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추억이 되지 못한 연극, 해피투게더

글 입력 2015.12.2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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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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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사에도, 국회의원 당선소감에도, 각부 장관의 취임인사에도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잘사는 세상,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 만들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외친 ‘해피투게더’가 현실 속에서 실현된 적이 있었을까요?  

2013년 11월 초연, 2015년 12월 9일부터 앙코르 공연에 들어가는 <해피투게더>는 
그들이 외친 ‘해피투게더’가 과연 누구를 위한 해피투게더였는지, 
진정한 ‘해피투게더’를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
속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시놉시스>

86아시안 게임과 88서울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1980년대 부산... 
일곱 살 종선과 누나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동광파출소에 맡겨진다.
육교에서 구걸하던 아무개 씨는 어느날 경찰에 끌려 알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된다.

포항제철에 근무하던 서상렬 씨는 해운대 휴가 중
부산역 대합실에서 깜박 잠들었다 철도공안원 신고로 잡혀간다.
원양어선을 타던 김민효 씨는 모처럼 육지의 밤을 술로 달래다 누군가에게 끌려 간다.
부산 연산동에 살던 이명렬 씨는 마누라를 때린 혐의로 경찰에 연행된다. 
취직차 부산에 왔던 한아무개 씨는 포장마차에서 술에 취해 졸다가 누군가의 차에 태워진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부산시 북구 주례 2동 산 18번지, 형제복지원! 
이들을 가둔 것은 1975년 유신시대에 발효된 내무부 훈령 410조. 
1975년과 1986년 사이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551명. 
그들은 왜 이곳에 갇혔으며, 도대체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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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9일, 해피투게더라는 연극을 보러 대학로로 향했다. 프리뷰의 내용을 알고 가서인지 어두운 내용의 내용일거라 생각하고 앉았다. 극장은 다른 타 극장들에 비해 무대가 넓었고 배우들이 많았으며, 좌석이 무대를 향해 자리하고 있었다.

연극을 오랜만에 그리고 처음 본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설렘 가득한 기다림 끝에 연극은 시작이 되었다. 

극은, 형제복지원 원장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원장의 말이 공감했다. 독백의 내용은 지극히 이상하리다 싶은 내용이 없었으며 당연한 말들 뿐이었다. 그저 세상을 살아감에있어 힘들다는 내용 그 뿐이었다. 이 부분이 아이러니한 부분인지 모른다. 그러나 극이 전개가 될 때쯤 했던 말들과 원장의 사상에 하나하나 반박할 근거들이 떠오른다.

형제복지원이라는 사건은 내가 살았던 시대와는 사실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때문에 해피투게더라는 연극을 접하기 전까지 어떤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덧없이 죽어갔는지 알지 못했다. 세상살기 힘들어 혹은 억울해서, 가난해서 술 한잔 걸쳤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그리고 그 사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에 의해 교육되었으며 인권이 끊임없이 유린되었다. 결국은 죽은 사람도 많으며 미쳐간 사람들도 많다. 

극은 이렇게 무거운 내용을 다룬다. 그러나 연극을 보는 내내 화가 나서 눈물이 흐를 정도의 무거운 연극은 아니다. 극을 소개하는 평론가들의 말처럼 문득문득 극에 녹아들어간 웃음 코드와 수용자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그들의 연기에 매료될 때 쯤 연극은 끝을 알린다. 

복지원 원장의 궤변이 인상깊다. 또한 아무런 편견 없이 듣자하면 정말 공감 할만한 얘기를 하곤 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궤변을 듣고 있으면 어떤 것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가장 인상깊은 구절이다. 

"거리의 노숙자들은 사회에서 쓸모 없는 존재이다. 그들을 고치고자 이러한 복지사업을 한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 나라에서 돈을 받아 하는 일이며, 이 법치국가에서 내가 죄가 있으면 잡혀갔겠지 여기 있겠나"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 당시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이며 법치국가라 누가 말하던가. 거리의 노숙자들이 경제능력을 할 의지가 없고 무능력하다 판단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또한 폭력을 행하며 하는 사업이 복지사업이라 할 수 있는가.

연극이 끝나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생이기에 사회라는 단어가 연극에서 언급될 때마다 더 많은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사회란, 공동체의 집합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회는 폭력과 권력이 자리했다. 가장 무서웠던 점이 형제복지원의 사례처럼 이데올로기와 권력의 결합이다. 원장은 그게 옳다고 믿었고 명분만 보면 나무랄 데가 없다. 이 점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권력, 이데올로기, 그리고 사상의 결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그 사람에게 형성이 된다. 평범한 사람에게 이 같은 사상이 주입이 될 때에는 또 다른 폭력이 만들어지고 폭력적이고 옳지 않은 이데올로기가 재생산된다. 수 많은 희생자들과 기여로 완성된 형제복지원 원장의 작은 사회는 현대 사회에 새로운 의문점을 던진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사회가 형제복지원과 다르다고 확신하는가? 비판하지 않고 권력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사회의 흐름에 쓸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쯤은 멈춰서서,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종교를 맹신하는 것처럼 찬송가를 군가처럼, 형제복지원의 사상을 맹신하는 사람들은 밖의 사회의 시선에서는, 그리고 지금 시대의 시각에서는 충분히 모순적이다. 원장개인의 잘못된 믿음은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이뤘다. 연극은 폭력적인 권력이 권력을 유지시키는 매커니즘을 보여준다.  그 당시와 같은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 이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충분한 비판적인 시각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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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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