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15 SIDance: ‘애완동물’ - 올가 호리즈 무용단

길들이고, 길들여지다 2015 SIDance: ‘애완동물’ - 올가 호리즈 무용단
글 입력 2015.10.13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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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이고, 길들여지다.

2015 SIDance: ‘애완동물’ - 올가 호리즈 무용단


김지현(ART insight SNS 운영팀 부팀장)


★SIDance2015  시즌.jpg
 


애완동물 30초 스팟


<공연정보>

공연단체: 올가 호리즈 무용단
국    가: 포르투갈
공연일자: 10.05.(Mon)
소요시간: 100 분
공연시간: 8pm
관람연령: 8세 이상
공연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공연가격: R-60,000, S-40,000, A-20,000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아트인사이트의 공연들은 날이 갈수록 나에게 엄청난 능력치를 요구한다. 이번 공연만 해도 그랬다. 처음부터 ‘파스스슷’하고 멘탈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 지난번 베세토(BeSeTo) 페스티벌 때의 데자뷰인가.  

내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올가 호리즈 무용단의 <애완동물>은 미리 공연을 관람한 사람들의 리뷰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이번 리뷰에서는 보다 다양한 이해를 위해, 내 의견 뿐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본 관람객들의 리뷰를 차용하여 말해보고자 한다.  


리뷰 1. 
Petting, Petting - João Manual de Oliveira
작품 제목인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는 강아지, 고양이와 같은 애완동물을 떠올리게 한다. Companhia 는 “cum panis”는 음식, 식탁, 집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무용단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관계는 지배하는 관계, 상호의존적인 관계, 상호 창조적인 관계 등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소유한 자와 소유되는 자. 조련사와 길들여진 자.

작품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내부에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로 가득한 방으로 안내하는 일련의 모순되는 자극들을 선택하게 된다. 이질적인 물체들이 가득한 어두운 공간은 우리 자신을 느끼게 만들어 주며, 우리의 영혼과 감정의 집을 만들어 준다.

<애완동물>은 인간관계의 모순을 탐구하며, 서로 사랑하는 순간들, 더 이상 남들과 달라지거나 독특해지기를 원하지 않는 순간들, 그리고 때로는 치명적이고 때로는 안정적이며 그러나 항상 복잡하고 모순으로 가득한 순간들에 대해 탐색한다. 올가호리즈는 단지 이러한 관계의 집합을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물체들과 쓰레기투성이이며 갇혀 있는 것 같은 공간의 미학도 보여준다. 무대 위 공간에서 물건들은 변하고 합쳐지고 재활용되며 여러 가지 기능을 한다. 무용수들은 물체들을 이용하며 물체들과 함께한다.

이 작품은 처음에 올가호리즈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으며, 작품의 창작 과정은 동작을 만들어 내는 짧은 대본에 기초한 특정한 방법을 수반한다. 또한 무용수들이 다루는 물체들을 무대로 가져오기 위해, 올가호리즈는 매우 통제된 방법을 작업에 사용하려 했으며, 그를 통해 <애완동물> 속의 혼돈 상태의 장면을 만들어 냈다. 즉흥이 끝난 후에는 장면들을 마치 영화처럼 편집하고 조립했다. 자르고, 선택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 속 장면들은 처음에 만들어 졌던 것과는 다르게 보인다. 

<애완동물>은 실험하고자 하는 의욕, 그리고 춤, 신체,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과정을 계속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다.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는 마치 5명의 무용수가 만들고 파괴하는 하나의 수족관처럼 보인다. 이러한 특징들을 통해, 우리는 정신 분열, 성적 취향, 도덕, 사랑, 갈등, 그리고 타자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 속 인간의 모습을 재현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들의 중심에서 보여지는 격렬한 안무와 유대감이 있다.

애완동물에 대한 Donna Haraway의 글은 다름에 대한 생각에서 생기는 이러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애완동물>은 감정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작품이다. 공생 관계의 측면에서 깊게 살펴보면,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애완동물’이 되기 시작하는지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관계, 훈련, 명령의 법칙에 의해 감정적으로 예측할 뿐이다. 작품 속에는 개도 없고 고양이도 없다. 단지 애완동물만 있을 뿐이다. 5명의 무용수들이 다양한 관계를 그려내며 관객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리뷰 2. 
(이미지는 클릭하면 확대 됩니다.)


리뷰 3. 


(중략)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을 떠올리면서 작품명이 갖는 의미를 파악하려고 했답니다.
푸코는 '권력이란 거시적 관계가 아닌 미시적 관계, 즉 권력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존재한다'라고 합니다. 또한 '권력은 누군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다'고 하죠.

무대에는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널려 있습니다.
친숙함이 느껴지는 물건 가운데서 무용수들은 서로에게 행동으로 서로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용수들의 강렬하고 힘 있는 움직임으로 말없이 폭력과 욕망, 순응을 표현하죠.
행동으로 표현되는 주인과 애완동물 사이의 관계에는 어떠한 저항도 없어요.
단지 90분 간 권력 관계가 여러 번 바뀌면서 서로의 애완동물이 바뀝니다. 
그리고 누가 누구의 애완동물인지에 대한 경계가 사라지게 됩니다. 

(중략)

- SIDance 2015 이채원 시끌이


이쯤 되면 이 무대가 어땠는지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30초 스팟 영상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파격적인 움직임이 계속 순환되는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모순으로, 욕망으로 가득 찬 순간들을 담아낸다. 위의 리뷰에서 언급했다시피, 서로 사랑하는 순간들, 더 이상 남들과 달라지거나 독특해지기를 원하지 않는 순간들, 그리고 때로는 치명적이고 때로는 안정적이며 그러나 항상 복잡하고 모순으로 가득한 순간들, 정신 분열, 성적 취향, 도덕, 사랑, 갈등, 그리고 타자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 속 인간의 모습이 녹아나있다. 서로 상반된 개념이 공존하는 무대 속의 모순이 인간관계의 모순과 겹쳐진다.  


