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대가 변해도 가족의 온기는 여전하다, 연극 '산토끼'

글 입력 2015.12.09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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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해도 가족의 온기는 여전하다, 연극 '산토끼'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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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빨리도 왔다. 어느새 겨울이 곁을 파고든다. 추운 날의 스산함이 살결 사이사이 스며드는 십이월 첫째날, 대학로에 위치한 연극 실험실 '혜화동 1번지'를 찾았다. 이 날 '혜화동 1번지'에서는 극단 고릴라의 창단공연인 '산토끼'가 기다리고 있었다. 연극 '산토끼'는 마포에 위치한 주민극단인 성미산마을극단 '무말랭이'에서 2011년 초연을 한 이후 3번의 무대공연을 거친 작품으로, 2015년 극단 고릴라와 결합하여 일반관객들에게 선보인다. 극단 고릴라의 2015년 '산토끼' 공연은 현재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시민 예술활동과 전문예술영역이 어떻게 상호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연극 '산토끼'를 보기 위해 꽤 많은 사람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 있었다. 티켓을 받은 후 공연을 기다리며 팸플릿을 찬찬히 읽어보던 중, 극단 이름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눈에 띄었다. 극단 고릴라는 말 그대로 희귀영장류 '고릴라'를 뜻하기도 하고 신들의 놀이, 신들의 유희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LeeLa'를 의미하기도 한다. 세상의 변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잊혀지기 쉬운 기억들과 잃어버리기 쉬운 마음들을 우리 말과 글 그리고 몸짓에 담아 무대 위에 세우고자함을 담고 있단다. 연극에 대한 기대치가 한층 높아졌다.

