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외로움을 담담하게 담아낸 작가, 에드워드 호퍼 [시각예술]

글 입력 2015.11.24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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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SNS의 배경화면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으로 바꾸었다.
그러자 친한 동네 친구가 "요즘 외로워?"라고 물었다. 호퍼의 그림이 외로움을 뜻하는 것은 우리 둘 사의 일종의 암시이다.
2년 전 이맘 때 친구가 프로필 사진을 호퍼 그림으로 바꾸었을 때 나도 그에게 똑같이 물었다. "요즘 외로워?"
모든 사람에게 호퍼의 그림이 쓸쓸함이라는 단일한 감정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둘 사이에서는 호퍼의 그림은 자신의 외로움을 드러내는 요령 중 하나였다. 
이상하게도 쓸쓸하거나, 외롭거나, 무기력감을 느낄 때면 호퍼의 그림이 떠오른다.


호퍼 작품을 마음이 적막할 때마다 찾게 되는 것은 괴로울 때 "힘내"보다 "요즘 어때?"가 더 힘이 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힘들어할 때 가장 흔하게 위로하는 말은 "힘내"이다.
그러나 정말로 괴로울 때 "힘내"만큼 공허하게 느껴지는 말도 없다. 
물론 그 말을 건넨 사람을 선의를 가지고 한 말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사실 '힘'이 되지 않는다.
힘처럼 활력 넘치고 생기로운 단어는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의 상황에 대비되는 것이다.
마치 울상을 짓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행복해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울상을 짓고 있는 사람은 시원하게 있는 힘껏 울어야 한다. 
일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짐을 덜어내야 그 위에 다른 무언가를 쌓을 수 있다.
이럴 때 차라리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안부이다.
"요즘 괜찮아?" "요즘 어떻게 지내?"와 같은 말은 그로 하여금 마음의 짐을 풀어놓게 한다.
요즘 이러이러한 일로 힘들어. 얼마 전에 친구A와 다투었는데 ......라며 그 사람이 혼자서 끙끙 앓고 있던 고민을 나누게 한다.
말 못할 고민이기에 이런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할 수 없다고 하여도 누군가 나를 신경 써주고 있다는 그 마음이 은은하게 위로가 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은 안부를 물어줌과 동시에 나와 비슷한 처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작품에 그려내는 것들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밤에 카페에 앉아 있는 몇몇, 아침에 거리를 쓰는 청소부, 창문을 내다보는 사람, 기차에 앉아있는 사람들......
그러나 그가 담아내는 일상의 단면에는 소음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사람이 무음의 공간에 배치되어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묵직한 적막감은 우리가 사는 쓸쓸한 현대 사회를 고스란히 묘사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 차 있어서 시끄럽고 요란한 것 처럼 보이지만, 그 수 많은 소리 중에서 우리가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실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는 무음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적막감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느끼는 고독감과 맞닿아 있다. 
즉, 호퍼의 그림에는 지극히 일상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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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창.jpg
 

또한 호퍼의 작품 중에는 방 안에 앉아 창 밖을 응시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다수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방 안에 혼자 있으며 창 밖을 바라보는 그 눈에는 초점이 없다. 
그저 멍하니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쨍하고 따스한 햇빛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나의 모습과도 참 닮아 있다. 일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창 밖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런 의지도 생각도 들지 않는다. 외롭지만 밖으로 나가도 이 외로움을 덜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침대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낸다. 
호퍼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일상에 가지고 있을 법한 모습을 그렸다.
그 사람들도 모두 우리처럼 고독해보이고 무기력해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보며 비단 나만이 이렇게 쓸쓸한 것이 아니구나 라고 느끼며 이것이 심심한 위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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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퍼를 연구한 데보라 라이언스는 "일단 보기만 하면, 호퍼의 해석은 우리 자신의 경험과 함께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하게 된다."라고 했다.
에드워드 호퍼는 일상의 모습을 과하게 치장하자도 우울함을 어둡고 격정적으로 그리지도 않았다.
그는 고독한 사람들을 있는 그래도 그렸다. 그리고 나는 그의 작품을 보며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미를 발견하며 나는 이런 고독하고 쓸쓸한 모습들에 애정을 가지게 된다.
이것도 내 일상의 일부임을 인정하며 포용하게 한다.
이제 그의 작품은 위로가 되어 내 의식 속에 존재하게 되었다.


[이윤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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