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매일 몸이 바뀌는 소년, 사랑과 관계의 본질에 대해 묻다 [문학]

글 입력 2015.12.05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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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에브리데이> 
사랑과 관계의 본질은 무엇일까?





2015년 개봉한 국내 영화 뷰티 인사이드(Beauty Inside)는 몸이 바뀌는 한 남자가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로맨스이다. 주인공 우진은 자고 일어나면 몸이 바뀌는데, 그 대상이 국적,성별,연령 불문 누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다. 어제는 백발의 할아버지였다가 다음날이면 젊은 일본 여자로 깨어난다. 뷰티 인사이드라는 영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겉모습에 상관없이 사랑이 지속될 수 있는지, 사랑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물론 이 영화가 훈남종합선물세트라는 것은 불편한 진실. 주인공은 훈내 풀풀나는 남자 배우들로 꽤나 빈번하게 변신한다. )


2012년 미국 작가 데이비드 리바이선이 발표한 <에브리데이(Every Day)>는 뷰티인사이드와 닮은 꼴인 소설이다. 매일 몸이 바뀌는 주인공 A가 우연히 리애넌이라는 소녀의 남자친구 저스틴이 되어 하루를 살고난 후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줄거리를 갖는다. 몸이 바뀐다는 것만 놓고 보면, 어느 하나가 원작인가 싶을 정도로 둘은 거의 흡사해 보인다. 하지만 소설 속 바뀌는 규칙이 영화 속의 것과 사뭇 다르다. 소설에선 자신의 몸이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기 보다 한 사람이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살게 된다. 즉, A에겐 육체가 없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런 일이 시작되었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몸이 없으므로 남자도 여자도 아니며, 흑인도 백인도 황인도 아니다. 조국도 종교도 없다. 변화무쌍한 삶이지만, 그 누구와도 하루 이상 관계를 지속할 수 없어 그만큼 외로운 인생이기도 하다. 뷰티 인사이드와 에브리데이, 닮은 듯 다른 영화와 소설을 비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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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데이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책의 이야기는 주인공 A가 몸을 옮겨 다닌지 5994일째부터 6034일까지, 41일 동안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 시간 동안 하나 같이 다른 41명의 16살 소년소녀들이 나온다. 자기 밖에 모르는 거만한 소년, 남 험담하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고 있는 소녀, 부모님의 말을 아주 잘 듣는 홈스테이 가정 자녀, 할아버지의 장례를 앞둔 소년, 헤비메탈 매니아, 비만 청소년, 자살을 계획하고 있는 우울증 환자, 마약 중독자, 동성애자(레즈비언), 여자라면 한번쯤 꿈꾸었을 완벽한 몸매의 소유자, 불법 미성년 가정부, 음악과 친구들을 사랑하는 밝은 소년까지… A는 이렇듯 다양한 사람의 몸에 들어가 그 사람의 기억에 접속한다. 그 후 몸의 주인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는 물론 심리 상태 까지도 알아낸다. 작가는 A의 관점을 빌려 각각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예리하게 묘사한다. 영화와 차별적으로, 소설의 주제는 단순 로맨스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인간상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전제로 한다. 


A는 리애넌을 사랑하게 되면서 매일 그녀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학교를 가고 그날의 숙제를 하는 등 본래 몸이 처한 상황을 되도록이면 존중 하려 한다. A가 누군가의 몸에 있는 동안 그 몸의 소유권은 완전히 A에게 있다. 그래서 충분히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음에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리애넌을 만나는 등 본래 몸의 주인과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해야 할 때면 나름대로의 조치를 취한다. 기억을 재구성하거나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게끔 유도해,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 A가 머물 수 있는 하루가 지나면 본래 주인은 어제를 여느때와 다를바 없었던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기억한다. (이 부분은 묘하게 일리가 있다 생각한 부분이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불과 하루 전인데도 전날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작업을 반복한다. 사는 동안 나 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에브리데이의 A가 되어볼 것을 권한다.내가 소설 속 A라면? 혹은 내 몸에 A가 들어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내 몸에 하루 동안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산다는 것을 생각하면 좀 무섭기도 하지만, 상상해보면 꽤 재밌고 의미있는 일이다. 오늘 하루, A가 되어보자. 나 자신에겐 주인이 아닌 손님이 되고, 타인에겐 잠시 그 몸을 빌린 A가 된 것을 상상해 보자. 즉, 한 발 멀찍이 떨어져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고, ‘내가 저 몸에 들어갔다’ 느껴질 정도로 깊게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어떤 예측 불가능한 제약 조건에도, A는 사랑하는 리애넌과 함께 하고자 한다. 둘의 사랑은 쉽지 않고 점점 더 큰 갈등을 낳게 되지만, 결국 A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자신의 길을 계속 걸어간다. 그 과정에서 A는 수많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경험한다. 매일 아침 낯선 이의 몸 속에서도 눈을 뜨고, 심지어 정말 탐이 날 만한 몸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가 와도, 그는 그의 정체성과 인간성을 놓지 않는다. 끊임없이 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이 되려고 힘쓰면서 동시에 그 누구의 삶도 섣불리 판단하거나 폄하하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사는 것이고, 그의 마음 속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정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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