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 허튼 웃음 >_ 허구 속에 감춰진 진실, 배역 속에 감춰진 배우

글 입력 2015.11.10 03:4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 포스터_허튼웃음_극단산.jpg
 

연극 <허튼 웃음> Review

허구 속에 감춰진 진실, 배역 속에 감춰진 배우


  연극은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연극 속 인물들을 보며 웃고, 울며 안타까워하고 또 가슴 아파한다. 관객들도 연극 속의 인물들을 보며 이런저런 감정에 휩쓸리는데 극중 인물을 직접 연기하는 배우는 어느 정도일까. 배우는 극 중에서 아예 그 배역이 되어서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달을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것이니. 배역에 심취해서 한동안 극중 인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는 배우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크나이트에서 완벽한 조커 연기를 펼쳤던 히스레저의 사망 후에는 그가 조커라는 배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받다가 결국 약물복용으로 사망했다는 사람들의 목격과 진술이 이어졌다. 나는 의문이 생겼다. 배우와 배역이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과연 극이 끝난 후에도 그 관계는 유효한가. 배우와 배역은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연극과 현실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연극 <허튼 웃음>은 연극과 삶이 가지는 관계성과 그 안에 존재하는 아이러니를 삼중극을 통해 보여준다.

11월 2일 대학로의 선돌극장에서 연극 <허튼 웃음>을 보았다. 극장을 들어가자마자 기존의 극장과는 다른 무대의 형태여서 놀랐다. 선돌 극장은 가운데에 무대가 있고 무대를 둘러싸고 배우의 입퇴장이 이루어지는 문과 관객석이 있는 형태였다. 원형 극장을 변형한 무대 구조인 것이다. 객석이 한 곳에 모여 있는 무대와는 다르게 객석이 무대의 양 쪽에 있으니 공간의 구성이나 인물의 배치를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몇 몇 장면에서는 인물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관찰하는 데 제약이 있었지만, 기존의 무대에서 볼 때 보다 입체적인 관람이 가능하였다. 무대의 네 꼭짓점에 있는 각각의 문은 해당 장면에서의 중심인물들을 보여주고 그 인물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는 삼중극이기 때문에 발생할 관객들의 혼란을 줄여주었다.

  연극반 학생들이 연습하는 극 중 연극의 인물 관계나 상황은 연극반 학생들의 실제 관계와 유사하였다. 용호와 선미는 연인 사이이며, 과거에 용호와 진명은 유명한 캠퍼스 커플이었다. 용춘 전군을 사이에 두고 갈등하는 선덕여왕과 선덕의 언니인 천명 공주는 용춘 전군을 연기하는 용호와 그의 연인인 선미, 그의 옛 연인인 진명의 모습을 닮아있다. 가끔 배우들은 학생과 극 중의 역할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연기하였다. 배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과정을 통해 인물들의 관계에 있어서의 긴장감은 점차 고조되었다. 극 내의 배우들도, 극을 보는 관중들도 현실과 극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인물들의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고 읽어내는 데 바빴다. 극은 연극반 학생들의 이야기, 용춘장군을 둘러싼 선덕여왕과 천명 공주의 이야기, 선덕여왕에 대한 비방서를 밝혀내는 수사극, 이렇게 서로 다른 세 가지의 이야기가 중첩되고 때로는 변주되면서 숨가쁘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용호는 사법고시를 통과한 후 오랜만에 연극반을 찾았다. 과거의 연인이었던 용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진명은 자신이 직접 극작을 하는 극중극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은근히 내비친다. 오랫동안 진명을 짝사랑해 온 수용은 용호에게 흔들리는 진명을 지켜보며 힘겨워한다. 누구보다 따뜻하게 단원들을 챙겨주었 조심스럽게 진명에 대한 마음을 이어가던 수용은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선미는 연극 연습에서 수용을 다그친 진명을 원망한다.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진명은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그 때는 워크샵이었을 뿐’이었다고. 선미는 옆에서 늘 든든하게 지켜주던 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눈 깜짝 안하고 변명을 하는 진명에게 기가 차고 화가 난다. 이내 선미는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친다.


“인생이 워크샵이야? 인생이 워크샵이냐고!”


 인생은 물론 워크샵이 아니다. 수용의 죽음에 누구의 잘못을 논할 수 있을까. 수용이 연기하던 용수대군은 자신에게 마음이 없는 천명공주의 진심을 일찌감치 깨닫고 선덕여왕에 대한 비방서는 자신의 소행이라며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다. 그리고 용수대군은 천명공주에게 ‘그(용춘 전군)에 대한 마음이 그렇게나 간절할 줄은 몰랐다’ 라고 말한다. 나는 이 대사를 반복하는 장면에서 용수대군의 모습은 점차 없어지고 배역 뒤에 숨어있던 수용이의 존재와 그의 진심이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현실과 극을 구분하지 못하고 미련하게 죽음을 택한 수용이에게 뭐라 할 수 있을까. 수용이에게 잘못을 따지기에는 극 속의 용수 대군과 수용이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인생은 워크샵이 아니지만 워크샵은 인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허튼웃음 _ 상세페이지(수정3).jpg
 

[김소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