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디어아트 전시 '반 고흐 인사이드' [시각예술]

반 고흐를 생각하면 항상 귀가 아프다. 귀가 욱신거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글 입력 2016.01.1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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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고흐를 생각하면 항상 귀가 아프다. 귀가 욱신거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가장 큰 사실이 반 고흐의 귀에 얽힌 사건이기 때문이다. 창백한 얼굴, 조금 초췌해보이는 두 눈, 그리고 얼굴 옆에 하얀 붕대를 감은 반 고흐의 초상화. 그를 생각하면 자꾸 그 초상화만 아른거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다. 그의 귀는 알지만 그의 아픔은 알지 못하기에. 초상화 속의 고흐는 알고 있지만 그냥 반 고흐는 오히려 낯설다. 누군가가 내게 그를 알고 있다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알고 있다 대답하겠지만, 그건 과연 정말 알고 있는 걸까? 내 머릿속에서, 그의 마음대로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고흐를 정의해버린 건 아닐까. 이런 내게 고흐를 만나러 갈 기회가 생겼다.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리는 '반 고흐 인사이드'를 관람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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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고흐 인사이드'전시의 부제는 '빛과 음악의 축제'로, 반 고흐가 남긴 여러 명작들을 음악과 함께 재구성하여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든 미디어아트 전시이다. 고흐의 삶에 대해 관심이 가기도 했지만, 이와 동시에 이번 전시는 전시관 구성 자체로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 전시는 구 서울역사의 내부 공간을 큼직하게 활용하여, 대형 스크린과 천 등을 이용해 고흐의 삶과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는 크게 총 4개 관으로 이루어져있다. 당시 미술계의 분위기부터, 사실주의적이었던 고흐의 초기 작품, 그리고 도전적이고 화려했던 파리 시기와 고흐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순서대로 관람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반 고흐의 전시임과 동시에 그 자체로 이미 영상 예술, 공간 예술이 구현되는 전시이다. 반 고흐의 삶이 흘러가면서 전시관 내부의 공간도 같이 흘러간다. 전시장 내부의 공간 구성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무척 흥미로운 전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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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표소를 지나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첫 번째 관, 뉘넨의 또 다른 해돋이. 이 곳에서는 고흐가 그림을 시작한 무렵의 시대 상황과, 고흐의 초기 작품들을 보여준다. 고흐가 태어난 무렵의 19세기 예술계는 자연을 모방하기만 하던 기존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작가의 생각과 마음을 담은 인상주의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고흐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고흐 자신이 지낸 주위 풍경, 농민들, 노동자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었다.

   첫번째 전시관은 전시관 가운데를 중심으로 하여 스크린을 원형으로 위아래에 배치해두었다. 관람객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은 전시관 가운데에 위치해있는데, 그 곳에 앉으면 큰 스크린들이 관람객을 둘러싼 형태가 된다. 스크린들의 크기가 크기도 하고 갯수가 여러개라 한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각기 다른 영상을 투영하되 각 영상의 내용이 이어지도록 구성하여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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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지나 옆으로 이동하면, 중앙홀의 큰 기둥 사이에 마련된 두번째 전시관을 볼 수 있다. 파리의 화창한 어느 날이라는 타이틀로 구성된 이 전시는, 파리로 이주하게 된 무렵의 고흐를 보여준다. 교외의 풍경만을 보고 자랐던 고흐에게 도시의 풍경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어두운 색채가 아니라 밝은 인상주의 색채를 사용하게 되었다. 영상으로 이 시기에 유행했던 점묘법, 일본 판화를 같이 다루는데 그 표현 방식이 상당히 센스있다.

   이전 전시관은 스크린이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었다면, 이 전시부터는 홀 전체가 하나의 스크린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건물 안이 아니라 아예 다른 공간에 온 듯한 느낌. 중앙의 큰 스크린과 양 옆과 위의 공간을 활용하여 중앙홀이 꽉 찬다. 그 곳에 서있다 보면 이 공간은 마치 다른 세계로 분절된 것만 같다. 화려한 색채와 강렬한 붓터치로 담아낸 고흐의 그림들이 양 옆, 그리고 위 아래로 흩어지고 다시 모인다. 고흐가 표현하고자 했던 아름다운 색의 흐름 속에 파묻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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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째 전시관부터는 고흐의 작품 세계가 더욱 깊어진다. 파리에서 생활하며 몸과 정신이 피폐해진 고흐는 아를로 내려간다. 그런 의미에서 붙여진 이 전시관의 제목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리고 이때부터 고흐의 상징적인 색인 노란색과 그 특유의 화풍이 그의 손에서 화려하게 꽃피기 시작했다. 그는 노란집에서 고갱과 함께 살며 작업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갔으나 신경쇠약과 정신적인 문제로 고갱과 갈등을 빚었고, 끝내 자기 귓볼을 잘라내는 소동까지 일으킨다. 이 시기 초반의 전성기적인 작품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적 불안함과 두려움이 담겼던 작품들까지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다.