거꾸로 서있는 여자.jpg
 

그리고 그 모순은 무대 위에서도 펼쳐졌다. 마치 오브제 간의 모순이 벌려진 듯 했다. 전혀 관계없어보이는 쇼파, 밧줄, 양동이, 전선, 호스, 박스종이, 신발, 앰프, 마이크, 수조가 정말 여기저기 고르게 널브러져있었다.  
이 카오스 속에서 무용수들은 난해하기로 소문 난 현대무용을 선보였다. 돌아다니며 물건들을 더 헤쳐놓고, 다른 무용수를 속박하고, 애완동물을 부르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고, 반나체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크기변환_달리는 여자.jpg
 

그러다 문득, 며칠 전에 배운 것이 생각났다. 바로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다. 데페이즈망은 한국으로 전치, 전위법 등의 뜻으로도 해석되는데, 본래는 ‘나라나 정든 고장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초현실주의에서는 어떤 물체를 본래 있던 곳에서 떼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물건이 있음으로써 합리적인 의식을 초월한 세계가 전개된다. 

데페이즈망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인 시인 로트레아몽(Lautréamont)의 유명한 시구절 ‘재봉틀과 박쥐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듯이 아름다운’에서 잘 나타난다. 즉 낯익은 물체라도 그것이 놓여 있는 본래의 일상적인 질서에서 떼내어져 이처럼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이면 보는 사람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주게 된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초현실주의자들은 경이와 신비에 가득찬,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화면을 구성했는데, 초현실주의에 의하면 이런 그림이 보는 사람의 마음 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데페이즈망 사용 화가로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있다.


르네 골콘다.jpg
 

이것은 르네 마그리트의 “골콘다”라는 작품이다. 작품 속의 상황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그림에서는 중력을 느낄 수 없다. 거리를 걷고 있어야 할 사람들이 공중에 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로 잰 듯 일정한 간격으로 포진해 있다. 하지만 이처럼 현실의 법칙을 벗어나 있음에도 그 비상식적 조합에 계속 눈길이 간다. 기이하고 낯설다는 느낌이 보는 이에게 숨겨진 미스터리와 신비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올가 호리즈 무용단의 “애완동물”은 무대도, 스토리도, 무용수도 전부 데페이즈망을 통한 원초적인 불안감, 기묘함을 불러일으킨다.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하고,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때문에 공연 도중에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휴식시간이 지나자 무대의 반이 비었을 정도였다. 


드레스자락 여자.jpg
 

이 ‘데페이즈망’ 기법이라는 면에서 무대를 해석한다면, 이는 우리가 무의식 중에 숨기고 있었던, 또는 잠재되어 있던 권력욕과 소유욕을 도마 위에 올려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또는 나도 모르게 잠재된 무의식 기저의 생각들을 날것 그대로 밖에 끌어올려낸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절제도 없고, 순서도 없고, 이성도 없다. 무차별적으로, 무질서하게, 본능적으로 행해지는 무의식의 흐름 속에서 인간관계를 이루는 요인들은 추하게, 이질적으로 보일 뿐이다. 원래는 무의식 저편에 깊숙이 파뭍혔어야 할 요소들이 밖으로 나오니 거부감이 들고, 통상적인 관념에 맞지 않는 것이다. 연결고리가 없는 오브제와 괴상한 행동들은, 이런 날것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배치된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다른 리뷰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내가 주의깊게 본 무용수의 행동을 소개하겠다. 바로 여자 무용수가 빨간색 하이힐을 신고 무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행동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연상시켰던 것은, 한스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The Red Shoes)' 라는 동화였다. 이 동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얘기하자면


빨간 구두.jpg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처녀가 그 미모 때문에 부잣집 미망인의 양녀가 되어, 아름다운 빨간 구두를 얻어 신는다. 그 신을 신으면 어쩐 일인지 춤을 추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데 양모의 장례식날에도 무도회에 나가 춤을 춘다. 그런데 신이 벗겨지지 않아 가시밭길과 돌밭 위를 춤을 추며 지나간다. 결국에는 구두를 신은 채 발목을 자른 다음 죄를 뉘우치고 경건한 생애를 보내며 겨우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



이는 허영심 때문에 빚어진 죄를 혹독하게 징벌하는 그리스도교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데, 묘하게 인간관계에도 대입시켜볼 수 있는 내용이다. 여자는 빨간 구두를 신고 끊임없이 돌아다닌다. 중간중간 구두를 벗으려고 발을 구르기도 하고, 답답한 듯 쿵쾅대며 뛰기도 한다. 하지만 구두는 결코 벗겨지지 않는다. 비틀비틀 걸어가면서도 결코 벗지 않는, 벗겨지지 않는 빨간 하이힐. 여자들의 허영심을, 그리고 남자들의 허세를 은근히 빗댄 행동이 아니었을까. 결국 나중에 가서는, 동화 속 결말처럼 다리가 잘려야 교훈을 얻을 것이다. 

조금은 비틀린, 어떻게 보면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인간의 유기적 관계를 드러낸 작품, “애완동물”. 개도, 고양이도 없이 오직 애완동물만 있다는 공연의 설명은 인간을 개성을 지닌 하나의 개체로서 인식하지 않고 그저 길들임과 길들여짐만으로 판가름 나는 짐단임을-그 집단 속의 관계성에 주목함을 내포하는 심오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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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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