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알레산드로 멘디니 展

디자인으로 쓴 시 (The Poetry of Design)
글 입력 2015.10.1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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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멘디니 展'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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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로, 10월 11일 일요일 '알레산드로 멘디니 전 Alessandro Mendini Exhibition'에 다녀왔다. 알레산드로 멘디니라는 이름이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할런지 모르지만 디자인과 건축계에서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거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렉산드로 멘디니는 에토레 소트사스 Ettore Sottsass, 안드레아 브란치 Andrea Branzi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3대 디자이너로 손꼽힌다.

멘디니에 관하여 조금의 설명을 하자면, 그는 네오모던 스타일과 현대적인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오브제, 가구, 건축, 설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디자인 거장이다. 이탈리아 디자인을 세계 디자인의 중심으로 만든 살아있는 전설인 그는 밀라노 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다 세계적인 건축 잡지 "까사벨라(Casabella)"에서 편집을, 이후 "모도(Modo)"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편집장으로 일하며 파괴적이고 급진적인 디자인 운동을 병행한다. 기능만을 내세우는 기능주의에 반기를 들며 1976년 알레산드로 구에리에로 Alessandro Guerriero와 함께 급진 그룹 "알키미아(Alchimia)"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매번 혁신적인 전시를 선보였는데, 이 시기 멘디니의 대표작 '프루스트 의자'와 사람의 형상을 한 와인오프너 '안나 G'가 만들어진다. 기능보다는 표면과 형태 그 자체에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포스트 모더니즘 열풍의 한가운데서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로 활동했으며 까르띠에, 에르메스, 스와로브스키, 알레시, 비사자, 스와치 등 세계적인 기업과의 협업하여 전방위적인 디자인을 펼친다. 제품 디자인 뿐 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나폴리 지하철역, 네덜란드의 그로닝겐 미술관, 일본 히로시마 파라다이스 타워, 알레시 본사 등 건축물도 많이 디자인했다. 70살의 할아버지인 멘디니는 지금까지도 아이같은 호기심과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리디자인(Redesign)'과 감성디자인을 끝없이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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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전시명 : 알레산드로 멘디니 展 - 디자인으로 쓴 시(Alessandro Mendini - The Poetry of Design)
ㅇ 전시기간 : 2015.10.09~2016.02.28 
ㅇ 전시장소 :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전시관
ㅇ 전시구성 : 초기 작업에서 최근작까지 다양한 장르가 집결된 600여 점의 작품
ㅇ 전시주최 : ATELIER MENDINI, 서울디자인재단,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
ㅇ 전시주관 : 아트센터이다, 마이아트예술기획연구소


이번 전시는 알렉산드로 멘디니가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전시장을 디자인하는 등 전시에 관련한 모든 부분을 기획했다. 멘디니는 전시장 내부를 디자인하면서 "판타스틱하면서도 비대칭형 곡면이 많아 특이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공간을 잘 활용하면서 예술적인 것과 산업디자인, 역사적인 것과 요즘의 것 등 자신의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주겠다"라고 말했다. 멘디니는 자신의 디자인 세계를 관람객들이 이해하기 쉽고, 즐길 수 있도록 12가지 테마로 전시를 나누어 구성하였는데, 'The Hall 더 홀,' 'Childhood 어린이의 눈으로 본 세상,' 'Radical Design/ Redesign 기능주의를 부정하다,' 'Roots 전통에 대한 사랑,' 'My Mind 내면 세계 들여다보기,' 'Lots of Colors/ Lots of Dots 점과 색으로 디자인하다,' 'Too Big/ Too Small 크기로 상식을 뛰어넘다,'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막상 전시장에 들어가니, 의도한 것이든 의도한 것이 아니든 간에 섹션 구분이 모호했다. 그나마 세워진 벽들도 공간과 공간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간의 틈이 벌어져 있어 관람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 틈으로 지나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의 디자인 전시관이 사실 그다지 넓지 않다. 그래서 섹션을 열 두 개로 나눈 것이 조금 무리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한다. 멘디니의 디자인 세계가 그만큼 폭넓음을 반증하는 것 일 수도, 또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열정의 발현일 수도 있으나, 집중이 분산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섹션(욕심)을 조금 줄이고, 손에 꼽히는 주제들로 구성하여 그 주제들에 더 집중했으면 좋았겠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이 전시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멘디니의 작품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독특함과 재기발랄함 덕택이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테마는 'My Mind 내면 세계 들여다보기' 였다. 이 공간에는 멘디니의 드로잉 작품 100여 점이 전시 되어있는데, 드로잉 하나 하나 그것 만의 개성과 색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좋은 스케치란 필력이 좋은 선을 쓰거나 예쁘장하게 다듬어진 진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담고 있는 것이라 했다. 드로잉 한 점 한 점의 스토리를, 또 그 스케치를 그릴 때  멘디니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더랬다.

