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극의 옷 - 무대 배경과 소품의 행방 [공연 예술]

글 입력 2016.01.05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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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이 바뀌면 새 옷을 꺼낸다. 그리고 입던 예전 옷은 정리해서 고이 넣어 둔다. 이것은 매 해, 매 계절마다 반복되는 일. 옷을 한 철 입었다고 버리진 않기 때문이다. 옷 얘기가 나왔지만, 단순히 옷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조금 뜬금없게 들릴 수도 있다. 공연 무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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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연극에게 옷이 있다면? 아마 옷이 있다면 공연이 열리는 무대와 여러 소품들이 그 옷이 되지 않을까?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이어지는 스토리라인과 더불어 그 배경에는 반드시 '무대' 그 자체가 항상 존재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참 절묘하게도, 소규모의 연극, 뮤지컬, 오페라 모두 저마다의 계절을 가지고 있다. 계절에 따라 옷이 바뀌듯, 여러 극도 공연 기간에 따라 무대와 소품을 바꿔 걸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벗은 수많은 옷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문득 궁금증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 행방을 따라가보았다. 따라가다보니 조금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들은 '방치'되고 있었다. 여러 무대 배경, 장치, 소품들. 여러 극에서 무대 위를 빛내주던 수많은 것들. 제 가치를 뽐내던 수많은 것들이 갈 곳을 잃은 채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서, 그리고 관련 콘텐츠들이 증가하면서 문화예술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것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대중들은 연극, 뮤지컬, 오페라에 이전보다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으며, 이런 극들은 여러 주제를 가지고 계속적으로 무대에 올라온다. 최근에는 무대 장치를 간소화한 연극들도 많고 소극장의 경우 공간의 협소함으로 무대 장치가 간소한 편이지만, 여전히 여러 연극이나 뮤지컬, 오페라에서 다양한 무대 요소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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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공연을 마친 뮤지컬 '무한동력'에는 뮤지컬에 큰 핵이 되는 무한동력장치가 무대 위에 표현될 필요가 있었다. 여러 전문가들의 손길을 거쳐 무한동력장치가 탄생하게 되었다. 관객들은 뮤지컬을 보며 크고 작은 바퀴들이 맞물려 쉬지 않고 돌아가는 섬세한 구조물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 초에 공연을 했었던 '마마 돈 크라이'에는 독특한 무대 시설이 있었다. 빗각진 거대한 책장이 무대 위 공간을 가득 채우며 입체적으로 들어서있게 된 것이다. 만약 각각의 극에서 무대 위 분위기를 책임지는 배경과 소품들이 없었다면, 아마 무대가 텅 빈 듯 허전했을 것이다.

   무대 위에서 필수불가결한 위치에 있는 여러 배경과 소품들. 이것들은 단순히 '장치'로 논의되기보단 '무대 미술', '무대 예술'으로 불린다. 자칫 간과하고 지나치기 쉬울 지 모르지만 커다란 한 세트는 그 자체로 이미 한 예술 작품인 셈이다.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하고, 기능적인 요소와 함께 미학적인 부분까지 고려하여 한 세트를 완성시킨다. 오페라처럼 큰 무대가 될 수록 그런 특징이 더 잘 드러난다. 무대는 충분히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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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무대 예술은 쿰쿰한 창고에서 고통받고 있다. 작년 말 몇 차례 방송된 뉴스 취재에 의하면, 컨테이너 안에 소픔으로 쓰이던 여러 물건들이 오염된 환경에서 방치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뮤지컬 '바람의 나라'는 막이 내린 지 1년 반이나 지난 상황이었지만, 무대 세트와 소품은 녹이 슨 철제 기둥과 습기 찬 천장 사이에 놓여있는 채였다. 올바른 방식으로 보관되지 못한 무대 소품과 의상은 결국 변형되고 곰팡이가 슬게 되었다. 결국 제작비의 절반에 달하는 4천 9백만 어치의 소품들이 폐기 처분되고 말았다.

   이 외에도, 국립극단은 지난 5년간 쓴 제작비의 66%에 가까운 15억원 어치의 무대 소품이 부실 보관으로 폐기처분 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어 국립오페라단은 제작비의 25%인 10억원어치, 서울예술단도 20%인 2억 2천만원어치가 버려졌다는 것도 알려졌다. 세 곳의 경우는 제작비의 대부분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에서 지원받고 있는 만큼, 원칙대로 잘 보관하고 재활용해야 할 의무가 있기도 하다.