연극 '산토끼'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를 그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 아니다. 이미 죽어 이승에서의 명을 다한 선조들이 중심 인물로 등장한다. 귀신들이 주인공인 셈이다. 작가는 이들을 내세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일까. 리뷰에 앞서 간략한 줄거리를 소개한다. 김씨네 선산, 볕이 잘 들만한 자리를 따라 선조들의 묘가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다. 선산에 깃들어 살고 있는 조상들은 기제사나 명절 제사 때 이승의 후손들을 찾아가 젯상을 받아먹고 오는 낙으로 살아간다. 설을 코 앞에 둔 어느 날 새벽, 그 동안 지내오던 제사를 싹 없애버리고 신정 때 한 번으로 줄인다는 소식을 아버지(1대)가 듣는다. 게다가 장사밑천 마련한다고! 자식 미국 유학 보낸다고! 자신을 포함한 조상들이 줄줄이 묻혀있는 선산마저 팔아 치운다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이를 할아버지와 할머니(2대)에게 전하고, 소식은 대를 거슬러 전달이 된다. 이를 전해들은 큰할아버지(4대)는 펄쩍 뛰며 1대부터 4대까지 대 가족회의를 소집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시대가 변했다고, 우리가 체념해야 한다며 선조들을 설득하려 노력하고 큰할아버지는 후손들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런저런 논쟁이 오가는 와중에 선조들은 살아 생전 옛날 옛적의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애를 다시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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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산토끼'는 죽어서 대대로 산에 깃들어 살고 있는 조상들이 제사를 없앤다는 소식에 대가족회의를 소집하고 한바탕 논쟁을 벌이는 이야기를 명랑하고 유쾌하게 하고 있다. 줄거리에서 앞서 말했 듯, 자신의 기제사에 이승으로 내려갔다가 후손들이 제사를 없앤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1대)가 어머니(1대)와 이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극은 시작된다. 둘은 자신의 선조들이 이 알림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걱정한다. 그 다음 막에서는 1대조 아버지와 어머니가 2대조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그 다음 막에서는 2대조 할아버지가 3대조 작은 할아버지와 작은 할머니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 그 다음 3대조 작은 할아버지가 4대조 큰할아버지와 큰할머니께 이를 알리며 가족회의가 소집된다. 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제사를 없애고 선산을 팔 것이라는 소식을 전언하는 장면의 전환은 익숙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그것은 같은 소식에 대한 다른 세대의 반응을 추측하고 예견해보는 재미에서 비롯된 흥미였다. 예상한대로 대가 높아질 수록 제사를 없앤다는 소식에 더 큰 충격을 받는다. 특히 4대조 큰할아버지는 앞으로 떡을 먹지 못한다며 노발대발한다. 그들에게 제사는 어떤 의미였을까. 조상과 후손을 정신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의식이자 통로이며, 조상을 추모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표시이면서 또한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가족이 화합하는 장으로써 기능 하던 제사는 그들에게 제사 이상의 것이었을지 모른다. 등장하는 8명의 인물들의 개성은 다양했다. 술을 좋아하여 항상 얼굴에 홍조를 띄고 반쯤 감긴 눈을 하고 있는 아버지, 고달픈 시집살이에 죽어서 참새가 된 할머니, 배고픈 시절에 자식들 키우느라 드세진 작은 할머니, 자식을 낳지 못해 스스로를 죄인이라 생각하는 첫번째 3대조 한씨, 20대에 요절하여 죽어서도 철이 없는 큰할아버지 등등 인물 하나 하나가 발산하는 매력을 즐기는 묘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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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과 분장은 굉장히 훌륭했지만) 화려한 연극 기법이나 치밀한 미장셴이 배제된 연극 '산토끼'에서 관객을 사로잡는 요소는 배우들의 대화와 셔레이드 charade였다. 따라서 연극 '산토끼'를 얘기하려면 배우들의 원숙한 연기를 빼놓지 않을 수 없다. "이 배우들이 어떻게 한 무대에 설 수 있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명배우진들이 모였다. 박기륭, 김태훈, 이영주, 선명균 등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 덕에 편안하게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나 3대조 작은할아버지 역을 맡은 박기륭 배우의 정제된 연기, 억척스러우면서도 속은 따뜻한 3대조 작은할머니 역을 맡은 이영주 배우의 연기는 그 중에서도 도드라졌다. 그 배우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분위기가 좋았던 것일 수도 있겠다. 연출에 있어서 기억에 남을만한 점은 민요, 판소리, 시조창 등 다양한 전통성악과 우리네 춤을 배우들의 소리와 몸짓으로 구현한 것이다. 이는 관객의 감정을 증폭시키고 극 자체도 풍성하게 했다. (사실 시조창은 간간히 한자가 섞여 있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시조를 읊은 후 해설을 해주었으면 좋았을 걸, 아쉬움이 남는다.)


이 연극은 현대사회의 변해가는 풍속과 세태 속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정갈하고 유려한 시적언어를 우스꽝스럽고 유쾌한 극적 행동에 얹고, 이에 전통예술의 맛과 멋을 가미한 연극 '산토끼'는 가족 간의 정이라는 따스한 감정을 건드리며 공감을 자아낸다. 지난 주말, 외할아버지 기일을 맞아 온 가족이 시골에서 모였더랬다. 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시골집. 현관을 열자마자 거실에 앉아있던 친척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우리 가족을 맞이한다. 그 웅성거림은 언제나 정겹다. 얼마지나지 않아 거실에는 큰 상이 펼쳐지고, 어느새 식사 준비는 끝이나 있다. 할머니께서는 언제 이렇게 많은 양의 밥과 국, 반찬들을 준비하신 건지 매번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 모두는 큰 상을 빙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현대로 오면서 제사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흩어진 가족들이 모여 정담을 나누고 가족애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아직까지는) 제사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설 제사상을 받으러 가기 위해 4대 선조 모두가 한 데 모인 연극 '산토끼'의 마지막 장면처럼 우리 조상님들도 우리와 함께 모여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럴 것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연극 '산토끼'는 "이 연극 진짜 잘만들었네"라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던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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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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