그리고 이 전시로부터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색이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멘디니 디자인의 매력은 색으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알록달록하고 강렬하면서도 조화로운 색의 향유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 쾌감을 느끼게 한다. 멘디니의 대표작 '프루스트 의자'도 진부한 엔틱 의자에 색을 부여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색이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들었다. 분홍색, 주황색, 노란색, 검은색, 파란색, 하늘색, 민트색. 선명하고 밝고 화사한 색과 패턴, 또는 색점의 감각적인 병치. 프루스트 의자가 거의 35년이 넘도록 식지않는 인기를 누리게 한 힘이, 바로 색에 있다. 멘디니는 빨간색만 1000여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똑같아 보이는 색들을 두고서도 오랜 시간 고민하며, 색깔 하나를 선택함에도 엄청나게 애를 쓴다. 멘디니가 만든, 그리고 지금의 멘디니를 만든 색의 조합은 그의 탁월한 감각과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덧붙여, 멘디니는 인상파(그 중에서도 쇠라로 대표되는 점묘파), 입체파(큐비즘)의 그리고 야수파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작품 곳곳에서 쇠라나 피카소, 그리고 마티스의 작품과 그들이 썼던 색들이 둥둥 떠오르는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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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jpg▲ 인형극 극장 디자인
 

멘디니의 전시는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화사한 색과 동심이 가득한 모양의 전시장 입구는 2015년 밀라노 가구 박람히 당시 트리엔날레관 잔디 마당에 설치되었던 인형극 극장 디자인이다. 이를 가져다 이번 한국 전시의 입구 조형물로 특별 제작했다. 이 극장 디자인은 파란색과 오렌지색을 주조로 하고 있는데, 이 둘은 서로를 더욱 선명하고 두드러지게 만드는 보색이다. 그래서 화려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띈다. 크게 두 색을 기둥으로 하여 연한 녹색과 분홍색, 그리고 노란색들이 흥을 돋우고 있다. 입구 조형물을 처음 보았을 때, 우리나라 궁이나 사찰의 단청같다는 느낌을 준 것은 아마도 보색이 주는 화려함과 간판처럼 붙어있는 얼굴 모양의 이미지의 기하학적 형태 때문일 것이다.


7.jpg▲ 데뜨 제앙뜨
 

작품 Neo Malevic은 1970년대 중반 알키미아 그룹을 같이 만들었던 동료 알레산드로 구에리에로의 얼굴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은 20세기 초반 신조형주의를 이끌었던 몬드리안의 화풍이 적용되었다.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검정색, 흰색으로 이루어진 색채, 수직선과 수평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구성을 보면 현대미술과 인격성을 고루 끌어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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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jpg▲ 지오스트리나 Giostrina
 

지오스트리나 Giostrina는 'Childhood 어린이의 눈으로 본 세상' 섹션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다. 정적인 작품들 가운데서 저 혼자 움직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알레시(지오반니 알레시가 1921년에 설립한 이탈리아의 주방, 생활용품 브랜드)에서 생산되고 있는 여러 제품을 모아서 회전목마 같은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만화 영화에서나 볼 법한 비주얼이다. 작품을 이루고 있는 작은 미니어쳐들 또한 만화적이다.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전시 테마에 맞추어 어린아이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보면 어느 순간 놀이동산에 서 있는 나를 혹은 회전목마를 타고서 해맑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는 이번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험한 현대사회에서 테크놀로지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행복감을 주는 작품을 만드는 게 나의 임무다."라고 말했다. '지오스트리나'는 그 임무를 잘 실천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어린 아이의 동심만큼 따뜻한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아래는 세 개의 화병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종이를 이리저리 구겨놓은 듯하다.
 

