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황량일몽', 현대의 유쾌한 화법 속에 표현한 중국 고전

글 입력 2015.10.01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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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고대하던 첫 연극을 보았다.
연극을 처음 보는 나로서는 공연장과 그곳에 모인 관객들의 분위기 모두 신선한 것이었다.
남산 예술센터 로비의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는 바깥은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며 연극에 대해 보이는 열기에 나도 연극을 보기 전부터 약간의 흥분에 달아오른 느낌이었다.



무대를 가리고 있던 검고 엷은 장막이 걷혔다. '황량일몽'에 드는 시작이다.




동양극의 색채와 샤머니즘적 분위기- 연극의 에필로그와 함께

검은 옷을 입고 악기를 든 여인이 무대에 처음 등장한다. 그녀는 중국 전통악기인 얼후(이호)를 한 음률로 계속 연주한다. 이와 함께 나레이터가 등장하여 무대를 향한 관객들의 집중을 이끌며 한 쪽 구석에, 나의 바로 앞편에 앉아 머무른다.
이후 무대에 흰 무명옷을 입은 4명의 배우들이 등장하여 가운데 깔아놓은 천 위에 앉는다. 얼후의 음률과 어우러지며 그들은 그곳에서 리듬과 음색을 낸다. 정확히 그들은 조밥을 짓기 위해 조를 물로 씻는 행위를 하는데, 물과 곡알이 흐르며 내는 음색과 행위의 리듬, 연주와 밝게 비추는 조명이 어우러지는 정경은 경건하고 고요한 아름다움을 주었다. 배우들은 무대 앞쪽에 배치된 솥에 밥을 안치는데, 이 모든 행동이 마치 하나의 종교 의식을 거행하듯이 절도있고 힘있게 행해진다. 특히 짧은 보폭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발짓은 중국 전통극의 느낌을 살리며 독특한 인상을 주었다. 이후 그들은 무대 배경쪽에 걸려있는 두루마기를 향해 절을 한다. (이후 연극의 진행에서 이 두루마기가 당 황제의 초상화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의식을 모두 마친 배우들이 퇴장하면 연주자가 홀로 남아 계속 연주를 한다.
여기서 나는 내 자리가 매우 행운이라 여겼다. 조명에서 떨어지는 노란 빛줄기와 얼후의 현 기둥이 비스듬히 평행을 이루는 모습은 높은 공간에서 한줄기로 떨어져 내리는 달빛같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묘하고도 조화로운, 고요한 동양적 색채와 종교제례풍의 연출은 관객들을 배려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중국 고전 이야기, 동양극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밝고 고운 자리를 깔아주는 듯 하였다.




