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을 에세이②- '노자의 무위철학'를 통해 삶의 여백 찾기 [문화 전반]

글 입력 2015.10.18 16:5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요즘 같은 디지털 , 정보화 시대에서는 끊임없이 유입되는 생각과 정보를 배제하고 삶의 ‘여백’을 지니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화두이자 가장 어려운 과제로서 떠올랐다. 예술을 전공하는 나 역시 매 순간 고민하였던 이 문제에 대하여, '노자'의 철학은 흥미로운 사유점을 던져 주었다. 

'여백'은 존재, 근원을 마주하는 공간이다. 이 속에서 우리는 계절과 삶의 향취를 온전히 느끼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힘을 키울 수 있다. 이러한 여백을 다루는 '노자의 무위 철학'을 예술의 시선 속에서 사유해 봄으로서 내 삶의 여백을 비우는 새로운 계기를 찾고자 한다.





노자의 도는 ‘무위’의 도다. 
만물은 인간이 절대성을 두고 만든 규범에 항상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 운동하는 것이기에 인위적 규범은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러한 사회적, 인위적 규범에서 벗어나 보다 근원적인 ‘무위’로 돌아가야 한다. 
‘무위’의 바탕은 도가 지니는 ‘상대성’에 있다. “자명한 도는 마치 몽매한 것 같고 나아가는 도는 마치 밀려나가는 것 같고” 라는 노자의 말처럼 ‘도’-세상 모든 이치는 모호하고 불확정적이다. 이러한 모호하고 상대적인 원리에 의해 다양한 성질들이 서로 조화, 화합과 중도를 이루게 되며 이로서 '원초로의 회귀'가 이뤄진다. 
불확정성, 무위로부터는 변화와 운동, 생성이 나오게 되면서 '무'가 곧 모든 ‘유’의 근원이 된다. 끊임없이 작용하며 유를 창조해내는 ‘무’는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이다. 이 무위상태에서야말로 생을 위한 약동, 꿈틀거림과 혼돈은 가치를 발하며 모든 존재들이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게 된다.





#
나는 근래의 회화 수업을 통해 노자의 자연 철학에 대하여 다시금 고찰하게 되었다. 회화과와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수업에서 자신의 그림에 대해 ‘꿈보다 해몽’이 되는게 싫다던 누군가의 말을 들었다. 자신의 의도와 개념이 담기지 않은 작품에 대하여 관객이 거기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낸다 하더라도 자신은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이 말을 계기로 작가와 작품, 관객 사이의 소통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작품을 작가의 의도,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로서 중시하는 위의 의견과 달리 나는 작가의 개념이 부여되지 않았을지라도 예술 소통의 세 주체가 각각 생성해내는 의미들을 통해 예술이 온전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는 인간적 존재인 작가와 관객 뿐 아니라 ‘작품’ 또한 기능물이나 매개로서만이 아닌 독립된 존재가 된다. 이러한 작품이 생성해내는 독자적 의미와 가치 위에 작가와 관객이 자기 존재를 투영함으로서 소통이 이뤄진다. 
소통 속에서 서로의 궤적이 연결되고 무한한 가치가 생성된다. 고정된 하나의 관념이 없는 ‘무위’상태야 말로 창조성과 생명의 근원이 된다. 
나를 벗어난 새로운 시각과 가치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는 것은 풍부한 세계를 갖기 위해서도 충분한 필요성을 갖는다.


#
유의 근원이 되며 존재가 온전히 서는 '무위'철학은 내가 세상과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를 갖게 하였다. 나는 평소 주변, 사물을 바라볼때에 머리를 굴리며 관념을 떠올리는것보다 시선 자체에 집중한다. 인위적 관념이 개입되었을 때엔 내 생각에 갇혀 존재를 온전히 보지 못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물을 관찰하고 존재에 다가설 때, 즉 존재와의 만남의 순간에 있어 나의 인위적 생각을 강제로 주입하지 않을 때에야 상대가 온전한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냄을 느낀다.

그러나 삶의 여백이 사라져버린 요즘에 들어서는 가만히 응시 속에 참잠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 크고도 사소한 불안들, 나태와 무력감 때문에 몸과 생각이 가만히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인내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 무력감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에 대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것보다도 몸에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깨달았다. 잠시 모든 생각과 관념을 포기하고서 몸의 움직임에 따른다면 가장 자연스럽고 근원적인 나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노자의 '무위'철학은 개인의 삶 뿐 아니라 공동체적 삶에 있어서도 중요한 시사를 주고 있다. 개인이 삶의 여유를 갖기 위해서는 그를 함께 존중하고 감당해주는 좋은 환경과 공동체 역시 필요하기에 함께 소개해보고자 한다. 
 
노자의 또 한가지 주요한 철학적 주제는 ‘무위’를 통한 도덕적 존재의 실현이다. “천하에서 가장 낮은 골짜기물” 이란 말처럼 낮은 곳, 뒤에 서서 남을 위해 다할 때 자신을 충족하고 보존할 수 있다. ‘물’이란 유약하고 유연하기에 가장 강인한 존재이다. 약자에겐 무르고 강자에겐 뒤에서 품어 안는 존재가 되어주며 겸허한 이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 모두에게 필요하다. 
이러한 정신에 따라 소수의 지도층만이 아닌 다수를 향한 가르침을 지향하는 것은 노자철학의 특별함인 동시에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자세인 것 같다. 소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 다수가 책임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개개의 사람들이 폭포수를 거쳐 낮은 골짜기로 모이기를 바란다. 유약하기에 스며드는 방법으로서 강한 바위를 뚫어내는 물처럼, 우리도 각자 저마다는 약할지 몰라도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으로서 공동체를 이루며 사회를 품어낼 수 있다.
   




노자의 무위 철학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철학이다. 개인이 삶의 생기를 회복하는 동시에 공동체가 자신의 힘을 온전히 발휘함에 있어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무대포 여행이나, 아무 걱정 없는 숙면을 취하는 등 '무'로 회귀하는 것은 삶의 전환점을 가질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손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최인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0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