10.jpg▲ 레비비아 Rebib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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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jpg▲ 저 위 Up there Chair
 

멘디니는 기능주의 디자인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 디자인의 가능성을 연 장본인이다. 그는 디자인 그 자체, 즉 표면과 형태 그리고 색에 몰두했으며 당시 주류 디자인계는 그의 작품을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장식적이라 하여 '반 디자인,' '레디컬 디자인(Radical Design)'이라 불렀다. 멘디니는 레디컬 디자인 운동을 이론화하고 이와 관련된 책을 출판했다. 이 때 멘디니는 유명한 상징적 오브제를 천연소재를 이용해 손으로 직접 만들거나 기존의 사물을 변형하는 리디자인(Redesign)에 대한 착안을 한다. 디자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살아있는 전설의 역사적 행보들을 당시에 만들어졌던 작품들을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위'라는 작품은 꼭대기가 잘린 피라미드 모양 위 의자를 올려놓은 작품이다. 전형적인 기능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의자는 간결하지만 딱딱한 느낌을 준다. 기능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런 의자를 높은 곳에 올려 놓음으로써 기능을 지나치게 숭배하는 당시의 세태를 꼬집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디자인은 기능주의, 실용주의, 모더니즘이 대세를 이루었는데 이들은 정신, 철학, 윤리, 전통과는 별개였다. 이런 기능주의를 비판하며 높이 쌓은 의자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꾸미기도 한다.


14.jpg▲ Monumentino da case(Perfor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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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jpg▲ 마니아 Mania
 

멘디니의 디자인 세계가 어떤 근거로 이루어져있는지를 더듬을 수 있는 작품들을 따로 모아놓은 공간다. 그의 가장 중요한 뿌리인 이탈리아 전통 디자인에서부터, 순수미술의 창조적 에너지를 담고 있는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그의 디자인 세계를 이루는 다양한 근원들을 살펴 볼 수 있다. '마니아'라는 작품 뒤로는 시 한 편이 적혀 있었는데, 스스로에 무한함을 부여하기 위해 가져야할 태도 따위를 말하는 듯 했다. 전시장 안에서 이 시를 읽을 때에는 시를 디자인에 한정했는데, 여기에 앉아 다시 읽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다 싶다. 비록 내가 바라던 감성을 자극하는 시는 아니였다 할지라도 전시장 벽면에 시가 적혀있어서 좋았다. 시가 주는 여백이 참 좋다. 
자신의 약점을 잊어라/ 가장 자연적인 길을 따라라/ 현재보다 앞서가라/ 우리의 차원보다 한 차원 높아져라/ 확실한 가정을 타파하라/ 당신의 근본을 넘어서라/ 메시지 없이 살라/ 삶에게 증언하라/ 오래된 방법에서 안정성을 찾아라/ 바람이 불더라도 당황하지 마라/ 유행이 지나가도 당신의 위치를 유지하라/ 개인적인 방안을 내놓아라/ 작고 무작위적인 것을 잡아라/ 당신의 이념을 잊어라/ 필요 이상의 소통은 하지 마라/ 상징적인 프로젝트를 택하라/ 완전히 다른 세상을 제안하라/ 당신의 개상을 잃지마라/ 가이드라인을 찾지마라/ 옛 것을 그리워하지 마라/ 불행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라/ 끊임없이 반복하라/ 당신이 방금 완성한 일을 잊어라/ 패션에 무관심하라/ 농축시키기보다 확장시켜라/ 기존의 품질을 뒤집어라/ 모든 것을 약간 바꿔라/ 평화를 깨지마라/ 교회를 방문하라/ 전쟁을 일으키지 마라/ 계속 버리라/ 아름다움을 찾아라/ 같은 길을 결코 따르지 마라/ 민족성을 활용하라/ 과거를 반성하라/ 다른 방법을 사용하라/ 시간의 리듬을 택하라/ 모든 곳에 가봐라/ 자신을 위해 게임을 하라/ 많은 사물을 사랑하라/ 공적인 디자인을 반성하라/ 고전주의적인 객관성을 보여라 - 1988년 몰로 매거진 발췌 <무한함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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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jpg▲ 프루스트 의자 Poltrona di Proust - Cela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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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jpg▲ 스케치들 Drawings


스케치는 모든 프로젝트의 근본이다. 정신에서 비롯되어 손을 거쳐 종이, 기호, 이미지, 글과 생각들이 펼쳐져 태어난다. 모든 프로젝트는 컴퓨터 작업에 앞어 작은 드로잉에서 시작한다. 멘디니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과 깊은 대화를 시도한다. 그의 생각이 자유롭게 표현된 드로잉들과 소품들, 그리고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통해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이나 산업이라기보다 디자이너의 아날로그적 내면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의 디자인은 단순한 이미지들과 여러가지 메모로 이루어진 스케치로부터 시작되는데 그의 스케치들은 하나의 독립적 작품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그림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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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jpg▲ 프루스트 의자 Poltrona di Proust - 왼쪽부터 모차르트, 기하학버전, 한국버전(실크 제공 아뜰리에 강금성, 서울 3개 한정), 기하학버전
 

