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연극 < 치정 >, 사랑과 권력 그 허무함에 대하여

사람과 사람사이의 애매모호성
글 입력 2015.12.06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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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사랑과 권력 그 허무함에 대하여
연극 ‘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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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청계천변 작부를 
한 아름 안아보듯 
치정 같은 정치가 / 상식이 병인 양하여 
포주나 아내나 
 빚과 살붗이와  
현금이 실현하는 현실 앞에서 
 다다른 낭떠러지....” 



일찍이 1960년대 초 시인 송욱은 
합리성과 공리와는 담 쌓고 사욕과 사적 관례로 얽혀 있는 
우리의 정치 현실을 ‘치정’과 ‘정치’의 전도된 음절로써 말장난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썩 어울리는 상호수식 관계를 볼 수 있다. 
 
<치정>은 이러한 수상한 관계가 뒤집혀진 현상이다. 
‘잘못된 만남’, ‘불륜’, ‘사랑의 죄악’의 이면에 숨어 있는 ‘정치’,
 즉 ‘권력관계’, ‘이해관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떨치지 못한 부적절한 관계들로 인해 
21세기가 된 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목도하게 되는 
결핍과 과잉의 감정, 그로 인한 폭력과 단절들이다. 





 11월 28일 정말 오랜만에 연극을 보러 남산으로 향했다. 처음 연극의 제목을 보고는 흔히 말하는 ‘치정멜로’를 다룬 작품일거라고 생각했지만, 프리뷰를 쓰며 기획의도를 읽어보니 단지 ‘남녀 간의 어지러운 정’ 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다. 거꾸로 읽으면 정치, 아 ‘남녀관계에서 나타나는 권력을 볼 수 있겠구나.’ 프리뷰 때에는 14세 관람가 였지만 얼마 후 19세 관람가로 변경되었다. 조금 더 깊이있는 연기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극장에 들어섰다.

 얼마 전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던 황미영 씨가 나온 연극 <치정>. 극장은 무대를 둘러싼 객석들이 뒤로 갈수록 더 높은 곳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낮은 무대가 중앙에 위치해있었다. 연극이 시작되기에 앞서 무대에서는 복고풍의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무대를 보고 있었다.
   


 잠시 소등되었던 조명이 밝아지고, 연극이 시작되었다. 극을 즐기기 위해 주인공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사건이 이 연극을 관통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관객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두 가지 에피소드를 다룬다고 했던 연극에서 어느 대목까지가 첫 번째 에피소드이고, 어디부터가 두 번째인지 알아채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한 대학교수의 아내가 춤바람이 나면서 겪는 갈등을 그린 해방 후의 <자유부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후 여러 사건들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배우들의 연기력덕분에 극에 몰입하는 것은 힘들지 않았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각각의 사건들과 인물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낼 수 없어서 마냥 즐길 수만은 없었다.
   
 각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것들이기도 했고 실제에 바탕을 둔 허구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들은 인형이나 영상으로 대체되었지만 그마저도 눈살 찌푸리는 순간들이 있었기에 19세 관람가로 변경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비교적 최근의 안산역 살인사건과 이대 인근 공원에서 발생했던 살인사건, 그리고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특정 커뮤니티 사이트가 거론되기도 했다.
   
 어떤 정치사도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의외였다. ‘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단 하나의 사건 없이도 해방 후부터 현재까지의 ‘정치’를 나타내려 했다니. 그보다는 ‘치정살인사건’들이 주를 이루었다. 연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들이 무대를 채웠다. 수차례 반복되는 난도질과 어지럽혀진 무대. 도끼와 낫, 망치 같은 연장을 들고 무대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배우들과 무대 한 가운데에서 무심한 듯 사건들을 바라보는 연주단이 대조적이었다.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벌어지는 수많은 사랑싸움과 힘자랑, 권력 다툼 그 모두가 허무하다는 것. 그것이 이 연극이 보여주려던 게 아니었을까. 물론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몇몇 장면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 극을 쓴 작가가 단순히 관객들을 이해시킬 방법을 몰라서 복잡한 구성으로 그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 또한 사람들 사이의 애매모호한 ‘치정’을 그린, 이 연극이 의도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한번 보아서는 그 안에 숨은 의미를 다 알기 어려운, 그런 영화들이 있다. 이 연극도 다시 볼 수 있다면 처음에 알아채지 못했던 작품의 핵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달래본다.



[ 치정 ]
2015.11.19 - 12.06
 
평일 8시 / 토 3시,7시 / 일 3시 (월요일 쉼) 
작 박상현, 연출 윤한솔 
19세 이상 관람가, 90분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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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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