   여러 무대 소품들이 방치되는 가장 큰 원인은 부족한 공간과 시설 설비, 그리고 예산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보관할 공간이 현저히 부족할 뿐만 아니라, 보관을 위한 시설 설비도 미흡하다. 예술 단체들은 보관 창고에 항온항습장치라도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파주에 무대공연종합아트센터가 건립되는 중이지만 이는 2019년 완공 목표인 상황. 지금 당장 남게 되는 무대 장치와 소품을 관리하기에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공연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5억원 안팎의 비용이 발생한다. 비용적인 면에서 봤을 때에도 기존의 무대 시설의 보존이 시급하다. 또한 예술적 가치가 담긴 여러 무대 시설, 소품 등이 폐기처분 되는 것은 공연계의 손실이자 대중들에게 있어서도 큰 손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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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극이긴 하나, 오페라 '아이다'는 그런 면에서 좋은 선례를 남기고 있다.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이 오페라의 무대 장치와 의상은 반 세기 전에 만들어졌다. 이미 만들어진 모든 무대 장치와 의상은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것들이다. 무대의 스케일이 크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선택의 밑바탕에는 무대와 모든 의상 소품들을 '이태리 미술의 정수'라고 받아들이는 가치관이 있다. 무대를 그냥 물리적인 '무대'가 아니라 '무대 예술'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에서 행동이 나온다. 이 사태의 한 부분만을 콕 찝어 원인을 찾기보단, 우선은 모두의 생각을 다시 한번 되짚어볼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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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과 관련하여 가장 직접적이고 빠르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건 다름아닌 예산 문제일 터. 그러나 예산 문제는 당장 바뀌기는 어렵고 민감한 부분이다. 무대 소품을 지키고 효과적으로 잘 활용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달려야 하는가. 사실 지금 당장 어떤 행동을 실행에 옮겨야 하는지에 관해 이미 좋은 플랫폼을 제시한 기관이 있다. '공연 후 쓰고 남은 무대 소품, 세트 재활용'을 줄여 이름 붙인 '공쓰재'가 바로 그곳이다. 공연을 마치고 나면 필요 없어져 버리는 무대소품이나 세트를 나누는 공간이다. 주 대상은 소규모의 공연 단체로, 이들이 소품을 구하는 비용이나 소품을 처리하는 비용을 절감하는 데에 있어서 '나눔'이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홍보가 부족하고, 규모가 작아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이런 플랫폼이 활성화된다면 여러 소규모 공연 단체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공쓰재'의 경우 경제적으로도 필요가 절실하고, 또한 무대 소품이 그리 크지 않은 소규모 공연 단체가 주된 대상이 된다. 하지만 소규모 공연 단체 외에도 다음 공연이 불확실하거나 아예 공연이 종료된 경우, 그 공연에 쓰인 무대 소품이 실제적으로 다시 쓰일 일은 찾기 힘들다. 나눔으로 해결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당장 비용을 들여 기약 없는 보관을 하기도 힘들 경우, 전시나 경매 방식을 적용해보는건 어떨까. 만약 제작자나 디자이너와 상의가 되었다면, 무대에서 사용한 소품이나 의상을 대중들에게 경매나 판매로 내놓는 것이다. 간혹 배우들이 사용한 물품이 경매대에 오르는 것처럼, 그와 완전히 유사한 효과는 내기 힘들더라도 실질적인 지원책이 될지도 모른다. 또한 전시의 경우엔 어느 정도 규모 있는 무대 시설을 사용하는 공연들에게 효과적이다. 공연이 종료한 후 무대 시설을 전시화하는 것은 대중들에게 흥미로운 전시로 다가갈 것이다. 이미 공연으로 관람한 작품을 한번 더 즐길 수 있고, '무대 예술'로써 무대를 마주하며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디자이너들의 손때, 배우들의 발자취, 관객들의 시선이 듬뿍 묻은 무대 예술. 무대 위에 담긴 그 추억들이 먼지 덮히지 않게 남아있길 바란다.





* 참고 자료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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