알렉산드로 멘디니는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벽을 허물고자 했는데, 현대 미술에 정통했던 그는 디자인에 현대 미술의 가치를 적용한다. 때문에 멘디니의 디자인은 인상파, 큐비즘, 야수파, 표현주의 등 현대 유럽 회화와 많이 연결되어 있다. 이는 모더니즘을 극복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로 프루스트 의자를 빼놓을 수 없다. 인상파의 점묘적 기법으로 의자의 표면을 칠한 원조 프루스트 의자를 시작으로 다른 디자인을 계속 적용하며 많은 프루스트 의자를 탄생시킨다.
위 프루스트 의자들에서 볼 수 있 듯, 멘디니의 디자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 중 하나는 화사한 색일 것이다. 이 또한 순수 미술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 구성주의, 네덜란드 신조형주의, 마티스로 대표되는 야수파 등의 현대미술에서는 색의 본질을 표현하고자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순수한 원색들을 많이 썼다. 멘디니는 이런 색 구성을 자신의 디자인에 많이 차용했다. 그의 디자인에서 느낄 수 있는 청량하면서도 강렬한 색감은 많은 부분 20세기 현대 미술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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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jpg▲ 프루스트 의자 Poltrona di Proust
 
 
멘디니는 자신의 디자인을 아주 크거나 아주 작게 만들어 생소한 느낌의 오브제로 재탄생시키기도 했고, 때로는 일상적인 사물들을 크게 확대해서 기념비적인 조각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까르띠에 재단 소장품인 프루스트 의자(Poltrona di prous, 2002)는 멘디니의 대표작 프루스트 의자를 확대해 3m 크기의 대형 모뉴먼트 조형물로 제작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의자는 크기를 달리하면서 본래의 의미, 즉 '앉는다'는 실용적 기능을 상실한다. 일반적이고 익숙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관찰자들은 보통의 것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큰 프루스트 의자를 대면하게 되면 자연스레 '와'라는 감탄의 외마디를 내뱉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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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테마의 주제는 벨 디자인이다. 직역하면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개념은 '굿 디자인 Good Design'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기능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던 모더니즘 진영에서는 기능성이 가장 뛰어난 디자인을 '굿 디자인'이라 칭했다. 멘디니를 비롯한 몇몇의 산업 디자이너들은 사람의 정서를 비롯한 다양한 가치들이 기능성이라는 가치에 비하여 평가절하 될 수 없다 생각하였고, 새로운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벨 디자인'이다. 벨 디자인은 그저 아름다운 디자인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서를 움직이는 총체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디자인을 말하는 것이다. 디자인 안에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기쁘게 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32.jpg▲ 아물레또 Amuleto
 
 
작품 아물레또(Amuleto, 2012)는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대표적 조명 디자인 작품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손자의 눈 건강과 꿈이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만든 행운의 램프이다. 행운의 선물로 유명한 아물레또는 이태리어로 '수호물'이라는 의미로 세 개의 원은 태양, 달, 지구를 형상화한 것이다. 세계적인 안과병원과의 협업을 통한 눈보호 조명을 사용하여 기능성과 예술성 모두를 만족시킨 작품으로 세계 여러 뮤지엄에 영구 소장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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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 얼굴의 와인 오프너 안나G 또한 이 섹션에 전시되어 있다. 여자친구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에 영감을 얻어 디자인 했다고 많이들 알고 있으나, 어린 시절 보았던 발레리나의 모습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단순한 와인 오프너에 사람의 형상을 부여해 인간적 감성이 살아있는 디자인을 구현한 것으로, 디자인의 개념을 바꾸었다는 평을 받으며 멘디니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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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jpg▲ 12개의 기둥 슈퍼에고 에디션 12 Colonne
 

멘디니는 일찍부터 자신의 디자인에 인격성을 부여하여 작품을 무생물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표현하였다. 그래서 멘디니의 디자인에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거나 실존하는 사람의 이름을 붙인 작품들이 많은데, 그런 디자인 중에서도 생명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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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jpg▲ 천국의 탑 Torre Del Paradiso
 

