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베세토 페스티벌: 황량일몽

일어나, 현실이야 베세토 페스티벌: 황량일몽
글 입력 2015.10.0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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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현실이야

베세토 페스티벌: 황량일몽


김지현(ART insight SNS 운영팀)


베세토 페스티벌 포스터.jpg
 

<공연정보>

공연장소: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주최: 베세토연극제
주관: 베세토연극제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동기획: (재)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재)안산문화재단
예매처: 인터파크 코르코르디움, 대학로티켓닷컴
티켓가: 30,000원 * <바다에서 온 여인> 20,000원
* 컨퍼런스 / 한중일 워크샵 무료
문의:  02 889 3561,3562 cordium@empas.com





베세토 페스티벌의 마지막 공연은, 황잉 스튜디오의 ‘황량일몽’으로 장식했다. 

황량일몽 메인.jpg
 

황량일몽은, 신국극 형식으로, 경극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본래 국극이란, “한 나라의 특유한 국민성을 나타낸 연극” 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극은 중국에서 확인되는 300종이 넘는 전통극 형식 중에서 가장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가장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경극을 ‘국극(國劇)’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국극’에 대해서 더 말해보자면, ‘베이징오페라(Peking opera)’라고도 불리는데, 창(唱, 노래)·염(念, 대사)·주(做, 동작)·타(打, 무술 동작)의 4가지가 종합된 공연 예술이라고 한다.

경극의 가창 및 대사는 주로 베이징 지역의 방언을 사용하고, 대본은 형태와 리듬을 중요하게 여기는 엄격한 규율에 따라 작성된다. 그 내용은 역사와 정치, 사회와 일상생활에 관한 이야기이며, 즐거움뿐만 아니라 교훈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경극의 음악은 공연의 흐름을 결정하고, 특정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인물의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이야기의 진행을 이끈다.

그리고 ‘황량일몽 (黃梁一夢)’은 중국 당대의 전기소설 ‘침중기 (枕中記)’를 신국극 형식으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서양극의 테크닉과동양의 미를 병합한 연출법과 1,200년 전의 중국 로맨스를 현대화 시킨 ‘황량일몽’은 중국 공연계에 실험적인 예술작으로 주목받았다. 


중국 경극.jpg
 

‘황량일몽’에서 보여준 신국극 형식이 국극과 무엇이 다른지는 내가 경극을 본 적이 없어 비교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경극에서나 볼 법한 보법(步法)과 특이한 형식의 대사, 그리고 노래, 움직임까지. 기본적인 형식은 앞서 말했던 창, 염, 주, 타의 네가지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다. 

경극의 형태가 바탕이 되어서인지, 인물들이 등장할 때 그냥 가로질러오는 것이 아니라 직각으로 꺾어서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고, 또 라이브로 반주를 선보였던 것이 특징이었다. 악사 한 명이 악기를 연주했는데, 이 악기가 비파는 아닌 것 같고, 산시엔(三弦)인 듯 했다. 일본의 악기 ‘샤미센’이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라이브로 반주를 들었던 덕분인지, 현장감이 생생했고 분위기 고조에 큰 역할을 했다. 

삼현.jpg
 



산시엔 연주 동영상
 

프리뷰에서 언급했듯, 이 ‘황량지몽’은 ‘침중기’라는 당나라 현종(玄宗)때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산동(山東)에 사는 노생이라는 소년이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의 한 주막에서 도사 여옹이 메고 다니던 양쪽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빌어서 잠을 잔다. 꿈에 그 베게 속에 들어가서 주모가 메조밥을 짓는 사이에 80 년간이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다 깨는 고사다. 
이를 한단몽(邯鄲夢), 일취지몽(一炊之夢), 황양몽(黃梁夢)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로는 구운몽이 있다. 

