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