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15 SIDance 경계 [공연예술, 서강대학교 메리홀]

글 입력 2015.10.2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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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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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2015.10.18 (일)
 
시간 : 오후 5시
 
장소 : 서강대학교 메리홀
 
티켓가격 : R-4만원 / S-3만원 / A-2만원
 
주최 :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관람 등급 : 8세 이상




 
사마르 하다드 킹이 선보인 이번 공연은 안무와 함께 영상을 활용한 점이 돋보였다. ‘경계’라는 제목 때문인지,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는 지역 때문인지 왠지 정치적 뉘앙스를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들이 보여준 경계는 지극히 일상적인,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포괄적인 느낌을 주었다. 공연의 시작은 하얀색 스크린으로 된 벽 뒤에서 한 여성이 반짝이는 공을 던졌다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공연의 대부분의 시간에 등장하는 이 공은 보는 내내 어떤 의미일까 집중하게 했고 배우들과 안무를 이해하는 단서로 작용한다.
 
공연은 한 커플이 스카이프를 통해 영상 통화하는 것과 배우들의 안무를 교차하듯 구성하였다. 나중에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이지만, 이 스카이프 영상은 3년 동안 여권 등의 문제로 인해 뉴욕과 시리아에서 서로 떨어져 지내야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여러 차례의 영상 통화가 진행되면서 마냥 밝기만 하던 그들의 모습도 점차 간격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듯, 물리적 경계로 인한 커플의 상황이 함께 나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정신적 교감에서도 보이지 않는 경계가 쌓이고 있다.
 
 배우들의 안무에서도 유사한 부분이 나타난다. 초반부터 같은 동작이 반복되는 와중에 한 두명씩 집단의 안무에서 뒤쳐지거나 다른 모습을 보이는 부분이 나왔고, 공이 다시 등장한 이후에는 ‘한 배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모습이 보였다. 배우들은 모두 어두운 색으로 통일된 후드를 입고 나타나는데 앞서 언급한 한 명의 배우는 후드를 입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시간이 많았다. 이 후드는 익명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배우 각자의 외형적인 특징에 주목하기보다 그냥 ‘한 사람’으로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반면 후드를 쓰지 않은 한 배우는 작가에 따르면 ‘작은 소녀’를 가정한 캐릭터로 공에 집착하기도 하고 공을 떨어뜨리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등 다른 배우들과 다른 모습으로 보여진다. 이 때문에 ‘공’이 스스로가 지닌 개성, 혹은 희망과 같은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이윽고 후드를 입은 다른 배우들이 이 소녀로부터 공을 빼앗아 서로 돌아가며 장난치는 역동적인 안무도 이어지는데 다수에게 따돌림 당하는 이 모습은 현대의 많은 부분에서도 접할 수 있는 것이기에 씁쓸한 감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후 그녀는 모두와 같은 후드를 쓰고 나타나 공을 뺏기고 긴장하던 때와는 달리 무리에 섞여 같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후반으로 다다르면 모두 후드를 벗은 상태로 안무를 선보이는데 배우들 모두 단색으로 된 심플한 옷을 입으면서도 하나도 색상이 겹치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경계하면 무언가 베를린장벽처럼 물리적 형태가 있고 허물어지기 전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느낌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공연에서 나타난 벽은 공연 내내 다른 모습으로 나뉘었다 결합했다 유동적인 모습을 보이며 그 때마다 위치도, 나뉘어진 배우들도 다른 ‘가변성’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흔히 생각하듯 여기 아니면 저기처럼 둘로만 분열되는 것도 아니라 하나의 경계가 여럿으로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안무뿐만 아니라 스카이프에서 나온 ‘쓸모없는 팔과 다리는 있는 게 나을까 없는게 나을까?’ 라는 물음도 경계와 사람들의 인식의 허를 뚫는 장면이었다.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 혹은 ‘정상’이라는 범주를 확인하려 하고 이 정상의 범주에 들기 위해 노력한다. 쓸모없는 팔, 다리라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정상의 범주에 들고자 하는 시각이 있는 반면, 어차피 의지대로 활용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 불필요한 희망을 갖기보다 내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 상태 속에서 나아가면 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수학문제처럼 절대적인 정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괜시리 후자의 입장을 이상하게 여기던 ‘정상’의 시각이 불편했다. 보편적이지 않은 시각, 자신과 다른 시각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냐며 의아함을 거리낌없이 표출하던 ‘정상적’인 시선. 지구가 아닌 태양이 지구를 위해 돈다던 천동설이 진리였고, 우생학을 기본으로 인종차별이 ‘정상’이었던 역사를 지나온 우리가 ‘경계(boundary’)로서 ‘경계(vigilance)’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다.


[홍승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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