‘황량지몽’의 ‘황량’은 중국어로 메조를 뜻한다. 그래서 공연에 시작하기에 앞서 무대 앞에 있는 밥솥에 조를 넣고 물을 부어 진짜로 밥을 짓기도 했다. 이 지어진 밥은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이 직접 관객들에게 나눠주었다. 밥 주는 공연은 또 처음이다. 처음 먹어보는 조밥은, 씁쓸한 서민의 맛이었다고. 


조밥3.jpg▲ 나눠주었던 조밥. 냄새는 꽤 좋았다. 서민의 음식맛
 

조밥이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과 함께하며 구수한 향기를 뿜어낼 즈음, 연극이 막을 내린 것을 보니 밥을 안친 것도 무대 장치의 일환이었다. 이 공연이 끝났음을, 그리고 헛된 꿈에서 깨어나라는(?) 황잉 스튜디오의 배우들 덕분에 관객들은 잠시나마 노생이 되어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연출가는 인생이 결국 조밥을 한 끼 짓는 시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우리가 잊고 있는 과거의 우리의 삶과 인생의 맛을 조밥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창의적인 연출 기법을 또 하나 배울 수 있었다. 


조밥1.jpg
 
조밥2-주인공.jpg▲ 주인공 노생 역할을 맡았던 배우
 

공연 내용이 아무래도 팔십 살까지의 조생의 삶을 다루다 보니, 상황 따라 시간 따라 옷차림과 얼굴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최소한의 소품으로 상황설명과 상징성이라는 두 가지를 표현한 것이 인상깊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은 얼굴에 하얀 물감으로 수염을 칠하면서 표현해나갔는데, 여기서 경극의 가면이 살짝 생각났다. (정확히는 인물의 성격에 따라 색깔을 달리해서 물감을 칠한다.) 


꽃은 든 노생.jpg
 

그리고 조생이 팔십 살이 되어 팔순잔치를 하는 시점에서, 잔치에 온 사람들의 꽃 선물을 읊으며 가져다 주는 장면이 나온다. 여태까지 조생이 겪었던 위치(지위)를 하나하나 읊으며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경외감, 축하의 의미를 담은 꽃인 것이다. 그런데 그 꽃이 하얀색이었다는 것이 상징적이었다. 중국에서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보통 하얀 꽃은 죽은 자에 대한 조의를 표할 때 헌사하는 꽃이다. 그가 여태껏 밟아온 길은 결국 이미 지나가, 노쇠한 늙은 몸뚱이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흰 꽃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노생 칠순잔치.jpg
 

이 장면이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양 옆에 세워놓은 전등과 그 전등에 달려 있는 가면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결국 의문은 풀리지 못한 채 공연장을 나왔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더 있었다. 공연이 특이하게도,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는 노신사가 나레이터처럼 옆에 앉아 상황 설명을 하고, 과거의 이야기는 이에 따라 진행되는 식이었다. 이 두 시간을 연결하는 것은 수조이다. 대표이미지에 사용된 사진처럼, 수조 속에서 물을 퍼내기도 하고, 넣기도 하고, 물고기 한 마리를 풀어주기도 하며 수조는 꽤 의미있는 역할을 한다. 


수조.JPG
 

원작에서는 물에 관련된 이야기가 없었는데, 이 수조가 무슨 의미를 띠고 공연장에 올려진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노생의 인생을 흐르는 물에 비유한 것일까? 그렇다면 물고기를 풀어넣고, 계속 물을 그릇에 담았다가 떨어뜨리는 행동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인걸까?

상황이 변하는 경과에 따라서 수조가 특별한 역할을 띠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주시해보았지만, 역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난번 '상자 속의 여인' 무대처럼 관객과의 질문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부디 다음 번 베세토 페스티벌에서는 이런 피드백을 수렴해주길 살포시 바라본다. 

구운몽의 이야기와 비슷하여 익숙한 느낌을 받았던 '황량일몽'. 결국 꿈에서 깨어나 불평불만하던 태도를 바꾸고 싸구려 조밥을 맛있게 먹는 조생의 모습에서, 물질만능주의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조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일어나, 현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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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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