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이브의 모든 것』 - 명예와 허영, 그리고 인생의 다른 가치들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1.1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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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

개봉년도  :  1950년
감독  :  조셉L맨키위즈
장르  :  드라마
시간  :  138분


사실 나는 <이브의 모든 것>이란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장동건과 채림이 나왔던 똑같은 이름의 옛날 드라마만 알고 있었다. 원래 흑백영화처럼 오래된 영화는 굳이 찾아보지 않는 편인데 높은 평점을 받았길래 호기심으로 보게 되었다. 보고나니, 아무리 오래된 영화라도 좋은 평가를 받는 고전은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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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채닝은 극장가에서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연극 배우로 주변에 친한 멤버들을 두고있다. 절친한 친구 카렌, 카렌의 남편인 로이드와 애인인 빌이었다. 순탄한 연기 생활과 연애를 즐기고 있던 마고는 어느 날 이브라는 젊고 예쁜 여성 팬을 만난다. 마고는 이브의 열렬한 팬심에 흡족했다. 마고는 이브의 팬이 되기까지의 절절한 사연을 듣고 감동했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기까지 한다. 그래서 결국 이브를 개인 비서로 두게 된다. 마고를 동경하는 이브는 마고가 일일히 시키지 않아도 뭐든 열심히 해낸다. 마고와 마고 친구들은 이브의 착한 심성과 충섬심을 보고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 과한 애정과 충성심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법이다. 왠지 이브의 모습은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마고도 사소한 계기로 인해 이브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차 갈등을 일으킨다. 빌이 이브에게 관심 있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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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는 빌이 이브를 좋아하고 있다고 여기며 자신의 초라함을 느낀다. 마고는 연극 배우로서 정점에 오르긴 했지만 이미 나이가 든 상태였다. 안 그래도 빌은 자신보다 여덟 살이나 어려서 불안했고, 아무리 자기가 매력 있어도 젊고 예쁜 이브에겐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마고의 좌절감과 질투심은 나날이 심해져 주변 인물들과의 불화로 이어졌다. 마고는 이브를 좋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미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마고는 깨달음을 얻었다. 마고는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많은 것을 버려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마고 자신의 경우에는 이브가 가진 여성스러움과 무력함, 젊음이었다. 이것을 알고 나니, 자신이 그토록 불안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여성스러움과 젊음을 잃으며 자신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할지 몰랐던 것이다. 마고는 자신의 가치가 자신의 있는 그대로에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빌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준다는 걸 알게 됐다. 마고는 결국 그동안 갖고 있던 질투와 분노의 감정을 놓아버리고, 자신이 맡고자 했던 역할을 이브에게 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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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브는 마고의 깨달음과 반대로 향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브의 모습은 마고가 연극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과거일지도 모르겠다. 이브는 연극 배우로서의 성공, 즉 명예를 위해 자신의 모습을 꾸몄다. 남의 남자를 유혹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배우가 되고픈 욕망을 철저히 숨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찌되었건 이브는 꿈을 이뤘다. 최고의 연기자에게 주어지는 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허영을 버리고 사랑과 우정을 지킨 마고와 달리, 이브에겐 남은 게 없었다. 남은 거라곤 최고의 자리를 유지해야한다는 무거운 과제였다. 아마도 이브는 마고처럼 숱한 질투심과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엔딩 장면의 소녀처럼,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또 다른 이브들이 많으니 말이다.  

나는 그저 여자들의 싸움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고나서 많은 생각을 했다. 명예를 쫓는 삶은 꼭 허무한 것일까? 명예와 허영은 종이 한 장 차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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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를 원하는 삶을 꼭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명예를 이루는 과정에서 자기를 실현할 수도 있고, 삶의 원동력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처럼 이왕 여배우가 될 거라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명예를 쫓는 과정에는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명예란 타인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존재해야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에 집중하고 달려가다보면 온전한 나의 가치를 잊기 쉽지 않을까? 마치 마고처럼 말이다. 그리고 명예의 달콤함에 취하면 곧 허영이 되기 쉬운 것 같다. 나는 그 인물을 이브라고 보았다. 명예와 허영에 모든 가치를 걸면 결국 이브처럼 되는 게 아닐까. 진실성과 양심, 의리와 우정 등 나의 좋은 가치들을 명예와 허영에 모두 바친다면, 결국 명예를 이룬 뒤 남는 건 무엇일까 싶다. 아마 공허함이 밀려오지 않을까.

그리고 여자로서 커리어를 쌓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마고의 말대로 커리어를 쌓으며 잃는 것들이 여자로 사랑받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어느 쪽이 더 행복할지 모르겠다. 다만 마고가 “좋든 싫든 일을 얼마나 많이 성취했는지 상관없이 언젠간 여자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을 때, 매우 씁쓸했다.

<이브의 모든 것>은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였다. 명예와 허영, 그것들에 가려지기 쉬운 ‘나’라는 사람과 인생의 여러 가치들, 그리고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이해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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