'황량일몽'- 상징적 사물들을 통해 보는 줄거리

황량일몽은 중국 고전 소설인 '침중기'를 원작으로 한다. '침중기'는 배개 속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 제목들이 의미하는 바대로 황량일몽은 '꿈 이야기'의 형식을 통해 '인생무상'의 주제를 말한다.
이야기는 정직하고 단순하다. 볼품없고 가난한 청년 노생이 주막에서 승려 여옹을 만나 한탄을 늘어놓은 이후, 그의 주술에 의해 꿈 속에서 입신양명, 부귀영화 등의 사회적 성공을 겪은 후 인생무상을 깨달으며 꿈 속에서 깨어나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역시 이를 표현하는 '연극적 장치'들이다. 여기서는 사물을 통한 상징적 표현이 주요하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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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노생이 첫등장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후 주막주인이 '조밥'을 안치고 나서 노생은  꿈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하는데 여기서 여자 배우가 꿈으로 도입하는 매개체인 '배개'로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펄럭이는 천과 옷자락을 통해 차원의 꿈틀거림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후 여생은 바로 지방 도지사격인 성주의 목사로 취임하여, 운하의 개발을 통해 지역의 가뭄 문제를 해결한다. 이러한 정책 기획과 실행의 업무를 표현하는 매개체는 '붓'이다. '붓'은 과거를 통한 관리 진출과 문신으로서 덕망있는 정치를 행함으로서 이루는 입신양명을 뜻한다. 여기서 노생은 수조의 물에 붓을 적셔 바닥에 글씨를 쓴다. 하늘거리는 푸른 옷을 입은 여자 배우가 무대에 나와 운하를 뚫는 물길을 형상화하며 노생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후 노생은 토번으로부터 국방을 지키는 절도사로 부임하여 전쟁에서 승리한다. 이 장에서 매개체가 되는 것은 '북대'로서 노생은 전쟁의 신호를 내는 북을 두드린다.
결국 그는 몇번의 고배 끝에 재상이 된다. 여기서 재상의 상징물인 의복을 펄럭이며 갖고 노는 유희적 행위를 통해 권세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노생은 또한 정적의 술수에 의해 유배생활을 겪는다. 당시에는 유배생활 속의 가난과 풍류적 삶 또한 문인들이 가졌던 낭만적 이상이었을 것이다.
이후 노생은 '연국사'에 취임하여 재상을 두번 지내게 된다. 그는 부귀영화와 명성을 누리며 방탕한 생활을 한다.
노년의 생일을 기념하는 잔치에서 노생은 꿈의 결말을 맞는다. 그는 황제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 청을 하지만 거절당한다. 여기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상징은 '조밥'으로 나타난다. 그는 자신이 쌓아온 공적들을 '가면'의 형태로 마주하며, 각 시기를 상징하는 사물들은 조밥을 앉혔던 솥 앞에 놓여진다. 노생은 첫등장에서 불렀던 노래를 거듭 부른다. 공을 세우고 부귀를 누린 삶 속에서도 결국 자신의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는 회환과 쓸쓸함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나레이터가 조밥이 다 되었음을 확인한 이후 노생은 꿈에서 깨어난다. 수조의 물을 묻혀 얼굴에 남겨진 세월의 흔적들을(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기 위해 극의 진행 와중 보조자가 등장하여 노생의 얼굴에 직접 흰 눈썹과 주름을 그린다.) 지워내고 현실로 돌아와 완성된 조밥을 먹으며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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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옹은 그에게 과연 "뜻하는 바"를 이루었는지 물으며 사람들이 마냥 동경하는 이상적 삶이 실은 그리 순탄치 않다는 것을, 자신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를 발견해내기란 쉽지 않으며 이를 이루는 과정 또한 순탄치 않다는 교훈을 준다.

'사물'을 매개로 하여 보여주는 연출이 휼륭했다. 수많은 사물들이 등장하면서도 그것이 무대를 오가며 극의 진행을 이끄는 매개물로서 신속히 무대를 오가며 장면을 연결짓는 것이 깔끔하고 자연스러웠다.




수조의 정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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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한 구석에, 나레이터의 앞에 자리한 수조는 물이 주는 제례적, 매체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인물이 상징적 행위를 하는데 있어 종종 의례적 역활을 수행하였다. 여기서 나레이터는 수조의 물을 다루는 극의 보조자로서 연극에 개입한다.
나레이터는 극의 진행 도중에 종종 나와서 본래 물만 채워져 있던 이 수조에 조약돌을 빠트리고, 물을 솎아내는 행위를 한다. 나의 자리 바로 앞에서 행해지는 이러한 행위에 궁금증은 갈수록 커져갔다. 극의 후반부에는 마침내 붉은 잉어까지 수조에 담겨졌다.   
연극이 끝난 후 커튼콜 시간에는 극단의 배우들이 수조에 담긴 잉어에게도 관객의 박수를 이끈다.

이러한 연출들을 곰곰히 생각해본 끝에 나는 수조가 극단인 '황잉 스튜디오'를 의미하는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황잉'의 의미는 '누를 황'과 '찰 영'이다. '차오르다', '충만해가다'의 의미는 조약돌이 채워지고 물이 솎아지면서 점차 온전한 환경을 갖추어가며 생명으로 차오르는 수조의 모습을 통해 상징되었다.
이러한 의미에 따라 물길을 내어 도시에 활기를 피우고, 노생을 꿈에서 깨우고 회생시키는 '생명의 매개'로서 극의 서사 속에 등장한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로비로 나와 연극 동안 지은 조밥을 관객들에게 나눠 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조밥은 굉장히 맛있었다. 조밥에 다분히 담긴 배우들의 정을 느끼며 연극의 마지막에서 조밥을 그리워했던 노생의 마음에 생생히 공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십대에 들어 처음 보는 연극이 베세토 연극제라는 것이 굉장히 좋다.
은은한 무대 미술과 생동감 있는 연출, 특히 조밥의 훈훈하고 따뜻한 기운으로 기억될 수 있어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미지 출처- 베세토 페스티벌 홈페이지 , 구글 검색
[최인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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