멘디니의 본래 전공은 건축이었다. 이 공간은 미술관 건축에 있어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걸작 네덜란드의 그로닝겐 미술관, 알레시 본사의 이노베이션 프로젝트, 독일 하노버의 버스정류장 등 건축 분야에서 그의 공간 디자인 결과물들을 모형으로 만들어 구성해놓았다. 이 곳에 또 하나의 시가 적혀 있었다.
나는 모르겠네, 테이블에 꽃병을 놓아야 할지/ 나는 모르겠네,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아야 할지/ 나는 모르겠네, 저 소파를 살짝 움직여야 할지/ 나는 모르겠네, 저 사람이 나를 기억하는지/ 나는 모르겠네, 이 평화를 깨도 될지/ 나는 모르겠네, 저 사물을 분홍색으로 칠할지 파란색으로 칠할지/ 나는 모르겠네, 갑자기 소리를 질러야 할지/ 나는 모르겠네, 이렇게 찬물을 마셔도 되는지/ 나는 모르겠네, 대리석을 쓸지 목재를 쓸지/ 나는 모르겠네, 삶이 그리 따분하고 시시한지/ 나는 모르겠네, 왜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굶주리는지/ 나는 모르겠네, 내일 두통을 겪게 될지/ 나는 모르겠네, 이 법칙을 적용해도 될지/ 나는 모르겠네, 이것들을 알파벳 순으로 정렬해도 될지/ 나는 모르겠네, 나스스로 테러리스트가 아닌지/ 나는 모르겠네, 죽음을 위한 장소를 마련할지/ 나는 모르겠네, 일을 많이 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지/ 나는 모르겠네, 광적으로 사랑을 나눠야 할지/ 나는 모르겠네, 건물 앞쪽에 창문을 내야 할지/ 나는 모르겠네, 조금 쉬는 것이 최선일지/ 나는 모르겠네, 고통 받는 수많은 이들을 위해 울어야 할지/ 나는 모르겠네, 길었던 그 화창한 날을 기억하는지/ 나는 모르겠네, 정치가 일면에 실릴 자격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네, 커피를 마실지 차를 마실지/ 나는 모르겠네, 역사책을 일거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는 모르겠네, 팔걸이 의자에 한동안 앉아 있을지/ 나는 모르겠네, 잊혀진 채로 죽는 것을 원하는지/ 나는 모르겠네, 전화기를 갖는 것이 소용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네, 이것이 도덕서의 문제인지/ 나는 모르겠네, 모호함을 멀리해야할지/ 나는 모르겠네, 직선이 좋은지 곡선이 좋은지/ 나는 모르겠네, 나는 모르겠네라는 말을 그만해도 될지 - 1980년 모도 매거진 32호에서 발췌 <나는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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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jpg▲ 100% Make Up, ceramic
 

멘디니는 전시의 마지막을 숭고함으로 마무리 짓는다. 역사 또는 정신과 관련한 작품들로 초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한다. 삶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나아가 영혼의 평온함을 느끼도록 만단다. 멘디니의 연륜 깊은 솜씨가 가장 은은하게 빛나는 섹션이다. 위 작픔은 이집트에서 출토 된 유물에 영감을 받아 디자인 된 도자기 병들에 전 세계 100명의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 뮤지션들이 그림 그리게 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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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jpg▲ 작은 성당 Little Cathedral
 

작품 작은 성당(Little Cathedral, 1996-2002)은 유럽 성당의 모양을 작게 축소한 형태 위에 다양한 색깔의 타일을 붙여 제작된 5m 규모의 초대형 작품이다.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이기는 하지만 밝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가득 느끼게 한다. 이 성당의 디자인은 멘디니의 일반적인 디자인에 비해 저채도의 색깔로 이루어져서 차분한 느낌을 준다. 성당의 내부에는 황금색 모자이크 타일로 제박된 조형물이 설치되며 내부로 들어가 관람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아름다운 가야금 선율이 흐르는 모뉴먼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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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디자인 거장이 전시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는 진열된 상품들을 살표보면 알게 된다. 전시 매장에서 판매될 상품도 직접 디자인 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상품들은 멘디니가 전시 기획을 하면서 동시에 직접 디자인 한 것이다. 이외에도 멘디니가 전시를 위해 따로 디자인한 상품들이 많았다.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멘디니스러웠다. 운 좋게도 내가 전시를 찾은 11일은 마친 알레산드로 멘디니 선생님의 사인회가 있는 날이었고, 줄을 빨리서서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시간 상 인원을 제한했다고 한다). 사인을 받는 도중에 "만나뵈어서 정말 영광입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에 아이처럼 웃으시는 모습이 (이렇게 말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귀여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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샵에서 산 자작나무 엽서 3개에 사인을 받았다. 미술,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사촌들에게 선물해주려한다. 정말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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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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