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우환_여백의 미학 : 새로운 공간으로의 확장과 발견 [시각예술]

글 입력 2015.12.2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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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국제갤러리에서 단색화展에 방문했을 때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이 전까지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은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에 표지로 실려있는 것을 스치듯 본 것이 전부였었다.
그 표지에 실린 이우환 작가의 그림을 보았을 때에는 큰 감흥을 느끼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전시실에서 그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는 그 단순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에 압도되었고 마음에 큰 울림이 일었다. 그리고 올해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에 이우환 작가가 나와 자신의 여백의 예술에 관해서 강연한다는 것을 보고 망설임 없이 한달음에 달려갔다.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우환 작가는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작품에 대한 곡해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최근 서양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 방식, 작품의 의도 등에 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충분히 어필한다. 그들은 작품과 언어 사이의 관계를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파악하여 말로써 작품을 풀어 내는 것이 생각의 확장에 이르게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대다수의 동양 작가들은 작가가 작품에 대해 말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작품의 의미를 작가가 직접 말로 하는 순간에 오히려 말이 작품에 반(反)하게 되어 작품에 대한 오해를 초래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우환 작가 또한 처음에는 자신이 직접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꺼려졌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을 말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 또한 작품과 연결되는 하나의 영역이 될 수 있다고 여기게 되며 이렇게 강연자로 참여도 하고 직접 책을 쓰기도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말은 나에게 큰 용기와 위안을 주는 말이었기에 강연의 핵심이 아닌 부분이었음에도 가장 인상 깊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나만의 해석을 달고 글을 쓸 때마다 매번 '내가 지금 하는 해석이 작가가 의도에서 완전히 빗나간 것은 아닐까', '오히려 이 해석이 작품에 반역이 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우려와 회의가 들고는 한다. 그리고 이 회의감은 자신감의 하락으로 이어져서 선뜻 나의 해석을 자신 있게 내놓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듯한 비평문을 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작가 자신 조차도 스스로의 작품에 해석을 달 때에 이런 걱정을 한다는 점과 오해도 하나의 해석의 영역임을 인정해주는 그 말이 용기를 내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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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비로소 작품에 대해 말 할 수 있게 된 이유를 설명한 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은 단순하고 다. 볼거리가 적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는데, 자신이 초기에 일본에서 열었을 때에 전시장에 방문한 노 부부가 작가에게 이 전시에는 작품다운 작품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을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이 예술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의 작품은 그저 화면이 텅텅 비어있는 달랑 점 몇 개 찍어 놓고 작품이라고 우기는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말했다. 동시대의 예술이란 예술이 어떤 영원한 것,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담고자 하는 위치에서 내려와 작품이 존재하는 그 순간에서 발생하는 분위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그의 회화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점은 그 점의 존재가 작품의 핵심이 아니다. 점이 등장하는 작품의 골자는 점과 여백 사이에서 탄생하는 긴장감과 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은 부분 이 둘 사이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 관객에게 전하는 어떤 떨림과 전율이다. 그리고 회화 속에 그려 넣어진 점들은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캔버스에는 강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 캔버스의 한 가운데에 점을 찍을 경우 그 점은 안정되어 있고 정지되어 있다. 그러나 점을 가운데가 아닌 캔버스의 다른 부분, 모서리 근처 등에 찍을 경우 안정을 추구하는 우리 눈은 이 점을 가운데로 놓으려는 움직임이 발생한다. 작가는 항상 이 힘을 가장 잘 끌어낼 수 있는 위치에 점을 찍기 위해서 노력한다.
또한 그리지 않는 부분은 현대 미술의 새로운 존재론적 접근이다. 기존의 회화는 핵심 대상이 아닌 그저 배경이 되는 부분이더라고 세심하게 음영을 넣어서 색을 칠했다. 작품 속에 그리지 않는다는 부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지 않는 부분이란 현대 미술에 새로이 문제가 되는 부분으로서 이것을 회화의 핵심으로 삼는다는 것은 새로운 예술적 시도이며 화면의 모든 부분을 매워야 한다는 기존 미술의 고정관념에 대한 반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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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조각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존의 조각이란 돌, 나무, 대리석 등의 이미 존재하는 자연물을 깎아내어 작가가 담아내고자 하는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회화의 여백과 유사한 연유로 그는 기존의 조각을 거부했다. 조각에서는 덜 만들어 내는 방식을 통해서 기존 조각을 거부하였다. 그는 이미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차용해 와서 이들을 어우러지게 하는 것으로 작업 방식을 택하였다. 예를 들어 그의 작품인 관계향은 이미 자연 속에 존재하고 있던 돌과 철판이라는 두 가지 소재를 어울리게 배치함으로써 관계향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돌은 자연세계에서 기인하는 소재, 철판은 산업사회의 소재로 의미적 측면에서 반의 관계를 이루지만 작가는 이런 반하는 두 소재를 어우러지게 배치함으로써 어떠한 분위기를 조성해보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전시 이후에는 돌이나 철판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 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영속적인 예술이 아니기에 전시 기간이 끝나고 전시장에서 어떤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완수하고 나면 이는 더 이상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굉장히 임시성이 높다. 반면 돌멩이나 철판 그 자체가 작품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 아니기에 대상성은 낮다.

 또한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산업사회에 접어든 이래 공장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바쁘게 생산해 냈고 기존에 만들어 낸다는 것의 희소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작가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라는 행위를 통해서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반기를 들었다.
 회화든 조각이든 그의 작품의 핵심이 되는 것은 인위적인 행위를 최소화 하는 것이다. 많은 여백을 두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여백이 단순이 남겨둔 부분이 아니라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 오브제를 배치한 곳 비어 있는 공간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나는 울림이라고 말했다. 마치 종을 치면 이 울림이 퍼져나가는 것과 같은 것이 여백 현상이리고 말했다. 앞으로도 작가는 이런 여백 현상으로 대상 주변의 공간을 여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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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예술은 매 순간 그 경향이 바뀌고 그 방향성이 너무나도 다양하여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 예술의 흐름 속에서 작가들은 점점 더 작업 방식을 다양화 하며 한 작가가 회화, 조각, 미디어 아트 등 굉장히 다양한 장르를 소화 하며 다양한 오브제를 작품에 담아낸다. 그에 반해 이우환 작가는 끊임 없이 회화와 조각만으로, 그 회화도 주로 점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 그 조각은 돌과 철판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이런 작가의 방식은 그 자체로 너무나도 쉽게 작품을 만들고 폐기하기를 반복하는 얕은 깊이의 현대 미술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또한 동양적 장인 정신과 닮아 있는 그의 거듭 반복되는 작업 정신은 현대 예술은 작가가 쉽게 대충 만든 아무거나를 예술로 우긴다는 대중의 비난을 떨쳐 낸다. 그가 작품 내용이 주변의 새로운 공간을 여는 것인 것 처럼 그의 예술계에서의 역할은 작품 내용과 유사하게 동시대 예술계에 심도 있는 울림으로 동시대 예술의 공간을 확장해 주고 있다.   
  

[이윤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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