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재의 ‘나’와 통성명이 필요한 탈춤

탈 마당 춤판 풍편(風便)
글 입력 2015.10.2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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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와 통성명이 필요한 탈춤
탈 마당 춤판 풍편(風便)



“남산골한옥마을이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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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골 한옥마을 국악당>


  공연 시간이 다가왔다. 늦지 않기 위해 미리 지도를 보고 왔지만, 길치인 나에게 10분 만에 남산골한옥마을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한옥마을이면 기와집이 보일 텐데…, 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걸었다. 한국의 집. 한국의 것이 물씬 풍기는 건물이었지만, 이곳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다시 충무로역으로 내려와 길을 물었다. 
  왜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을까. 3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을 지나쳐 위로만 올라갔으니, 차오르는 숨을 가다듬었다. 외투를 벗었고 첫 공연을 놓쳤다. 

  공연장은 소극장 형태였다. 연극의 객석과 달리, 반원의 모습을 띄었다. 관객석은 거의 만석이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부모님과 같이 온 아이부터 외국인, 탈춤을 잠깐 배운 사람들까지. 나는 어색한 느낌을 숨기고 자리에 앉았다. 
  무대의 중앙 오른편에는 태평소, 꽹과리, 장구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얀 개량한복을 입었고, 모두 웃고 있었다. 편안함, 서양의 클래식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신선함과 동시에 이질감을 느꼈다. 



 탈춤이란, 탈을 쓰고 춤을 추며 놀이를 하는 일종의 가면극(假面劇)이다. 음악의 반주에 따라 춤을 추면서 노래도 부르기에 가무(歌舞)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등장인물이 서로 주고받는 말과 동작에서 갈등과 긴장이 이루어져 연극(演劇)과 흡사하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고성오광대 놀이 말뚝이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말뚝이와 근엄해 보이는 양반이 무대에 올랐다. 말뚝이는 양반에게 예의를 차리고, 양반은 말뚝이를 천대한다. 그러나 살살 양반의 비위를 건드리며 놀리고 쫓아낸다. 어디서 많이 듣던 내용.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린 ‘봉산탈춤’의 내용을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시험범위 안에 갇혀 외우느라 바빴던 나는, 현장의 소리와 책의 내용을 결합하기 위해 기억의 저편으로 가야했다. 조금씩 기억과 소리가 맞물릴 때마다 흥이 생겨났다. 나는 이 흥이 무엇인지 느끼고 싶었다. 


고성오광대 놀이 말뚝이춤이란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탈놀이이다. 중요무형문화재 7호이며 탈을 쓰고 태평소·북·장구·꽹과리·징 등의 음악 반주에 맞춰 춤을 추며 대사를 주고받는 연희(演戱)이다.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오광대란
  다섯 광대가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것을 말한다. 대개 다섯 마당으로 구성되어있다. 양반계급에 대한 풍자(諷刺)가 주된 내용으로 말뚝이의 재담(才談)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두산백과]



<통영오광대놀이 문둥북춤>

  문둥이(나병을 앓고 있는 사람) 스스로 존재의 비극성이 담긴 춤을 춘다. 신세한탄을 하다가 소고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신명을 얻는다. 새 삶의 지평이 열린 것이다. 자신의 조상이 본래 양반이었는데 죄를 많이 져 천형에 걸렸다고 말한다. 양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윤리적 덕목을 강조하며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일깨운다.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관객과의 소통, 신명나게 놀아보자!

  사회자의 간략한 춤 소개와 함께 전 출연진들이 무대로 나왔다. 덩실덩실, 손을 위에서 아래로 차분히 내리며 올렸다. 약간 빠른 박자로 원을 그리며 돌았고 같이 참여해 달라고 했다. 과연 몇 명이 나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맨 끝에서 달려 나오신 남성분, 통영에서 오신 여성분, 남자 꼬마 아이 등 의외로 사람들이 무대에 많이 나섰다. 자기소개가 이어졌고, 다들 한 번씩 전통춤을 배우신 분들임이 밝혀졌다. 
  전혀 나아지고 있지 않은, 수동적인 관객인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춤꾼들과 무대에서 추는 춤의 맛은 어떨까. 마치 책, 드라마를 통해 습득하고 인지했던 ‘신명남’이 느껴졌다. 한편으론 씁쓸함. 놀아본 사람이 노는 방법을 안다. 의문, 나는 언제 놀아봤을까. 즐거운 자리에 즐겁지 않은 기분이 몰아쳤다.  



<창작탈춤 ‘복자씨’>

  빨래터에서 일어나는 한 여성의 이야기. 시인 고은의 ‘옹달나무’를 모티브로 한 창작 탈춤이다.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였고 실험의식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우선, 사회자의 불친절한 내용 설명이 극의 몰입을 방해했다. 대중적이지 않은 시였기에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몸짓과 소리에 집중하지 못했다. 내용 찾기 무대로 끝난 것이다. 또한 음악과 음악 사이의 공허함이 매끄럽지 못했다. 극의 반전을 주기 위해 붉은 조명과 웅장한 소리가 사용되었으나, 연결지점이 애매해 흐름이 뚝뚝 끊겼다. 그럼에도 여성의 슬픔과 분노가 정확히 전달되어 이해의 어려움이 조금 해소 되었다. 


-탈춤을 일상으로 불러 올 수 없나요?

  박수소리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휘파람과 힘찬 호응이 울렸다. 끝이 났다. 나는 재빨리 외투를 챙겨 밖을 나섰다. 어두워진 밤 사이로 한옥의 풍경이 보였다. 아, 정말로 끝이 났구나. 재차 뒤를 돌아보며 빌딩 속으로 진입했다. 
  나는 왜 굳이 탈춤 공연을 선택했을까. 팜플렛을 이리보고 저리보며 생각에 잠겼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반드시 안동을 방문해 탈춤을 보겠다는 열망이 컸는지, 전통적인 것에 대한 아련함이 있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나는 탈춤을 통해 무언가를 얻길 바랐다는 것이다. 



 한국의 탈춤은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춤과 놀이이다. 현실 지향적 성격이 강해 양반이나 파계승에 대한 풍자, 남녀 간의 애욕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면서도 서민층의 삶의 애환을 보여준다. 물론, 귀신을 쫓고 액을 막는다는 벽사(辟邪)의 의식도 탈춤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탈춤은 전통유희로서의 탈놀음의 성격이 크게 확대되어 있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과거의 사람들은 원을 만들어 탈춤을 보았고, 얘기했으며, 일상의 고됨을 토해냈을 것이다. 자신을 대변해주는 사람을 통해 고마움을 느끼고 해소를 하며 ‘흥’을 분출했을 것이다. 그곳은 소통의 장이 되어 무엇이든지 얘기하고 나누며 ‘즐거움’이 흘렀을 것이다. 현재의 ‘나’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신명난다는 의미를 언제 제대로 느껴볼 수 있을까. 일상에서 탈춤이 멀어졌다고 하지만, 3분 거리에 있음을. 뒤를 돌아볼 줄 아는 느림의 미학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활달하고 장쾌한 춤을 작은 실내의 소극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탈춤의 장점을 놓칠까봐 우려된다. 그러나 실내 공간으로 끌어들여 관객과 함께 새로운 미적 체험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간과 공간, 몸을 공유하는, 탈춤의 춤 맛을 두루 나눌 수 있는 또 다른 흥취와 신명의 장이 펼쳐지리라 기대해 본다. [풍편(風便) 소개 中]



  이제, 탈춤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일만 남았다. 나의 애환을 들어주고 신명나게 해줄 그 때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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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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