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Z를 위한 레퀴엠 - 이게 내 전부라고 생각해?

글 입력 2015.10.12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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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_photo by  Andi Bancic.JPG


최근에 'SIDance 2015'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Z를 위한 레퀴엠'을 봤다. 'SIDance'라는 이름을 보고 알아차린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 공연의 장르는 현대무용이다. 사실 나는 현대무용을 처음 보는 건 아니다. 많이는 보지 못했지만 이전에 종종 봤고, 또 현대무용과 관련된 축제가 열리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기 때문에 현대무용에 마음이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전형적이라고 생각하는 발레보다 형식이 없고 자유로운 현대무용에 더 끌리기도 하고. 그래서 오랜만에 현대무용을 본다는 생각에 반가웠고, 여태까지 본 공연처럼 무난하게 리뷰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보니 리뷰를 어떻게 쓰면 좋을지 난감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마냥 들떴는데, 막상 공연을 보고 나니 '이 공연 진짜 무슨 공연이지?'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컴퓨터 자판을 잠깐 두들기다 지우다가 또 두들기는 걸 반복했다.

그렇게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대무용, 사람과 사회와의 관계라는 공연의 주제에 너무 압박감 받지 말고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받았던 걸 쓰면 어떨까?


sub1_requiem for z_photo by Maja Kljaic.JPG


'Z를 위한 레퀴엠'을 봤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자면 기억에 가장 남았던 건 바로 카메라였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무용수들은 빈번하게 카메라를 활용했는데, 어느 순간에는 사진 찍는 포즈를 취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을 가까이서 찍었다. 또 어떤 때에는 자기 자신을 찍기도 했다.

옥신각신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다정하게 사진을 찍고, 누군가의 눈, 코, 입 등을 세세하게 영상으로 찍고 그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걸 지켜보면서 카메라 렌즈가 우리들의 눈 같이 느껴졌다. 즉 카메라 렌즈가 마치 우리의 시각을 대변하는 거 같았다.

그런데 누군가를 바로 코앞에서 세세하게 찍고 시시각각 카메라에 담는다고 해서 우리가 과연 그 사람을 100%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카메라로 누군가의 모습을 담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는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진 찍는 포즈를 취하고, 누군가를 카메라에 세세하게 담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한 무용수가 마이크로 서늘한 목소리를 낼 때 느낀 게 있었다. SNS에 올라오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서 나는 그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이고, 단지 빙산의 일각만 알고 있다는 걸을.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저 무용수는 갑자기 왜 저러지?'라고 생각이 들기보다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한 부분을 본 거 같아서 다른 때보다도 서늘했다.

공연은 싸늘하게 레퀴엠이 흐르고 한참 뒤에 한 무용수가 쓰러지고 쓸쓸하게 남겨지는 걸로 끝난다. 처음에는 독특함을 내세웠던 공연이 마지막에는 고독함을 내세웠다. 그때서야 나는 왜 공연의 제목이 'Z를 위한 레퀴엠'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에는 스마트폰과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다. 또 반대로 내가 누구인지 타인에게 쉽게 알릴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쳐다보기만 하고 또 관심을 가져달라고 광장에서 그저 소리치는 것이 전부인 거 같아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 거 같다.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 아이러니한 현대 사회의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이번 공연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신선함이라던가 춤의 아름다움은 찾기 어려웠다. 다만 한 시간 동안 내던진 묵직한 주제는 공연이 끝난 지금도 계속 내 주위를 맴돈다. 그리고 그것은 당분간 SNS를 할 때마다 불쑥 생각날 거 같다.


[박은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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