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문학의 역사Ⅲ- (2)왕정복고기 영국Drama와 커튼콜 [문학]

Restoration Drama
글 입력 2015.12.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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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의 역사Ⅲ

The Commonwealth and Restoration (2)
1649 – 1713

Restoration D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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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십 년 동안 계속된 내전과 혁명이 끝난 후, 비로소 안정감을 되찾은 영국사회는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이전보다 성숙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청교도인의 탄압으로 극장이 폐쇄되며 골든 에이지가 막을 내린 이후, 연극은 복고된 왕정과 함께 돌아와 이제 다시 극장에서 막을 올릴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왕정복고기의 drama가 잃었던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지 살펴보자.  




1. 왕정복고기 희극: 풍습희극(The Comedy of Manners)



 먼저, 이 시기의 대표적인 극작가인 존 드라이든(John Dryden, 1631-1700)을 통해 완전히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를 나타내고자 한다. 지난 오피니언에서도 등장했던 드라이든은 왕정복고기의 대표적인 문인이자 계관시인(Poet Laureate)으로서 시·희곡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그가 남긴 20여개의 희곡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작품 《유행에 따른 결혼, 1673》은 영국 Drama에 희비극(tragicomedy)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구교(가톨릭)신자였던 그는 명예혁명 당시 제임스Ⅱ가 쫓겨날 때 이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계관시인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불우한 말년을 보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문인을 찬미하는 가장 영예로운 지위를 박탈해 버릴 만큼, 당시 정치가 문학계에 가하는 영향, 압박이 극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다. 왕정복고 이후의 희곡·연극계는 르네상스 때와는 사뭇 달랐다. 단 2곳의 극장만이 공식적 인가를 받아 극을 상연할 수 있었고, 서민들도 향유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주로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이 연극을 즐길 수 있었다.

 1660년 찰스Ⅱ가 프랑스에서 돌아와 왕정을 복고시켰던 사회적 분위기에 맞추어, 국왕과 함께 프랑스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보여주는 프랑스식 예절과 도덕성을 반영한 희극이 유행하였다. 즉, 왕정복고기의 희극은 풍습희극(The Comedy of Manners)이었다. 풍습희극은 희화화된 ‘남녀의 성역할’, 그리고 성적 주제를 희극적으로 표현한 ‘사랑’을 주제로 하였다. 주요작가로는 조지 에서리지, 윌리엄 위철리, 윌리엄 콩그리브가 있다.  



먼저 조지 에서리지(George Etherege, 1635-1692)다. 에서리지는 풍습희극에서 가장 유명한 두 작품 《가능하면 하고 싶다, 1668》과 《멋쟁이, 1676》에서 맹목적으로 유행을 좇아 부자연스러운 패션과 이기적인 사교계 모습을 그려냈다.
 
 또 윌리엄 위철리(William Wycherley, 1641-1715)는 성적행동을 탐구한 《시골 아낙네, 1675》의 부도덕성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풍속희극에 반대하는 도덕성 경향이 시작되도록 도왔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콩그리브(William Congreve, 1670-1729)는 《세상 돌아가는 법, 1700》을 써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사랑과 열정은, 쾌락과 물질을 얻기 위해 사랑에 빠진 척하는 탐욕과 대조된다. 또 여성들의 결혼에 대한 요구사항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작품은 사리사욕으로 가득한 런던을 풍자하고자 할 뿐 아니라, 여성의 독립성과 발언권이 강해진 당대의 영국사회를 반영한 풍습희극의 최고작이라는 평을 듣는다.

 

 17세기 말 Jeremy Collier는 《Short View of the Immorality and Profaneness of the English Stage, 1698》를 통해 풍습희극의 부도덕성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앞서 말한 위철리의 《시골 아낙네》 중 많은 대사가 극장에서 보기에 적절치 않았을 뿐 아니라, 종교적 인물을 희화하였고 아내를 빼앗기는 것을 조롱하는 의미인 Mr. Pinchwife라는 이름의 인물을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상류사회를 풍자하고자 한 풍습희극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신교(청교도)인들에게도 좋게 비춰지지 않았다. 결국 대중들의 동의를 얻어냄으로써 청교도인들은 1630-1640년대에 이르러 또다시 극작가들의 자유를 통제한다.  




