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폭탄을 두른 리본, 프리다 칼로[시각예술]

글 입력 2015.12.01 22:4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Opinion] 폭탄을 두른 리본, 프리다 칼로


“왜 저 그림이 이토록 칭송을 받을까?”궁금해지는 그림들이 있다. 나에게 프리다 칼로가 그랬다. 그녀의 그림은 아름답기보단 기괴했고, 딱히 구미를 당길 만한 색채기법이 사용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못 알아 챈 걸까?) 여하튼, 나로서는 감탄보다 이런 의문점이 먼저 들었다.



self-portrait-with-monkey-1940.jpg!Blog.jpg
self portrait with monkey, 1940 


‘그녀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에 점철되어 살았음을 모르는가?’ 아니다, 안다. 프리다 칼로는 여섯 살에 소아마비에 걸려 왼쪽 다리가 불구가 되었다. 열여덟 살에는 버스의 쇠 난간이 그녀의 배를 뚫고 들어가 왼쪽 옆구리를 관통해 질을 통해 다시 빠져나오는, 말만 들어도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스물두 살 앳된 나이에 21살 연상인, 당시 멕시코 화단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했다. “일생 동안 나는 두 번의 심각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하나는 18살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입니다. 부서진 척추는 20년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죠. 두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와의 만남입니다."라는 칼로의 말에서 그 생활이 평탄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디에고의 아이를 너무나 갖고 싶었음에도 3번 유산을 겪었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병마는 그를 괴롭혔다. 


henry-ford-hospital-the-flying-bed-1932.jpg!Blog.jpg
Henry ford hospital(the flying bed), 1932 


‘그 고통을 감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명성은 값어치를 하는 것 아니냐?’ 아니다. 그 사실이 그녀의 특별함을 담보해주지는 못한다. 프리다 칼로를 프리다 칼로로 만든 건 고통을 오롯이 담아낸 그녀의 표현법이다. 인간의 상상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야 하고, 특히 프로이트의 학설에서 영향을 받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서 지성을 초월한 꿈이나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하는 것으로 미를 창조하려고 한, 초현실주의자로 칼로를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것에 국한되지 않은 표현력은 실로 탁월했다. 


the-love-embrace-of-the-universe-the-earth-mexico-myself-diego-and-señor-xólotl-1949.jpg!Blog.jpg
The Love Embrace of the Universe, the Earth (Mexico),
Myself, Diego and Señor Xólotl, 1949 


“디에고, 나와 자네는 절대 프리다와 같이 그리지 못하네.”라고 피카소가 말했듯이 그녀의 그림은 그녀밖에 그릴 수 없었다. 그림 속 복장, 원숭이, 해와 달 무엇 하나 허투루 존재하지 않고 온 힘으로 칼로의 심정을 표출한다. 진주알처럼 똑 똑 떨어지는 빛나는 눈물 몇 방울이 함축하고 있는 감정의 그릇은 실로 그득그득 차있었다. 이마 중앙의, 지혜의 눈이라 불리는 세 번째 눈의 자리에 디에고나 해골을 그려 넣은 그림은 그 머릿속이 무엇으로 가득한지 말하지 않아도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여백 없이 그림 속 모든 대상에서 칼로의 감정이 느껴졌다. 칼로의 외로움, 괴로움, 슬픔과 깨달음....... 


layout 2015-12-1.jpg
좌, thinking about death, 1943   우, Diego and I, 1949  


“그녀는 고통과 절망에 빠진 순간에도 자신을 절대로 팽개치지 않았다.”프리다 칼로는 평생 남긴 200여점의 작품 중 1/4이 자화상이었다. 자화상은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고 똑바로 현실을 직시해야만 그릴 수 있다. 온갖 필터와 특정 각도로 아름다움을 덧입히는 오늘날의 셀프 카메라와는 전혀 다르다. 칼로는 배우자를 보살피는 여성적인 면이 있으면서 동시에 아주 강인하고 당찬 예술가였다고 회자되곤 한다. 평생을 뒤흔든 사고로 처참해진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본다는 것-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절망과 고통이라는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는 솔직함은 자화상의 눈빛으로 강렬히 전해진다. 때로는 눈물이, 때로는 가시 돋친 줄기가 칼로를 옭아매도 칼로는 정면을 직시한다. 똑똑히 쳐다본다.


self-portrait-as-a-tehuana-1943.jpg!Blog.jpg
self portrait as a tehuana, 1943 


이렇듯 칼로의 평범하지 않은 인생과 솔직하고도 독특한 표현법은 그림으로 빛을 발했다. 감상자는 누구도 견줄 수 없는 고통을 보면서 연민을 느끼며 마음의 정화-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꿰뚫어보는 칼로의 용기에 강렬한 생의 의지를 느끼고는 감탄하기도 할 것이다.


self-portrait-the-frame-1938.jpg!Blog.jpg
self portrait- the frame, 1938 


루브르 박물관이 그림을 사들인(위의 작품) 최초의 남미 출신 여성 화가인 만큼 프리다 칼로는 세계적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전문적인 평론이 많다. 솔직해 지자, 나는 그다지 많이 배운 이가 아니다. 그래도 칼로와 대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칼로는 자신의 인생과 감정으로 이야기하니까. “왜 저 그림이 칭송받을까?” 답은 나왔다. 이제 칼로를 마주하자. 그녀의 삶을 바라보자.


[이세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