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대한민국 난투극' - 웃어도 웃는 게 아니야

글 입력 2015.09.1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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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드라마 ‘미생’이 한참 인기 있었을 때였다. 그때 주위에 그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많았는데, 어떤 사람은 출연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고 그랬고, 또 어떤 사람은 그 드라마를 보면서 울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한 사람은 퇴근하고 ‘미생’을 보면 직장생활의 연장인 거 같아서 괴롭다고 그랬다. 그 당시에는 그 사람의 반응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대한민국 난투극’이라는 연극을 보니 그제야 ‘미생’을 보면서 느낀 그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연극 ‘대한민국 난투극’이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온전히 사람을 괴롭고 먹먹하게 한 건 아니었다. 항상 그랬던 건 아니지만 종종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마치 ‘개그 콘서트’를 보는 것처럼 시원하게 웃을 수는 없었다. 마냥 머리를 비우고 시원하게 웃고 넘어가기에는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청년실업, 왕따…연극에서 드러난 대한민국의 사회상은 정말인지 씁쓸했다. 특히 개인적으로 이 연극의 주인공인 ‘대한’이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하면서 씁쓸했는데, 그건 내가 ‘대한’이와 비슷한 세대고, 취업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그런 거 같다. 그래서인지 ‘대한’이가 처한 상황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무거웠다.

 30살 ‘대한’이 말고도 고등학생 ‘민국’이도 이 연극의 주인공인데, ‘민국’이를 통해서는 현재 청소년이 겪는 왕따 문제나 입시에 억눌려 자기 꿈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민국’이는 현재 대한민국 청소년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만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연극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생각보다 많았다. 사각형의 작은 무대만으로도 학교, 노래방, 경찰서 등을 실감 나게 살렸고, ‘대한’이와 ‘민국’이 역을 맡은 배우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은 일인다역을 맡았는데, 어느 역을 하건 자기가 맡은 역을 맛깔나게 살렸다. 또 극 중 현실과 상상 속에서 펼치는 무술이 어색하지 않게 맞물렸다. 생각보다 극 중에서 무술은 ‘대한’이와 ‘민국’이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두 인물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팍팍한지 잘 드러냈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번 연극이 한 신문기사에서부터 탄생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2014년에 한 고등학생이 30세 초반 남성에게 돈을 주면서 난투극을 짜고 연출하자고 의뢰했는데, 그저 황당한 이 사건을 웃어 넘어가기보다는 살을 붙이고 각색하여 연극으로 만들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또 이 소재를 그저 흥밋거리로만 여기기보다는 30대 ‘대한’이와 10대 ‘민국’이를 통해 관객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려고 노력한 게 드러났다.

 결말은 완전히 희망적이거나 비극적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현실적이었지만 좌절감을 안겨주지는 않았다. 비록 ‘대한’이와 ‘민국’이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차선책은 찾은 거 같다. 특정 인물이 아니라 어쩌면 길 가다가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타인이자 우리 자신일 수도 있는 ‘대한’, ‘민국’이 마냥 현실에 짓눌려 지내기보다는 조금만이라도 견자단이 무술 하는 것처럼 호탕하게 현실에 맞섰으면 좋겠다.

 이전에도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등 신조어가 생길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는데, 지금보다는 아닌 거 같다. 지금은 ‘헬조선’, ‘지옥불반도’ 등 이전에 등장한 신조어보다 더 수위가 센 단어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시간이 갈수록 견디기 힘든 사회로 변하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 연극을 보면서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대사 하나 하나가 현재 우리사회를 날카롭게 집어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 즈음이면 이 연극을 아무 생각 없이 시원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날은 다가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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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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