2. 왕정복고기 비극: 영웅비극 (Heroic Trag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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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정복고기 정치권을 풍자하여 웃음거리로 만든 희극이 있었는가 하면, 사회의 어두운 면을 희화화하지 않고 관중들에게 엄숙하게 전달하여 그 심각성을 보여주고자 한 비극도 상연되었다. 희극의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당대 최고의 문인 드라이든에게는 라이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토머스 섀드웰(Thomas Shadwell, 1642-1692)이었다.
 
 새로운 중상류층의 청중들은 violence(곡해)나 비극적 결말을 수용하려 들지 않았다. 따라서 섀드웰은 2세기 전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새로이 변형하여 소극(farce)이나 해피엔딩으로 각색하였다. 이로써 셰익스피어의 비극작품들은 관중의 기호에 맞추어 보기에 더 편안하고, 문제가 없는 작품으로 변모했는데, 이는 17세기 동안 극장의 역할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러나 왕정복고기의 비극이 다 이렇지는 않았다. 이 시기 비극의 주요 형태는 바로 영웅비극(Heroic Tragedy)이었다. 영웅극의 대표작인 토머스 오트웨이(Thomas Otway)의 《수호된 베니스, 1682》는 영웅의 희생으로 사회가 안전하게 수호됨으로써 ‘사회 안정성을 위협하면 안 된다’는 당대의 도덕성을 잘 드러냈다. 또 기존의 영웅극 형식의 한계 -과장성, 서사시 모방 등- 를 극복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3. 주류에서 밀려난 비주류, English Drama



 당대의 많은 극작가들과 희곡작품들은 사회적·정치적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정치적으로 급변하는 사회가 가진 이면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고자 한 극작가들. 그들 사이에서는 극의 사실성과 극장의 역할에 대한 Reality 이론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공공도덕을 해치고 정치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연극계에 규제의 압박을 가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과 당대 사회의 거짓된 가치를 풍자한 John Gay의 《거지오페라, 1728》은 연극에 음악을 가미한 획기적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신랄한 표현법 때문에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1737년 영국은 The Stage Licensing Act를 선언함으로써 극작가들의 정치인 조롱을 막고 종교 및 도덕성과 관련된 작품들을 검열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시간이 흘러 비교적 최근인 18세기의 유명 작가인 헨리 필딩(Henry Fielding)의 정치희극인 《The Historical Register for the Year, 1736》이 당시의 영국 수상인 Robert Walpole을 조롱하자 권력계는 결국 모든 희극 작품을 검열하기에 이른다. 이후 헨리 필딩이 소설가로 전향한 이후에는 The Theatres Act로 문학계 전체에 대한 대대적 검열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연극과 희곡은 점차 영국 문학의 주류 형태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그 자리를 소설이 채움으로써 이제 소설은 영국의 가장 중요한 문학 장르가 되었다. 1770년대에 이르러서야  Richard Brinsley Sheridan의 희극이 비로소 왕정복고기의 수준으로 격상되었지만, 드라마는 다시는 골든 에이지의 영예를 되찾지 못했다.




4. 또 다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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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중세 이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문학사는 Drama를 중심으로 흘러갔다고 말할 수 있겠다. 현재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영 연극이란 겨우 셰익스피어의 4대 비희극 정도이지만 희곡이 문학계에 미쳐 온 영향을 무시할 수 없으니 말이다. 수백 년간 영국 문화예술계의 우위를 점했던 Drama, 그리고 수백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 많은 이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아쉽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후에도 희곡은 계속해서 쓰였으며, 이것이 발전하여 만들어진 영화산업이 오늘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으니 그것으로도 꽤 만족스럽다고 위안 삼아본다. 

 다음 오피니언에서 다룰 시대는 엄청난 문학적 성과를 이뤄낸 시기이다. 이제까지 중세 영문학을 두 번에 걸쳐 서술해도 부족함을 느꼈지만, 다음 시간은 더욱 부족할 듯싶다. 이제 우리가 많이 들어본 소설작품들과 그 외의 여러 작품들을 살펴봄으로써 근대를 향해 나아가는 영국이 어떤 사회적·정치적 문제들에 직면했으며 그것이 문학 속에 어떻게 나타났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The Penguin Guide to Literature in English: Britain and Ireland, ed. Ronald Carter and John McRae (Pearson Longman, 2010) ISBN: 978-0-582-46567-1

인물정보 및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존 드라이든 [John Dryden]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85414&cid=40942&categoryId=33449

[네이버 지식백과] 서 조지 에서리지 [George Etherege]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25243&cid=40942&categoryId=34407

[네이버 지식백과] 영웅극 [heroic drama, 英雄劇]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99178&cid=40942&categoryId=32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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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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