   고흐의 예술 세계가 강해지고 그의 감정 역시 점차 격정적으로 치달으면서, 그러한 내용을 담은 세번째 전시관의 공간성도 더욱 밀도있어진다. 두번째 전시관은 약간 트인 중앙 홀이었다면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은 밀폐되고 어두운 공간에서 보여지며 각각의 벽면에 영상이 투사된다. 고흐의 삶에 따라 분위기를 달리하는 배경 음악도 더욱 풍성하게 들린다. 그 한가운데에서 서있다보면 바로 곁에 고흐가 와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싼 고흐의 초상화들. 그 사이로 눈을 하나하나 마주하고, 아를에서 고흐가 바라본 삶의 풍경을 같은 시야와 같은 크기로 바라보다 보면 시공간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가 느꼈을 관계적 갈등, 불안감, 초조함, 그 모든 감정이 공간과 소리를 타고 이어져 정말 나 자신과 공명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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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으로 올라가면 마지막 전시관이 있다. 계단을 오르며 생각한다. 끝나지 않았으면. 전시가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고흐의 삶 역시 마지막에 가까워지는 것 아닌가. 네번째 전시관, '오베르의 푸른 밀밭에서' 우리는 고흐의 마지막을 마주하게 된다. 정신분열증이 심해진 고흐는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오베르로 이동하여 지낸다. 그리고 결국 오베르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정신분열증은 이미 심각한 상태였지만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도 그의 손은 오베르의 풍경과 황량한 밀밭을 계속 그려냈었다.

   네번째 전시관은 다른 전시관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다. 가장 큰 공간이고, 탁 트여있는 공간이다. 그 양 옆의 벽과 심지어 온 천장까지도 오베르의 푸른 하늘과 밀밭이 가득하다.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펼쳐지는 하늘에 황홀해하며 당황하다가도, 귓가로 들리는 나직한 음악소리와 저 멀리 날아가는 검은 까마귀 떼를 보며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고흐는 오베르의 밀밭을 어떤 마음을 하고 바라봤을까. 비록 그 곳에 펼쳐진 곳은 고흐가 본 실제 풍경이 아니라 그의 그림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가슴이 미어진다. 그는 오베르의 밀밭을 보았고, 난 이제 여기서 그가 보고 그린 오베르의 밀밭을 본다. 깊어진 푸른색, 탁 트인 풍경, 하지만 그 안에 고흐는 없다. 그가 이 시기에 그려낸 작품만 80점에 이른다고 한다. 갈 곳 잃은 외로움과 불안함을 그는 오로지 그림을 부여잡고 쏟아내었다.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벽에 적혀있었던 그의 한마디 말이 전시관을 나오는 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왔을 무렵엔 한시간 반이 훌쩍 지나가있었다. 이런 스타일의 전시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여러모로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 전시였다. 우선 미디어아트 형식으로 전시가 진행되다보니 그저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그래서 전시 내에서 말해주고자 하는 것들과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에 더욱 빠져들어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을 고스란히, 생생하게 느꼈던 전시로 남는다. 작품을 실제로 볼 때의 생생함과는 약간 길을 달리 하는 생생함이다. 작품을 실제로 보면 그 작품 자체를 집중해서 볼 수 있고, 붓 터치 하나하나, 그리고 온전한 색감을 볼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작가, 그림, 그리고 그가 있었던 풍경속에 내가 들어갈 수 있었던 전시였다. 어떤 대상을 보고 내 지식을 늘리거나 생각을 채웠다기보단, 그의 세계로 들어가 그의 시선으로 그가 느낀 것들을 나도 그저 느꼈다.

   고흐의 삶이 소리, 영상, 그리고 공간을 통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전해진다. 전시임과 동시에 체험이라는 단어를 붙여보고 싶다. 반 고흐 인사이드. 전시를 보고 나와서야 그 뜻이 이해되었다. 전시란 말 그대로 무언가를 보고 오는 것이라지만 이번은 조금 다르다. 아마 그건, 그를 그저 멀직이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속에 잠시 들어갔다 나와보라는 게 아닐까.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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